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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의 시간'과 '1917' 속 목적지에 관하여

'사냥의 시간'과 '1917'이 목적지로 가는 방법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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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5-06 [11:10]

▲ '사냥의 시간' 스틸컷     ©리틀빅픽처스

 

[씨네리와인드|한별] 2011년 ‘파수꾼’이라는 영화를 장편 데뷔작으로 들고 온 윤성현 감독은 말 그대로 호평 세례를 받으며 최고 기대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부여받았다. 국내에서 좀처럼 나오기 힘든 작품이었기에, 또한 ‘파수꾼’ 이후 새로운 신작을 내지 않고 있었기에 ‘사냥의 시간’은 화려한 캐스팅과 ‘파수꾼’ 감독의 후속작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기대를 모았다. 

 

샘 멘데스 감독의 <1917>과 같이 언급되더라

 

막상 공개되고 나서 기대와는 달리 ‘사냥의 시간’은 호평보다는 혹평이 많았다. 이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관객들의 기대를 쥐고 흔들며 밀당을 해 온 윤성현 감독의 기대작이기에 기대치가 높았던 탓도 있을 것이고, 극장에서 봐야 제맛인 영화를 OTT로 봐서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사냥의 시간’은 미장센이나 사운드, 배경 구현 등의 요소들이 정말 잘 된 영화다. ‘파수꾼’이 내러티브 중심의 영화였다면, ‘사냥의 시간’은 내러티브와는 거리가 먼 예술적인 요소들을 강조하며 영화의 본질을 강조하는 데 집중했다. 윤성현 감독은 <사냥의 시간>이 공개된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청각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영화를 만드니까 내러티브에 익숙하신 분들에게 낯설게 다가가는 것 같다며, ‘1917’이나 ‘레버넌트’도 반전이 있거나 큰 이야기는 아니지만 외국영화라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코로나 여파로 2월에 개봉해 국내에서 아직까지도 상영 중인 ‘1917’은 2020년 3월에 열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과 음향믹싱상, 그리고 시각효과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국내에서 오래 상영되며 관객과 만난 덕분에 ‘사냥의 시간’과 같이 언급되는 영화 중 하나다.

 

필자는 100점 만점의 점수로 ‘1917’에는 85점, ‘사냥의 시간’에는 54점을 줬다. 영화에 점수 매기는 걸 좋아하거나 영화를 비교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31점이라는 작지 않은 점수의 간극은 어느 부분에서 발생했을까. 먼저 두 작품은 모두 ‘긴장감’이라는 요소의 측면에서는 매우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나 ‘사냥의 시간’은 국내에서 이렇게 긴장감을 끌어내는 영화가 지금까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긴장감’이라는 측면에서 역대급인 작품이다. 붉은 색채의 미장센이 주는 분위기와 긴장감, 화면을 잡거나 촬영하는 구도가 일품이며, 배우들의 연기 또한 흠 잡을 데 없어 찬사를 보낼 만하다. 다만 많이 언급되는 ‘1917’과 굳이 비교를 하자면, 두 작품 모두 내러티브가 주가 되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동일해도 다른 여러 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 '1917' 스틸컷     ©(주)스마일이엔티

 

쫓는 ‘1917’, 쫓기는 ‘사냥의 시간’

 

‘1917’은 쫓는다. ‘사냥의 시간’은 쫓긴다. 쉽게 말하면 ‘1917’은 목적지, 목표가 뚜렷하다. 반면, ‘사냥의 시간’은 목적지나 목표가 없다. 긴장감을 자아내는 것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그 이상을 느끼기 힘들다. 물론 ‘1917’이 혁신적인 기술에 더해 작품성까지 담은 웰메이드 작품이기에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냥의 시간’과 ‘1917’이 비교될 만한 요소가 많은 건 분명해 보인다. 

 

먼저 주인공을 보자. ‘1917’의 주인공은 스코필드 1명이고, ‘사냥의 시간’은 준석, 장호, 기훈 3명이다. ‘1917’이 한 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면, ‘사냥의 시간’은 세 명이 중심이 되어 함께 사건을 풀어나가는 전개 방식을 택했다. 그러다 보니 ‘사냥의 시간’은 캐릭터를 살리는 면에서 오차가 발생했다. 이들의 연기는 훌륭하지만 캐릭터 하나하나의 개성이 살지 못한다. 더욱이 이들에 대한 설명은 안타깝게도 와닿지 않고 때로는 답답하기까지 하다. 그냥 무작정 일을 벌이기 위한 캐릭터에 불과하다는 느낌이랄까. 캐릭터는 놔두고 배경이나 시대를 보더라도 ‘1917’은 전쟁을 하는 최전방이 배경으로, 설명을 따로 하지 않아도 조금 보면 캐릭터를 이해하고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이 현재가 아닌 미래라면 관객들은 이를 알 수 없으니 그에 맞는 설명을 해야 하는데도, ‘사냥의 시간’은 전체적인 세계관과 그 안에 속해 있는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마치 앙꼬 빠진 찐빵의 느낌이다. 

 

앞서 필자는 ‘1917’은 쫓고, ‘사냥의 시간’은 쫓긴다고 말한바 있다. ‘1917’의 주인공은 책임감을 가지고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1917’은 내러티브가 없어도 이러한 구조를 기술적인 측면에서 화려하게 표현해냈는데, 이 두 작품을 볼 때 목적지가 있고 없고는 매우 중요한 요소에 속한다. ‘1917’이 목적지가 있다면 ‘사냥의 시간’은 목적지가 없다. ‘1917’의 주인공이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그 장소로 위험을 무릅쓰며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발견하는 휴머니티와 긴장감, 그리고 그 현장에 있는 듯한 생동감은 내러티브가 없어도 그냥 물흐르듯이 흐르지 않고 영화가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게 만든다. 혹은 방향성이 모호해도 주인공에 따라가게 되어 큰 거부감이 없다. 반면 ‘사냥의 시간’은 일을 저지르고 뚜렷한 목적지 없이 그냥 물흐르듯이 되는 대로 가는 영화에 더 가깝다. 사정에 맞게, 발 가는대로 일단 멀리. 이건 그렇다 쳐도 영화를 보고 오락성 말고는 그다지 남는 게 없다는 점이 문제다. 시대적 배경의 구현은 잘 했지만, 시대적 배경이 와닿지는 않기 때문이다. 

 

‘1917’의 주인공은 목적지가 있기 때문에 계속 가야할 필요가 있다. 두 작품 모두 긴장감은 잘 살려냈지만, ‘1917’은 마지막 총알이 날아다니는 평원을 달리는 장면에서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는 점에서 긴장감의 절정에 다다르는 하이라이트가 인상적으로 남는다. 이에 반해 ‘사냥의 시간’ 속 그냥 일단 멀리 도망치는 게 우선인 주인공들에게는 목적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준석과 장호가 상수에 맞서 총을 쏘며 대치하는 마지막 장면이 굳이 따지면 하이라이트이지만, 긴장감의 절정이라고 하기에는 감정적으로 부족하다. 국내에서는 긴장감을 조성하는 이러한 장면과 방법이 신선하지만 결국 총을 쏘고 누군가는 맞는다는 장면에서 긴장감을 최대한으로 뽑아내는 것은 실패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와 더불어 극 중 등장하는 사소한 요소들을 ‘1917’을 잘 살려내 유용하게 사용한다면, ‘사냥의 시간’은 등장만 하고 결국 버려지는 요소들이 많다는 점도 아쉬움을 자아내는 부분이다. 

 

스토리가 부족하고 내러티브가 부족해도 좋은 영화는 탄생할 수 있다. ‘사냥의 시간’은 내러티브가 약해서가 문제가 아니라 액션도, 시대극도, 공포도 아닌, 그렇다고 스릴러라 하기에도 이상한 애매모호한 장르가 되어 버렸다는 점이 문제다. 그럼에도 이러한 스토리에 이렇게 큰 긴장감을 조성하는 능력과 디스토피아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배경과 그래픽의 구현은 한국영화의 새로운 발판이 될 여지를 남겨놓는다. 아쉬운 부분이 훨씬 커서 그렇지 국내에서 이런 영화가 탄생했다는 점은 놀랍다. 스크린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 두고두고 아쉬울 따름이다. 영화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윤성현 감독의 도전에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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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
씨네리와인드 미디어본부/편집부/기획취재부(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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