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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다시읽기|물질만능주의 안에서 백치가 되어버린 여인

계용묵 '백치 아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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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5-13 [18:24]

  '백치 아다다' 표지 © 학이시습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백치’는 뇌에 장애나 질환이 있어 지능이 아주 낮은 상태나 그런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앞에 붙은 이 말부터 작품은 ‘아다다’라는 인물을 삼중으로 괴롭힌다. 첫 번째는 백치라는 표현을 통해 그녀가 지적으로 낮은 사람이라 말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녀를 벙어리(요즘은 언어장애로 순화된 표현을 사용하지만 당시에는 음성 언어를 낼 수 없는 사람을 낮잡아 벙어리라 불렀다)로 설정한 것, 세 번째는 멀쩡한 이름을 놔두고 ‘아다다’란 별명을 제목에 넣었다는 점이다. ‘아다다’는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주인공이 내는 소리로 부르는 별명이다.

 

이 정도 설정만 봐도 아다다는 작가가 정말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려고 작정을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작가 계용묵에게 있어 현실주의적·경향파적 작품세계에서 인생파적·예술파적 작품세계의 변화 시점이 되는 소설이다. 인생파적은 인간 삶에 대해 고뇌와 비애를 담아낸다. 앞선 작품세계가 현실을 배경으로 사상적인 주장을 보여준다면 뒤의 작품세계는 인간을 중점에 두고 감상적인 서술을 전개한다.

 

그가 그린 아다다라는 인물은 제 이름을 두고도 말을 ‘아다다다다’라고 해서 아다다로 불린다. 언어 장애가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부모는 이런 아다다를 부끄럽게 여긴다. 빨리 다른 지역으로 시집이나 가 버렸으면 한다. 하지만 언어장애가 있는 아다다를 데려갈 집안은 없다. 결국 부모는 돈에 그녀를 판다. 멀리 떨어진 마을의 가난뱅이에게 논 한 섬지기를 딸려 보낸 것이다. 이렇게 돈에 팔려간 아다다는 처음에는 좋은 대우를 받는다.

 

말도 못하고 하는 행동도 실수의 연속이지만 돈을 가져왔으니 인정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돈을 주고 산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한다. 남편은 돈을 벌게 되자 제일 먼저 첩을 들인다. 그리고 아다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이 끔찍한 기억은 아다다에게 돈의 무서움을 알려준다. 친정에 돌아온 아다다는 수롱이란 노총각에게 시집을 간다. 요즘이야 30대에 결혼을 많이 하지만 당시에 30이 넘으면 노총각이다.

 

수롱은 상놈 출신이지만 아다다가 유일하게 기댈 존재다. 아다다는 집에서 쫓겨났고 집안에서 부끄러운 존재로 낙인찍혔다. 시대적인 상황을 생각할 때 당시 여성이 남성에게 쫓겨나 친정으로 돌아온 게 얼마나 동네 창피한 일이겠나. 그런 아다다에게 수롱과의 새로운 출발은 희망이지만 그의 낮은 신분 때문에 차마 동네에서 새롭게 시작할 순 없다. 때문에 두 사람은 신미도라는 섬으로 가서 살기로 결정한다.

 

이 섬에서 아다다의 사랑과 기억은 잘못된 선택을 하고야 만다. 그녀에게 수롱은 소중한 존재다. 한 번 사랑에 실패한 아다다는 돈이 아닌 마음으로 수롱이 자신을 품어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을 위험이 높은 고기잡이도 뜯어말리며 남편이 오래 곁에 있어줬으면 한다. 이때 수롱은 그럼 밭을 사서 농사를 하자며 모아둔 돈을 꺼낸다. 이 돈은 아다다에게 끔찍했던 첫 결혼의 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남편은 돈 때문에 자신을 버렸다. 수롱도 돈이 생기면 첩을 들일 테고 나는 또 버림받게 될 것이다. 아다다는 돈을 바다에 버린다. 이런 아다다의 행동은 말 그대로 ‘백치’다. 지능이 낮지 않고서야 돈을 바다에 버릴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다다에게 있어 돈은 인간성을 버리게 만드는 무서운 물건이다. 돈 때문에 아다다는 남편에게, 또 집에서 쫓겨난 건 물론 수롱에게 죽임을 당하며 비극은 완성된다.

 

이 비극은 자본주의사회가 만든 물질만능주의의 비극을 보여준다. 조선시대에는 장애가 있는 이들에 대한 복지정책으로 가족부양을 원칙으로 삼았고 모두 직업을 갖고 자립하도록 권했다. 국가에서 나서 장애가 있는 이들이 맞는 직업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했고 따로 관직제도를 두기도 했다. 자립이 어려운 장애인의 경우 국가에서 직접 구제에 나서며 이들 모두가 한 명의 인간으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힘썼다.

 

반면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이런 장애정책은 크게 후퇴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력이 떨어지는 장애인은 필요 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다다는 돈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돈이 그녀를 보호해주는 유일한 무기다. 하지만 그 무기는 남편이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자마자 힘을 잃게 된다. 결국 돈으로도 아다다는 구원받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만약 아다다가 수롱의 돈을 버리지 않았으면 그녀의 삶은 달라졌을까? 결론은 같았을 것이다. 수롱 역시 천한 신분으로 결혼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아이를 낳아줄 여자면 아무나 상관없다 여기는 인물이다. 그 역시 많은 돈이 생기고 돈을 노리는 여자가 등장한다면 빈털터리에 장애가 있는 아다다를 버렸을 것이다. 결국 인간성이 상실된 자본주의의 물질만능주의에서 아다다가 살아갈 세상은 없다는 걸 이 작품은 보여준다.

 

이다다는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다. 이는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 인간된 가치와 권리를 말하지만 들리지 않는 노동자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어쩌면 남을 속이고 짓밟으며 더 악랄하게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이들이야 말로 ‘백치’일지 모른다.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 제대로 된 권리를 인정받을 수 없는 세상이라면, 그래서 백치가 되어야 한다면 이야 말로 가장 큰 비극이 아닐까 싶다.

 

▲ 작가 계용묵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보도자료 및 제보|cinerewind@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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