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전체기사

News & Report

Review

Magazine

Opinion

Critics

Culture

DB

한국문학 다시읽기|역할과 본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랑의 아픔

김동인 ‘배따라기’

가 -가 +


기사승인 2020-05-06 [14:29]

▲ '배따라기' 표지  © 맑은소리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서정주의 시 ‘신부’는 ‘일월산황씨부인당신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일월산황씨부인당신화’는 많은 변이가 이뤄졌는데 그중 가장 많이 이뤄진 변이가 첫날밤 창호에 비친 나무 글미자를 간부로 오인한 남편으로부터 소박 당하여 황씨 부인이 원사했다는 변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가인 서정주는 이 변이를 바탕으로 슬프고도 안타까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신랑과 첫날밤을 기다리던 신부는 신랑의 오해로 안타까운 일을 겪게 된다. 첫날밤을 치르기 전 오줌이 급한 신랑은 냉큼 일어나 달리다가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린다. 한데 신랑은 신부가 음탕해 그 새를 참지 못해서 손으로 잡아당긴 거라 착각한다. 이에 신랑은 문 돌쩌귀에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달아나 버린다. 그리고 4~50년이 지난 뒤 볼일이 생겨 옛 집 옆을 지나던 신랑은 호기심에 신부 방 문을 연다.

 

그 안에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습 그대로 신부가 고스란히 앉아 있다. 신랑이 건드리자 초록 재와 다홍 재가 되어 내려앉아 버린 신부의 모습은 한순간의 오해가 평생 사랑의 믿음을 빼앗아 버린 안타까운 순간을 보여준다. 사랑에 있어 오해와 상처는 소통의 단절과 역할의 강요에서 비롯된다. 과거 중매를 통한 결혼은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채로 이뤄졌기에 상대의 행동 하나가 오해를 사게 만들었다.

 

특히 여성은 정숙하고 남편을 위해 헌신을 바쳐야 된다는 시대의 고정관념은 여성을 억압하고 여성에 가해지는 남성의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순결을 잃을 위기에 처한 여성에게 차라리 자결하라며 주어진 은장도나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갔다 돌아온 여인들을 속되게 칭했던 화냥년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또 열녀라는 말은 여성에게 역할을 강요했던 잘못된 훈장이었다.

 

당시 마을에 열녀가 나오면 국가 차원에서 보상이 주어졌다. 때문에 마을은 남편이 죽은 여성에게 따라 죽을 것을 강요하는 등 당시 시대가 추구하는 ‘여성다움’에 대한 강압이 있었다. ‘감자’로 잘 알려진 김동인 작가의 단편소설 ‘배따라기’ 역시 이런 여성에 대한 역할론의 강조와 오해가 한 형제의 사이를 갈라놓은 안타까운 이야기를 보여준다.

 

작품은 액자식 구성을 지닌다. 봄 경치를 구경하며 유토피아를 꿈꾸던 ‘나’는 배따라기 노래에 이끌려 뱃사람인 ‘그’를 만난다. ‘그’는 ‘나’에게 19년 전 자신의 오해가 만든 안타까운 사연을 말한다. 고향 영유에서 아내와 동생과 함께 살던 그는 어느 날 아내와 동생 사이를 오해해 아내를 쫓아낸다. 이 사건으로 아내는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고 동생은 고향을 떠난다. ‘그’는 동생을 찾아 뱃사공이 되어 전국을 떠돈다.

 

민요 ‘배따라기’에는 삶의 희로애락과 떠돌이 인생에 대한 슬픔이 담겨 있다. 이 민요에 담긴 뱃사람의 모습은 한 곳에 정착해 살아가지 못하는, 한 마디로 몸과 마음의 고향을 찾지 못해 이곳저곳 기울이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정서는 고려가요 ‘청산별곡’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완전한 해석은 아니지만 이 곡이 농지를 떠나 산과 바다, 어디에서도 살아가기 힘든 농민들의 애환을 담았다는 의견이 있다.

 

소설 속 ‘그’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다. 그의 내부에는 가부장적인 사고와 당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함께 열등감이 숨어 있다. 좋은 체격을 지닌 동생과 아름다운 아내는 오해를 심어준다. 아내가 자신이 아닌 동생을 좋아할 수도 있다는 열등감은 오해를 부추긴다. 그리고 아내는 당시 사회가 지녔던 잘못된 관습과 관념에 얽매여 남편에게 의심을 샀다는 이유로 죽음을 택한다.

 

치정극이 시대가 변해도 사랑받는 이유는 오해에서 비롯된 갈등과 사회가 지닌 고정관념에 있다. 강한 역할론에 묶인 인물은 행동과 생각을 강요받고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소통은 비극을 야기한다. 만약 남편이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소통했다면, 동생과 끈끈한 우정을 지녔다면 허투루 의심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작품에서 배따라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두 사람이다.

 

한 명은 ‘그’이고 다른 한 명은 동생이다. 형제에게 배따라기는 후회의 노래다. 동생에게는 오해를 샀다는, 형에게는 오해를 했다는 후회 말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만 화해할 수 없다. 배가 조난되어 다친 형을 동생은 구해주고 형이 상처를 회복해 대화를 나누기 전 자리를 떠나버린다. 그리고 형은 어떻게든 다시 동생을 만나 그 오해를 풀고자 한다. 하지만 떠돌이 삶을 살아갈 운명인 배따라기들에게 정착은 너무나 힘들어 보인다.

 

떠돌이의 삶에는 낭만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들이 떠돌이가 될 수밖에 없는 가슴 아픈 이유가 숨겨져 있다. 이는 열녀에게도 마찬가지다. 열녀라는 말은 헌신적인 사랑이 담겨 있어 보이지만 희생과 정숙의 강요가 이면에 자리한다. 대화와 소통이 아닌 역할과 본분이 중시되면 오해는 깊어진다. 신부의 부(婦)에는 정숙하다 라는 뜻이 담겨 있다. 사랑이 아닌 역할과 본분을 중시한 결혼은 진정한 맺음이 아님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 작가 김동인  © 나무위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보도자료 및 제보|cinerewind@cinerewind.com

김준모의 다른기사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트위터 네이버포스트 네이버블로그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씨네리와인드.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