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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골드베르그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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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5-19

[씨네리와인드|노상원 리뷰어] 이 글은 최근에 재개봉한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7)’를 전체적으로 리뷰하기보다는,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들려주며 영화에 이십 초 정도 스쳐가는 특정 장면을 짧게 소개하기 위한 글이다.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아마 영화에 가장 많이 쓰인 클래식 곡 중 하나 일 것이다. 귀에 잘 걸리는 멜로디도 그렇지만, 변주곡이라는 형식 자체가 영화의 형식과 잘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언제나 같다. 영화의 시간은 타임캡슐처럼 봉인되어 열어볼 때마다 처음과 같은 그대로의 길이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변주곡은 하나의 주제를 기반으로 변형된 곡들을 하나로 묶은 것으로, 어떤 형식의 곡 보다도 음악이 품고 있는 고유의 시간성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변주곡은 배경음으로 쓰일 때 관객에게 영화는 결국 시간의 흐름을 포착하는 예술이라는 점을 각인시키는 보조장치로서 훌륭히 기능한다. 캐논 변주곡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그 주제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곡도 있지만,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어느 순간 주제/아리아가 밑으로 가라앉고 전혀 다른 풍과 템포의 음악으로 진입해 출발점이 어디였는지 뒤돌아보게 만드는 면이 있다. 그 드라마틱함이 영화를 만드는 이들에게 자주 선택된 이유 아닐까.

 

▲  '시간을 달리는 소녀' 스틸컷.   © 노상원 캡쳐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배경음 삼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장면을 짧게 연이어 보여준다. 방과 후 피아노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지는 음악실, 혼자 남은 아이가 서가 사이에서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도서관,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배구공을 주고받는 체육관, 자판기의 웅웅 대는 소리만이 자리를 채우는 텅 빈 지하실. 그림자가 점점 길어질 때 즈음의 방과 후 고등학교의 모습은 곧바로 칠판에 쓰인 time waits for no one 이라는 글귀로 이어진다.

 

시끄러운 아이들이 빠져나간 학교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은, 낮에는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공간이 저녁 무렵에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공간이 되어버린다는 그 극적인 낙차에서 기인한다. 교실에 고인 청춘의 시간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분명히 우리의 것이지만 우리가 돌보지 않아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영화는 텅 빈 교실의 이미지와 아리아의 선율을 빌려 말하는 것이다.

 

주인공 마코토는 타임 리프 능력을 얻고 나서 처음에는 노래방 시간 되돌리기, 저녁 식사에 좋아하는 반찬이 나온 날로 되돌아가기 등 시시콜콜한 일에 즐겁게 능력을 사용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아무리 시간을 되돌려도 초능력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음을 깨닫는다(오히려 혼란이 가중되어 더 꼬여 버리는 문제들도 있다).

 

결국 마코토는 후반부에 친구 고스케가 외친 마코토, 앞에 보고 달려!’ 라는 말처럼, 역방향이 아닌 순방향으로 그냥 쭉 달림으로써 마지막 장면에 도달한다. 화살처럼 지나가는 시간 앞에서, 우리는 역설적이지만 시간을 흘려보냄으로써 시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의 제목이 '시간을 되돌리는 소녀'가 아닌 이유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스틸컷 © 노상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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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원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3기
cinerewind@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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