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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마저 사치인 답답한 청춘의 모습을 담은 흑백화면

[프리뷰] '루비' / 7월 30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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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7-27 [17:50]

▲ '루비' 메인 포스터  © (주)더쿱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우리 존재 파이팅!”이 적힌 이 작품의 네이버 영화 줄거리는 인사치레와 같다. 우리가 누군가와 만나면 흔히 건네는 다음에 또 보자’ ‘언제 식사나 한 번 하자처럼 말이다. 꿈을 이루지 못한 청춘, 갑에게 막혀 을이 되어버리는 청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막상 자신의 꿈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청춘에게 우리 존재를 위한 파이팅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루비는 흑백을 택한다.

 

컬러에는 개성이 있다. 각자가 다른 색을 지닌다. 하지만 흑백에는 흑과 백, 두 개의 색만 존재할 수 있다. 청춘에게 현실은 백()이란 갑()이 되거나 흑()이란 을()이 되는 것이다. 작품 속 세 명의 인물은 각자의 입장에서 을의 처지를 겪는다. 그들이 속한 공간은 방송국이다. 방송국은 아이러니한 공간이다. 시사 방송을 예로 들자면, 사회의 갑을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방송국 내부의 갑을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 '루비' 스틸컷  © (주)더쿱


사회를 향해서는 변화를 촉구하지만 방송국 내부는 지금의 권력구조를 유지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회에 존재하는 온갖 을이란 을은 다 취재하지만, 내부의 비정규직 스태프 문제는 고려하지 않는다. 상대 방송국이 아니고서야 내부 문제를 들추지 않는다. 서연은 과학 프로그램의 메인 PD. 아마 그녀는 처음 방송국에 발을 들일 때부터 메인 PD를 꿈꾸었을 것이다. 서연은 꿈을 이루었으니 행복한 사람일까.

 

그녀는 시청률 압박을 받는다. 부장은 시청률을 이유로 서연에게 오락적인 측면을 강조하라 말한다. 과학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나올 리가 있나. 방송국 입장에서는 낮은 시청률이라도 교양 방송을 위해 유지할 필요가 있건만 부장은 막무가내다. 이런 서연의 아래에는 은지와 수오가 있다. 은지는 미래의 스타 PD를 꿈꾼다. 어쩌면 그녀는 서연의 과거일지 모른다. 한참 꿈을 꾸고 그걸 이루고 싶어 하는.

 

서연이 과거를 떠올렸다면 은지에게 잘해줄 법도 하지만 현실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를 은지에게 푼다. 은지는 툭하면 욕을 먹는다. 질문만 던져도 알아서 하라고 하고, 알아서 하면 뭐하는 짓이냐고 한 소리 듣는다. 청춘에도 등급이 있다. 먼저 그 자리에 선 청춘은 뒤에서 따라오는 청춘을 이끌어주지 않는다. 나 먹고 살 길도 바쁜 마당에 타인의 멘토 노릇을 자청하기 싫은 것이다.

 

▲ '루비' 스틸컷  © (주)더쿱

 

은지의 남자친구 수오 역시 불안한 청춘이긴 마찬가지다. 정규직 방송 작가를 꿈꾸지만 불안한 계약직인 그는 과학에 대해 제대로 풀어보고 싶지만, 예능적인 요소만 강조하는 방송에 불만이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과학에 대해 잘 알아봤자 여기 방송국에서는 소용없다. 밟히는 게 서연고 출신이고, 그런 좋은 대학을 나온 이들이 연예인 비위 맞추며 방송을 만들어야 되는 곳이 방송국이다.

 

과학 방송임에도 예능적 요소를 위해 출연한 마술사는 흰 비둘기를 잃어버린다. 흰 비둘기는 희망을 상징한다. 이 희망이 사라졌다는 건 세 인물 사이에 어떠한 드라마틱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이런 변화는 흔히 마술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마술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 마술이 완성되지 못했다는 건 이 무더워 주저앉고 싶은 청춘의 여름이 끝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여기에 우주복을 입고 서연과 대화를 나누는 은지와 수오의 모습은 그들 사이의 단절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청춘이 극한의 경쟁을 피하고 생존을 보장받고 싶다면, 모두가 그 경쟁에 참여하지 않으면 된다. 다들 경쟁이 싫다고 말하고 하나로 뭉쳐 연대한다면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한 발짝 더 앞선 자신이 포기해야 될 것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경쟁을 해서 지금의 위치에 왔고, 그 경쟁을 위해 많은 걸 포기했다.

 

▲ '루비' 스틸컷  © (주)더쿱

 

서연은 은지보다 한 발짝 더 앞에 있고, 은지는 수오보다 반 발짝 더 앞서있다. 서연은 두 사람에 비해 방송국 연차가 높으며, 한 프로를 책임지는 메인 PD. 은지는 작가인 수호와 달리 PD라는 점에서 정규직이다. 수오는 방송작가를 꿈꾸는 누군가에게는 한참 앞서간 존재일지 모른다. 서로 단합도, 연결도 되지 않고 각자의 우주에서 떨어진 채 외로움을 느끼는 청춘들에게 개성이란 색은 지나친 사치일지 모른다.

 

루비는 포스터의 문구 그대로 쓴맛으로 가득하다. 너무 쓰디쓴 맛만 있어 다소 답답함이 느껴진다. 내용만 보았을 때 통쾌한 한 방이 기다리고 있을 거 같지만, 현실을 택한 이 영화의 결말은 시원한 사이다와 거리가 멀다. 각자의 색을 잃어버린 채 획일적으로 살아가는 청춘의 불운한 온상을 담아낸 이 영화는 흑백의 화면처럼 성공과 실패, 오직 두 글자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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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획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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