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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모지에서 자란 나무

이란 현대사의 다이제스트 '페르세 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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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4-15 [10:08]

 

  ©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씨네리와인드|이은서 리뷰어] 마르잔의 삶이 곧 현대사의 다이제스트였다. 두 명의 감독 중 마르잔 사트라피는 영화 속 동명의 주인공-마르잔이다. 원작 그래픽 노블을 두고 있고, 영화는 성인이 된 프랑스로 거처를 옮기는 공항, 담배를 피우며 자신의 유년을 회상하는- 흔히 액자식 구성을 취하는- 영화다. 혁명과 전쟁을 배경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마르잔은 폭격과 폭력 그리고 일상적으로 목숨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억압적인 환경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자기 연민을 내비친 적이 없다. 자신의 가족사나 유학 시절에 대한 미화 없이 마르잔을 마르잔답게 만든 모든 순간을 진솔히 풀어내고 있어 15시간이 걸려 다다를 수 있는 이란,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마르잔을 이해하는 데에 조금의 어려움도 없었다.

 

  ©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영화를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이란의 정치, 사회에 대한 수많은 이해관계자를 진보 사관으로 마주할 수 있다는 점, 무엇보다 여성 성장영화라는 점. 두 가지를 모두 관통하는 것은 바로 마르잔 가족의 가치관이다. 이란의 혁명의 최전선에 있는-부패한 정권을 타도하는-반사회주의 운동을 하던 삼촌이 처형되기 전에 8살인 마르잔을 면회를 보내는 것, 혁명의 중심에서 진보 사관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 등 부모는 마르잔에게 줄곧 옆에서 보도록했다. 반사회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자리를 피하지 않고, 마르잔에게 학교 교육과는 다른 세상을 알려주었다. 황제를 신격화하고 현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교육에 마르잔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학생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렇듯 부모만으로도 마르잔의 성장에 충분한 자양분이 되었다.

 

  ©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엉덩이에 이목이 끌리니 뛰지 말라’ ‘긴 히잡을 입어라’ ‘화장을 하지 말라’ ‘당신 같은 여자는 버리면 끝이다등 일상적인 폭언에 시달린다. 억압을 계량화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여기에 쉽게 감응할 수 있는 이유도 종교와 국가를 지워내더라도 여성에 대한 일상적 억압은 자명하기 때문 아닐까. 특히나 마음이 아렸던 장면은 엄마와 함께 찾은 마트에서 엄마가 성적으로 모욕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 학교에서 경고를 받고 돌아왔을 때 엄마가 울던 것-(이란에서 처녀는 처형을 할 수가 없어 강제로 결혼 시킨 후 처형한다는 법이 있다)이다. 여성억압과 전체주의 풍토 속에서 부모님은 마르잔을 오스트리아로 유학 보낼 것을 결심한다.

 

  ©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할머니는 마르잔과의 마지막 밤에 큰 울림을 준다. 할머니는 늘 브래지어 안에 자스민 꽃을 넣어 다니셨다. 진보적인 사관과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계신 할머니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의문이 부끄럽게도, 그의 뜻은 이란’ ‘여성등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여성성에 대한 완전한 부정이 곧 남성성이 아니듯, 이란을 떠나보내는 것이 유럽의 정치를 동경하라는 것이 아니다. 일그러져버린 이란의 정치와 사회에도 희망이 있으며, 이란이라는 근본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지 않을까 짐작한다. 이로써 부모님과 할머니까지 마르잔이라는 나무에게 영양이 넘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마르잔을 불모지에서 자라난 나무에 비유한 이유는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주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억압적인 사회 환경 속에서도 죽지 않을 정도로만순응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행동한다. 첫 유학의 실패로 돌아온 테헤란에서 마을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우울증까지 이어지지만 자신을 놓아버리지 않는다. 애인과 자유로운 사랑을 위해 어린 나이에 결혼을 결심하기도 하고, 이혼하기까지 모두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체적인 선택들이었다.

 

그가 프랑스로 떠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되고 영상은 컬러로 바뀐다. 나무가 척박한 땅에서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없듯, 마르잔은 이란을 떠난다. 실제로 마르잔 사트라피 감독은 프랑스의 예술학교를 다니면서 그래픽 노블로 명성을 떨쳤다. 영화 밖에서- 나무가 속을 가득 채워나가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이란의 따스한 햇빛만큼은 거짓된 적이 없다고 믿고 싶어졌다.

 

 

보도자료 및 제보cinerewind@cinerewind.com

 

이은서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3기
cinerewind@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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