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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랫폼'이 인간의 생리적 욕구와 평등의 개념을 다루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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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5-07 [10:00]

 

▲ '더 플랫폼' 포스터.  © 넷플릭스(Netflix)


[씨네리와인드|한별] 데뷔작으로 뜨거운 호평을 받는 이가 있다. 스페인에서 탄생한 영화 '더 플랫폼'은 갈데르 가스텔루-우루티아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넷플릭스를 통해 일부 국가를 제외한 전 세계 국가에서 공개된 후 호평 세례를 받았다. 마치 드니 빌뇌브의 단편 'Next Floor'을 떠오르게 하는 '더 플랫폼'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설국열차'를 연상케 하는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와 동시에 '큐브' 시리즈의 절정에 이른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장르적 묘미를 강하게 충족시켜줄 이 영화는 30일마다 랜덤으로 레벨이 바뀌는 수직 감옥에서 깨어난 주인공의 시점으로 전개되며, 현대의 상류 사회와 사회적 계층 간의 차별을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인간의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

 

작품 속에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들이 표현되어 있다. 먹고자 하는 욕구(식욕), 자고자 하는 욕구(수면욕), 성행위를 통해 쾌락을 느끼려는 욕구(성욕) 등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들을 다룬다. 그러면서도 조직이나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욕구보다는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생존을 위한 욕구를 주로 다룬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나 '기생충'이 이러한 욕구들을 비교적 함축적이고 상징적으로 투영했다면, '더 플랫폼'은 여과 없이 대놓고 이러한 욕구들을 드러낸다. '수직 자기 관리 센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작품 속 감옥은 0층부터 시작해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하까지 수많은 층들로 이뤄져 있고, 한 층에 두 명씩 배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은 하루에 한 번, 매우 짧은 시간 동안에만 내려온 테이블을 통해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에너지를 얻어야 하고,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서 주는 대로, 그리고 많이 먹으려고 한다. '먹는다'라기 보다는 '쳐먹는다'라고 표현해야 맞을 정도로 이들에게는 '식(음식)'이 삶의 가장 큰 중요 순위에 위치한다. 랜덤으로 층이 바뀔 때 음식이 도달하지 못하는 아래 깊은 층에 배정되면, 이들은 약육강식의 논리로 룸메이트를 잡아먹기에 이른다. 

 

그렇기에 두 명씩 배정되어 있는 층에서 잘 때도 이들은 안심하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수면이라는 기본적인 욕구조차 자유롭지 않다. 위쪽 층에 배정되어 있다면 덜하겠지만, 아래층에 배치된 이들은 잠에 빠지는 순간 바로 사냥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수직 감옥에 들어올 때 자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한 가지를 들고 들어올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지는데, 주인공의 룸메이트는 '칼'이라는 도구를 선택하는 것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이를 택한 것이다. 여기서 생리적인 욕구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환경 내에서 확실성, 정돈, 예측성 등을 보장받고자 하는 인간의 안전욕도 드러나는 셈이다. 또한 어느 층에 배정되느냐에 따라 친했던 룸메이트가 적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여자와 남자가 같은 층으로 배정되었을 경우에는 인간의 성욕도 드러난다. 하위층이라면 서로를 죽이는 대상이 되지만, 상위층에서라면 음식이 있고 상대를 죽여야 할 필요가 없으니 성욕을 채우기 위한 욕구를 성행위로 풀기도 한다. 이러한 적나라한 욕구의 표현을 통해 사회 시스템 속의 갈등과 심리를 볼 수 있다.

 

▲ '더 플랫폼' 스틸컷.  © NETFLIX

 

'더 플랫폼' 속 평등의 개념

 

0층에 존재하는 요리를 하는 요리사, 주방장 등의 사람들은 시스템 위에 있는 인물이다. 혹은 감옥 안의 시스템과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0층에서 음식을 만들어 아래층으로 음식을 한 층씩 내리는 과정에서 상위층에 있는 사람들은 제한된 짧은 시간 동안 먹고 또 먹는다. 음식을 저장해놓으면 생존에 직결되는 벌칙이 있기 때문에, 하루에 한 번 테이블이 자신의 층에 머무르는 시간 안에 다 먹어야 한다. 0층과 가까울수록 진수성찬을 맛볼 수 있지만, 50층만 넘어가면 음식이 다  섞여 있거나 난장판으로 되어 있고, 100층 아래에 있는 층에는 찌꺼기 하나 전달되지 않는다. 양보라는 것은 시스템 속의 이들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래층에서 생존하고 상위층으로 올라온 이들은 음식을 더 많이 먹는 행위를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랜덤으로 층이 바뀌면서 이는 모두의 머리 속에 당연하게 자리 잡은 '가치'가 되어 간다.  

 

주인공이 상위 층으로 올라온 뒤, 시스템 위에 있던 관리자 중 한 명이 주인공과 같은 층으로 배정받아 들어온다. 시스템 안으로 들어온, 혹은 내려온 관리자는 무능한 관료에 불과하다. 몇 층까지 있는지도 정확하게 모르는 관리자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남은 시간을 시스템 속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자원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음식이 내려올 때마다 자신의 몫만 철저하게 배당받고,  아래층의 사람들에게도 배정받은 만큼만 먹으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결국 불가능한 것으로 그려진다. 힘으로 누르면 잠깐은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실패하게 된다. 

 

'더 플랫폼'은 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평등'이라는 것이 얼마나 단편적인지, 현실로 구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불가능임을 말한다. '공산주의'라는 개념도 이론적인 면에서는 이상적이지만, 현실로 구현하기에는 '인간'이라는 변수가 있다. 결국 '인간'이 존재하는 한, 완벽한 평등이라는 것은 관념에 불과하다. '설국열차'나 '더 플랫폼'이나 불공평한 시스템에 대해 의문을 갖고 시스템을 파괴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더 플랫폼'은 결과적으로 시스템을 파괴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한다. '무엇 때문에 이러한 시스템이 존재하는가', '혹은 결국 가장 위에는 누가 있는가'라는 설명에 대한 힌트도, 답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스템은 결국 인간 세상의 단면을 보여줄 뿐, 인간 사회 위에서 별다른 조종을 하는 이가 없다는 점을 투영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인간 세상 위에 있는 것이라면 '신' 정도 되려나.

 

'더 플랫폼'은 러닝타임 내내 '메시지'라는 것을 강조한다. 0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시스템 위에 군림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메시지와 사회의 불합리함을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영화의 결말은 최선의 결말이었다고 본다. 물론 더 나은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더 플랫폼'의 결말은 결국 모든 것을 담은 하이라이트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더 플랫폼'은 인간의 욕심과 잔인함은 내면에서 나온다는 것을, 여러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를 잘 함축해 보여준 흥미로운 아이디어의 영화라고 평하고 싶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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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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