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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관녀(棺女)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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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4-21 [16:45]

물꽃 마을은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조그마한 마을이다.

 

군부독재 시절 저수지를 파고 수로를 개설하는 등 마을 발전을 위해 노력했고 때문에 잠깐 동안 인구가 늘어난 적 있다.

 

하지만 도시화가 더뎌지고 농사 외에 마땅한 일자리가 생기지 않으면서 점차 사람들이 떠나갔고 80년대 중반에는 여성과 아이들이 부족해 중매결혼이 성행했다고 한다.

 

그래서 ‘물꽃 마을 연쇄 살인사건’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책이 나오기 전까지.

 

효림 : 그러니까 이 책이 마을에 관짝을 닫아버린 거네?
진석 : 그렇다고 볼 수 있어. 이후로 노령화가 진행되고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마을에서 떠나갔으니까.
효림 : ‘자전거를 탄 살인마’라. 이거 유명한 작품이야? 난 본 적이 없는데.
진석 : 우리나라 범죄 소설 자체가 인기가 많지 않으니까 모를 만도 하지. 옆 나라 일본만 해도 유명한 작품들도 많고 매년 인기 작가들이 1년에 한 편씩은 쓰는데 30년도 더 된 작품이 계속 인기를 끄는 것도 이상한 일이잖아.
효림 : 하긴. 근데 사건 자체도 뉴스에서 처음 들어봤어.
진석 : 화성 연쇄 살인사건이나 개구리 소년 사건처럼 미제 사건들은 언론에서도 여전히 많이 다루지만 이미 끝난 사건은 노출 빈도가 적잖아. 영화나 드라마로 다룬다면 모를까 그러지도 않았고 말이야.
효림 : 그러게. 이 사건은 왜 나오지 않은 걸까. 책만 보면 나름 괜찮아 보이는데.
진석 : 뭐, 나왔다면 그 아줌마만 더 스타가 되었겠지. 그나저나 좀 더 빨리 갈 수 없어? 속도가 완전 거북인데?
효림 : 장롱면허라 이게 최선이라고. 오빠는 무슨 나이가 서른이 넘은 사람이 아직 면허도 안 땄어? 진짜 너무하다, 너무해.
진석 : 그니까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하다, 그치?

 

창밖으로 저수지가 보인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따라 양옆으로 늘어선 나무와 개나리 꽃밭은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의 느낌을 준다.

 

잠시 차를 멈추고 연못을 바라본다.

 

연꽃과 부레옥잠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다.

 

효림이는 조그마한 개구리를 손바닥 위에 올리고 신기한 듯 바라본다.

 

효림 : 이런 데에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진석 : 그래서 영화화되지 않은 게 아닐까. 살인이란 건 음침하고 후미진 곳에서 벌어질 거 같잖아.
효림 : 하긴 이런 장소는 순정만화가 어울리겠네. 그 책만 봤을 때는 이런 곳인지 몰랐는데. 생각해 보니 풍경묘사 같은 건 전혀 없었던 거 같아. 무슨 이유가 있었나.
진석 : 자신이 없었던 거야. 전문적으로 글을 배운 작가가 아니잖아. 작품들 보면 다 그래. 딱딱하고 단면적이야.
효림 : 그 아줌마 어지간히 싫어하나 보다.
진석 : 너도 그런 적 있지 않아? 왜, 학교 다니다 보면 교수한테 알랑방귀 뀌면서 좋은 기회 가져가는 애들 있잖아.
효림 : 많죠, 아주. 그런 애들이 인턴으로 한 번 기회 얻으면 면접 때도 더 유리하고. 근데 따지고 보면 걔들도 노력을 안 한 건 아냐. 어울리기 싫은 노인네들 사이에 껴서 기분 맞춰주느라 고생했잖아.
진석 : 그걸 고생으로 봐야 되는 건가. 그나저나 숙소는 여기서 더 가야 되는 거야?
효림 : 응. 차로 몇 십분은 더 가야 돼. 이게 다 오빠가 화장실 깨끗한 곳 찾아서 그런 거잖아. 여기 화장실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곳들도 있을 거 같은데 아침에 꼭 보고 나와야 되겠는 걸, 오빠는.
진석 : 그것도 그렇고 숙소가 사건 장소랑 가까워봐야 좋을 게 없지. 자, 그만 출발하자.

 

숙소는 3층짜리 모텔이다.

 

주변에 이 건물 하나 밖에 없으며 차가 2~3대 정도 있고 혼자 온 손님들이 보이는 거 봐서는 냄새를 맡은 기자 몇 명이 벌써 도착한 거 같다.

 

그날 속보를 보고 바로 물꽃 마을로 떠날 준비를 했다.

 

효림이는 이번 학기는 수업이 하나뿐이고 마지막 학기라 대체과제가 가능하다며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그 애가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조사한 뒤에 가고 싶다고 해서 하루가 지난 뒤 출발했다.

 

자료라고 해봤자 책 한 권이면 퉁칠 만큼 많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한 권이 사건을 세세하게 다뤘기 때문에 다른 글을 볼 필요가 없다는 게 맞을 거다.

 

숙자 아줌마는 35년 전 경찰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같이 수사했다.

 

본인은 경찰과의 ‘갈등’이라 적었지만 필요한 정보는 대부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 책은 본인이 겪은 끔찍한 기억에서 시작된다.

 

그때 느꼈던 죄책감과 후회, 분노의 감정이 문장 곳곳에 서려있다.

 

그래서 물꽃 마을이 이름처럼 아름다운 곳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수풀 사이로 이름 모를 새들이 날아다니고 흐르는 투명한 냇물 아래로 조그마한 물고기가 보이며 꽃내음이 코끝을 달달하게 물들이는 이 낙원에 새하얀 양털을 뒤집어 쓴 검은 늑대가 살았을 거라고는.

 

체크인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짐을 풀고 노트북으로 마을 지도를 켠다.

 

사건이 발생한 마을은 숙소에서 걸어서 20분 거리다.

 

진석 : 아침 운동으로 나쁘지 않겠다.
효림 : 아마 엄청 걷게 될 걸? 여기 책에도 적혀 있잖아. 증거를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매일 해가 뜨고 질 때까지 걸었던 덕분이라고.
진석 : 근데 그 증거가 거짓이었잖아. 뭐, 어쨌든 많이 걸어야 되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긴 하지. 살인이 발생했던 장소들은 지금은 마을 사람들이 살지 않아. 다들 외곽 쪽으로 이사를 했다고 하더라고.
효림 : 그러면 나눠서 수사하면 되겠네. 오빠가 걷는 걸 좋아하니까 사건현장을 둘러보면서 다시 한 번 그때의 행적을 조사해 봐. 난 동사무소랑 마을회관에 가서 사건에 대해 조사 좀 해볼게. 하루 종일 수사하고 해가 질 때면 숙소에서 서로 조사한 내용을 풀어서 맞춰보고. 그러면 조사가 더 수월해질 거 같은데, 어때?
진석 : 사건현장을 다시 둘러보는 건 하루면 끝날 거 같은데. 너무 오래 전 일이라 증거로 나올 만한 게 있을 거 같지도 않아. 살인범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그 기분을 느껴보는 건 의미가 있을 거 같지만 그게 진범 찾기에 큰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야.
효림 : 범인의 기분을 느끼라는 게 아니라. 숙자 아줌마가 되어보라는 거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면 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알 수 있잖아. 그러면 어디서 실수를 저질렀는지 보일 것이고 운이 좋으면 진범까지 잡을지 모르지.
진석 : 당시 경찰들도 같은 결론에 도달한 거 보면 실수는 없었던 거 같은데.
효림 : 경찰은 모르겠는데 기자들은 아냐. 당시 사건을 다룬 기사들을 보면 대부분이 범인이 잡힌 후 경찰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 사건을 재구성한 기사를 찾기 힘든 거 보면 아마 정보 공개가 많지 않았던 거 같아.
진석 : 이런 조그마한 마을이니까 경찰이 입을 닫아버리면 그만이었겠지. 더군다나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여자가 사건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고 하면 기자도 더 할 말은 없었을 테니까.
효림 : 그럼 오늘부터 출발해 볼까요? 우리에겐 시간이 생명이잖아. 아직 냄새를 맡은 기자가 적은 거 같아 다행이긴 한데 너무 여유부리면 안 되겠지?
진석 : 사건 현장은 가로등도 없을 수 있으니까 빨리 출발하는 게 좋긴 하지. 어서 끝내고 와서 오늘 밤도...
효림 : 아, 하는 건 사건 다 끝내고 하자. 그러다 몸이 먼저 지치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빨리빨리 움직이라고요, 아저씨.

 

만약 그때의 수사가 잘못되었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3개의 경찰서가 합동 수사를 펼쳤고 사건 현장의 재구성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 여자는 방송에서도 대학교 강연에서도 몇 번이고 그 사건을 언급했다.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왜 35년 만에 이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과거사건조사위는 미제 사건을 위해 설립된 경찰 외부 조직이다.

 

은퇴를 앞둔 경찰들이 주축이 되었고 외부 간섭 없이 사건을 조사할 수 있게 소속 부서를 배치하지 않았다.

 

그들이 왜 완결된 사건에 손을 댄 걸까.

 

목적을 완수하기 전에 곁눈질을 두는 집단은 없다.

 

누군가 제보를 한 게 분명하다.

 

헌데 제보를 했다면 왜 하필 지금일까.

 

35년이다.

 

3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한 사건만을 파헤쳤다고 보기에는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났다.

 

오세근이 마음을 바꾼 걸까.

 

그가 죄를 부정할 만한 사건이 외부에서 발생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그 단서는 이곳 물꽃 마을에 있다.

 

그의 시간은 여기에서 멈춰버렸으니까.

 

처음 시작 장소는 당시 오세근이 살던 집이다.

 

이 조그마한 단독주택이 모든 비극의 시발점이다.

 

그날 이후 사람들의 출입이 아예 없었는지 먼지가 가득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살인자를 저주하는 낙서를 기대했던 마음 때문인지 조금은 실망이다.

 

으스스한 흉가를 기대했는데 더러운 폐가다.

 

창호지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미닫이문으로 된 현관으로 들어가면 좌측에 손잡이가 달린 방이 있다.

 

방에는 우측에 조그마한 창문이 하나 달려 있다.

 

부엌과 화장실은 야외에 있다.

 

부엌에 놓인 가마솥과 천장의 전구는 동화책에서나 볼 법한 풍경을 자아낸다.

 

식기구를 보니 밥그릇과 국그릇이 2개씩이다.

 

방 안에는 못생긴 고릴라 인형이 한 구석에 처박혀 있다.

 

오세근의 기소 내용에는 아동 유괴와 성폭행이 있었다.

 

이 내용은 기사에만 나와 있을 뿐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한 방송에서 아이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마이크가 청중에게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함께 분노했다고 말한 질문자는 뉴스를 통해 범인이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왜 책에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지 않았는지, 지금 이 아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작가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숙자 : 햇빛은 어둠을 밝혀줘요. 캄캄한 거짓을 환하게 비춰준다는 점에서 진실은 햇빛과 같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햇빛 뒤에는 그림자가 존재해요. 밝게 빛날수록 그 뒤에 어둠은 더 길어져요. 거짓이 짙을수록 빛은 더 밝아야만 해요. 그래서 이 사건은 그림자가 더 길 수밖에 없어요. 그 그림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죠. 어쩌면 평생 갇혀있을지도 모르고요. 그 아이는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입니다. 생존자에게는 살아나갈 수 있는 동력이 필요해요. 글은 평생 남는 기억과도 같아요. 그 기억이 상처로 남지 않도록 묻어두는 게 제가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박수 소리를 들었을 때 지었던 표정은 진심이 전해졌단 기쁨이었을까, 아니면 거짓이 통했다는 교활한 안도였을까.

 

못생긴 인형을 안고 좋아했을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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