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전체기사

News & Report

Review

Magazine

Opinion

Critics

Culture

DB

21세기 뱀파이어 영화들

21세기를 견뎌내는 흡혈귀들에 대하여

가 -가 +


기사승인 2020-04-21 [11:00]

[씨네리와인드노상원 리뷰어] ‘흡혈귀’라는 말은 피 빠는 귀신을 뜻한다. ‘드라큘라’나 ‘노스페라투’ 같은 20 세기의 뱀파이어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이 들을 정말로 흡혈‘귀’로 다룬다. 깜깜한 밤 인간들이 사는 집들 골목 사이사이로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괴물, 이해할 수 없는 외부의 악. 실제로 뱀파이어물의 시초인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편지를 통해 전해지는 드라큘라 백작에 대한 목격담으로 구성된 서간 소설이다. 목격담이라는 형식 자체가 드라큘라를 외재적인 악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주인공을 해치는 바깥 존재가 아닌 주인공으로서의 뱀파이어들을 내세운 영화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런 영화들은 낮에 나올 수 없다는 그들의 약점을 부각하기도, 인간들의 세상과 격리된 그들의 고독을 다루기도 하며, 마실 피를 구할 곳이 마땅치 않아 버둥대는 모습을 가지고 개그를 치기도 한다! (심지어 ‘오직 사랑하는 이들 만이 살아남는다’에서 존 허트는 상한 피를 마시고 식중독으로 사망한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가능하다. 햇볕을 맞으면 살이 타고, 피 이외의 다른 음식은 먹을 수 없으며(그것도 신선한 피만), 초대받지 못한 곳에 들어가면 몸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니. 이건 뭐 살아남는게 기적인 수준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흡혈귀의 능력과 약점에 대한 기본설정은 사실 동네마다 고스톱 룰이 다른 것 마냥 이야기마다 다르다. 어쨌거나 삶의 조건이 열악하다는 건 디폴트. 내가 트와일라잇은 뱀파이어물이 아니라 히어로물이라고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뱀파이어는 개고생을 해야 한다.) 영화 ‘노예12년’에는 “I don’t want to survive, I want to live” 라는 좋은 대사가 나오는데, 21세기 뱀파이어들에게 생존과 삶은 동의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많은 뱀파이어물 중에서도 특히 흥미롭게 느껴지는 몇 편을 골라 간단히 훑어보려 한다.

 

‘박쥐’ 박찬욱

 

▲  '박쥐'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박쥐’의 주인공은 뱀파이어가 된 신부 상현이다. ‘박쥐’는 흡혈을 포함한 동물적 욕구와 신부로서 지켜야 할 윤리의식의 충돌 속에서 상현이 타락하는 과정을 어두운 유머와 함께 전달한다. 영화는 상현이 햇살로 가득 찬 하얀 병실 안으로 들어오며 high-key의 밝은 화면으로 문을 열지만, 상현이 뱀파이어가 된 이후부터 급격하게 low-key의 조명이 지배하는 어두운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 영화는 자신의 선행을 하느님이 기억하실지 묻는 환자는 급작스럽게 코마에 빠져버리고, 그에 대해 ‘당근이죠’ 라고 대답했던 신부는 뱀파이어로 변해 사람의 피를 빨게 되는, 더 이상 햇빛을 볼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꿈도 희망도 없는 이야기니까.

 

'박쥐'는 타락의 전 과정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부감 숏을 통해 담아낸다. 인물과 카메라의 동선이 평행을 이루게 촬영한 장면이 거의 없고 대부분의 장면이 인물들을 비스듬히 위에서 아래로 찍었다. 이런 방식의 촬영은 위태로운 인간들이 어떻게 짐승이 되어 가는지를 내려다보는 전지적인 관찰자의 시점으로도 느껴진다. 이토록 잔인하고 비극적인 영화가 중간중간에 웃길 수 있는 것은 관찰자와 상현 사이의 그 거리감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어떤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를 보고 웃는 사람 이야말로 이 이야기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했던데, 이 또한 같은 맥락이다.

 

신부 상현은 옛 친구의 아내 태주와 간통을 저지르기까지 하며 모든 쾌락을 갈구한다. 그 두 사람이 밀회하는 순간들 중에 이 영화의 주제가 집약된 명장면이 있다. 상현이 태주를 안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며 뱀파이어로서의 능력을 과시하는 장면인데, 이때 역시 카메라는 소리를 지르며 신나 하는 태주의 얼굴을 부감으로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그들이 강렬한 쾌감을 느끼는 순간이 사실은 추락의 순간이라는 것이다. 뱀파이어는 높은 곳에서 다치지 않고 떨어질 수는 있을지언정, 날지는 못한다.

 

▲   '박쥐'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상현: “이러다 우리 둘 다 지옥가요..”

태주: “나는 신앙이 없어서 지옥 안 가요.”

 

‘렛 미 인’ 토마스 알프레드슨'

 

 ▲ '렛 미 인' 스틸컷  © 영화사구안 , 씨네그루(주)다우기술

 

‘렛 미 인’의 주인공들은 12살짜리 소년 오스칼과 12살짜리(외형만은)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다. 학교에서 심한 왕따를 당하는 오스칼은 차가운 겨울의 어느 날 옆집에 이사 온 추레한 모습의 소녀 이엘리를 만난다. 오스칼은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고, 이엘리는 아빠로 보이는 성인 남자와 단둘이 살고 있다. 둘은 어딘가 굶주린 모습이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서로의 모습을 눈 위에 그려가며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이엘리는 오스칼에게 그를 괴롭히는 무리들에게는 더 큰 폭력으로 응수하라며 충고하고, 오스칼은 그대로 행한다. 매일 자신을 가만두지 않던 욘니의 머리를 귀에서 피가 터질 정도로 폴대로 세게 쳐버린 것이다. 어떻게 열두 살짜리 소녀의 입에서 ‘당한 것보다 더’가 흘러나왔으며, 어째서 열두 살짜리 소년은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것을 그대로 따랐을까. 왜 오스칼은 이엘리에게서 받은 것을 용기라고 여겼을까.

 

이엘리가 수백 년을 산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오스칼은 학교에서 심각한 따돌림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드러낸 후부터 이들은 기묘한 유대감을 키워 나갔다. 학교라는 지옥과 열두 살의 유약한 신체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소년의 몸부림은, 열두 살의 신체에 영원히 갇혀 늙을 수 없는 소녀의 체념에 가 닿았다. 영화적으로도, 둘의 관계에 있어서도, 왕따 당하는 소년의 고독과 수세기를 죽지 못해 버텨내야 했던 뱀파이어의 고독은 묘한 시너지를 일으킨다. 그들은 서로 전혀 다른 종류의 고독을 품고 있지만 세상의 무관심이라는 공통의 그림자 안에서 조용히 연대한다.

 

영화의 주요 장면들이 뒤틀린 각도나 부감으로 촬영된 박쥐와는 반대로, ‘렛 미 인’은 두 소년 소녀가 머리를 맞대고 교감하는 장면을 포함한 대부분의 장면들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촬영되었다. 인물의 눈높이에서 촬영된 장면들은 몰입이 쉽고 ‘박쥐’의 비틀린 화면들보다 훨씬 더 시각적인 안정감이 생긴다. 그러니까 흡혈귀를 대하는 두 영화의 태도는 정반대다. 거칠게 말하자면, ‘렛 미 인’은 뱀파이어 리즘을 껴안을 수밖에 없는 십 대에 대한 영화라면, ‘박쥐’는 뱀파이어 리즘을 재난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신부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왕따 당하던 소년에게 다가온 흡혈의 세상은 재난이라기보다 구원일 수밖에 없었다.

 

  ▲ '렛 미 인' 스틸컷  © 영화사구안 , 씨네그루(주)다우기술


 

빛이 사라지면, 너에게 갈게-이엘리-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 타이카 와이티티

 

  ▲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 스틸컷  © unison films

 

코미디 영화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타이카 와이티티다. 물론 이 영화의 감독인 타이카 와이티티가 연기한 배역의 이름은 따로 있다. 그러나 와이티티는 귀족 출신의 샌님 뱀파이어 비아고를 연기한다기 보다, “비아고를 연기하는 타이카 와이티티”를 연기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연기가 연기임을 드러내는 연기를 하고 있다. '뱀파이어에 관한~'의 다른 모든 배역도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연기는 다른 뱀파이어 물에서 우리가 접하는 그것보다는 코믹하게 과장된 콩트 퍼포먼스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샌님 뱀파이어 비아고, 마초적인 뱀파이어 블라드, 뺀질이 뱀파이어 디컨, 어쩌다 뱀파이어 닉. 영화는 큰 줄거리 없이 이 네 명의 뱀파이어가 동거하면서 벌어지는 자잘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조연급으로 지하실에 사는 가장 오래된 뱀파이어 피터도 있다. 외관은 노스페라투의 오마주.). 우르르 몰려다니며 클럽도 가고 시내를 쏘다닌다든가 늑대인간 무리들과 서로 인종-아니 종족 비하 발언을 주고받으며 싸운다든가… 작품은 이 것이 어디까지나 ‘컨셉’ 다큐멘터리라는 것을 전면에 드러내는 잘 만든 콩트에 가까우며, 흡혈귀라는 존재를 관객에게 실재하는 것처럼 납득시키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코믹한 에피소드들이 많아 지루할 틈은 없지만, 엔딩 크레딧 이후 디컨의 최면처럼 보고 나면 잊어버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휘발성이 강한 즐거움이다.

잘 만든 콩트. 이것은 21세기에 들어 뱀파이어를 포함한 신화적 존재들을 더 이상 신화화하지 않는 우리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이제 흡혈귀는 유니콘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게 코스튬인 것을 알아도, 일단 그 룰만 받아들이면 할로윈은 즐겁다. 어둡고, 암울하고, 섹시하기만 해왔던 기존 뱀파이어물에 대한 유쾌한 안티테제. 어찌보면 진정한 의미의 안티 뱀파이어 영화.

 

너는 지난 한 시간 반 동안의 기억들을 잊게 될 거야” -디컨-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짐 자무쉬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스틸컷 © 찬란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의 주인공들은 수세기를 함께한 뱀파이어 커플 아담과 이브다. 지나간 세기의 예술에 대해 집착하는 음악 애호가 아담은 인간은 모든 것을 파괴하기만 한다며 현대문명과 인간 종족들을 혐오하고, 거의 칩거를 하며 가끔 음반을 내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브는 이러한 아담의 관점에 부분적으로는 동의하지만 그 보다는 현대문명에 나름 잘 적응해 휴대폰과 영상통화를 활용하며 나름 21세기를 잘 통과하고 있다. 언뜻 보면 이들의 모습이 어떤 유형을 제시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식의 감상법이 적합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대비되는 특징은 아담과 이브가 서로 다른 유형의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수적인, 상호보완적인 역할임을 말하는 쪽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브에겐 아담이라는 동굴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고, 아담에겐 이브라는 창문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21세기에 뱀파이어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의 문제이며, 그것이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 이유일 것이다.

 

새천년에 뱀파이어의 삶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고 앞서 언급했듯이 아담과 이브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속 가능한 피 공급처를 구하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실제로 결말부, 이들의 피 공급처에 문제가 생김으로써 앞으로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막을 내린다. 아담과 이브는 죽을 위기에 처하고, 뱀파이어는 멸종될 위기에 직면한다.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가 뱀파이어를 완전히 타자화 하여 그들을 코믹하게 그려 냄으로써 기존의 피를 둘러싼 진지한 서사와 신화를 해체하는 뉘앙스를 풍겼다면, 이 영화는 그 해체의 과정을 멸종위기에 몰린 내부자의 눈으로 바라본다. 이것은 무엇의 멸종을 상징하는가?

 

영화는 소위 있어 보이는비주얼을 만들어내는 데에 상당한 에너지를 할애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이들이 처한 상황과 어떤 연관성을 가진다. 카메라는 인간사회와 동떨어진 아담과 이브만의 공간들(아담의 방, 모로코의 골목길 등)을 예술적으로 촬영한다. 여기서 예술적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촬영이 아름답다는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두 뱀파이어가 처한 상황을 어떤 예술작품, 즉 과거의 미적 유물처럼 묘사했다는 뜻이다. 이들은 구석을 차지하는 움직이지 못하는 동상처럼, 아름답지만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감독이 묘사한 뱀파이어와 스러져가는 그들의 세계는 예술과 예술가의 세계에 대한 은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몰락한 뱀파이어의 신화와 세계를 묘사하는 짐 자무쉬의 시선에는, 아담과 이브 커플이 자주 지나다니는 쇄락한 철강 산업 지대의 공장들처럼 이제는 폐허가 되어버린 어떤 것에 대한 진한 향수가 담겨있다. 내가 알던 나의 세계는 어쩌다 21세기를 앓아야 했나. 흡혈귀들은 어쩌다 21세기를 견뎌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걸까.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스틸컷 © 찬란

 

지구 크기만 한 다이아몬드 알아? ‘백색왜성이라는 압축 별 같은 거야. 그 성분은 거대 보석인데, 아름다운 연주소리가 난대.”

다이아몬드에서 황홀한 음악이 터져 나온다..그 별 어딨어?”

겨우 50광년 거리야.”

 

 

보도자료 및 제보cinerewind@cinerewind.com

노상원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3기
cinerewind@cinerewind.com

Read More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트위터 네이버포스트 네이버블로그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씨네리와인드.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