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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Blue)을 품은 우리(Our)의 시간(Hour)

영화 '블루 아워'가 표현하고자 했던 스나다의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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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8-03 [14:16]

 

▲ '블루 아워' 포스터  © 오드 AUD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블루 아워는 장르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일본영화를 보다 보면 특정 장르적 공식에 중점을 둔 작품이 아닌 하나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영화들이 있다. 이런 작품들의 경우 특정 키워드로 작품을 포괄할 순 없지만, 그 개인의 삶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통해 깊은 사색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 영화를 힐링로드무비라 생각했던 이들은 아마 크게 실망할 것이다.

 

하코타 유코 감독은 스나다라는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스나다는 뭐라고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존재다. 때론 밝고 때론 어둡고, 때론 사랑을 찾다가 또 고독을 갈구하는 그녀의 모습은 복잡한 현대인의 심리를 대변하는 듯하다. 다만 이런 복잡함 속에서도 두 가지 측면을 통해 그녀의 캐릭터를 공고히 한다. 첫 번째는 애를 가지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스나다는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은 몰라도 가족을 만드는 거에 부정적으로 반응을 하지만, 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스태프의 말과 그를 축복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 내심 부러움과 고독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스나다의 심리는 아이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두려워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아이가 태어난다는 건, 책임과 성장을 동반한다. 스나다는 그 단계에 접어드는데 반감(또는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두 번째는 인내다. CF 감독인 스나다는 촬영 중 중년배우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협의 없이 찍을 수 없다며 화를 내자 노래가 아닌 독백이라며 설득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앞서 스나다는 업무 관련 전화를 하는 장면에서도 화가 나지만 절대 화를 내지 않는다. 이 모습은 고향으로 가서도 마찬가지다. 고향에서도 스나다는 화가 난 순간에도 거짓된 미소와 함께 그 감정을 꾹 누른다.

 

▲ '블루 아워' 스틸컷  © 오드 AUD

 

스나다가 기요우라와 함께 고향으로 떠나는 장면에서는 두 가지 의문을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갑작스러운 기요우라의 등장이다. 기요우라의 캐릭터는 영화를 찍기 위해 스나다에게 카메라를 빌리는, 딱히 하는 일이 없는 자유로운 친구다. 심은경이 두 번째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이렇게 연하게 캐릭터를 그려도 되나 싶을 만큼 기요우라는 기본적으로 어떤 정보도 없다. 마치 유령처럼.

 

두 번째는 왜 고향에 가지 않는지 스나다가 정확히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나다는 몸이 편찮은 할머니를 만나러 고향으로 돌아오란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가기 싫어하는 이유를 명확히 밝히진 않는다. 기요우라가 스나다의 고향으로 간다고 했을 때 강하게 반대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 점 역시 의문이다. 가기 싫은 장소를 향할 때 보여주는 반감이나 다툼이 이 과정에 없다. 언젠가 돌아갈 장소였다는 듯 기요우라의 선택에 순응한다.

 

이 의문은 스나다의 고향에 도착하면서 점점 사라진다. 스나다의 고향에 도착한 기요우라는 너무나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모습에 지루함을 느낀다. 두 사람이 함께 물을 뿌려 무지개를 만들고, 스나다의 집에서 괴짜인 스나다의 아버지와 오지랖 넓은 스나다의 어머니를 만나는 모습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현실에 지친 두 청춘에게 힐링 여행을 선사할 것만 같다. 이 기대는 별채에 있던 스나다가 집으로 돌아간 순간 처참하게 깨진다.

 

▲ '블루 아워' 스틸컷  © 오드 AUD

 

학교 교사라는 스나다의 오빠 스미오는 불쾌한 언행으로 스나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TV를 보며 홀로 대화를 나누는 어머니는 알고 보니 치매다. 냉장고에는 냉동식품이 가득 쌓여 있고, 어머니는 가족들 밥을 챙겨주기 싫다며 대충 먹으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작품은 왜 스나다가 집에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았는지, 왜 아이를 가지는 걸 두려워했는지 그 이유를 보여준다.

 

스나다와 기요우라는 집이 아닌 별채에 머문다. 또 스나다의 어린 시절 추억의 물건들은 모두 별채에 보관되어 있다. 이는 집안에는 스나다의 추억이 남아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별채가 할머니가 지낸 공간이었다는 점에서 스나다는 가족보다 할머니와 더 가까웠음을 유추할 수 있다. 스나다가 집에 돌아온 것도 얼마나 더 살지 모르는 할머니를 보기 위해서다. 그녀가 처음 집에 도착했을 때는 오빠는 보이지 않는다.

 

오빠와 스나다의 만남은 불쾌한데, 이때 오빠는 여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성적인 농담을 내뱉는다. 과한 추측일 수 있겠지만, 이는 오빠와 스나다 사이에 과거 어떤 사건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사건 때문에 가족은 스미오와 스나다가 만나는 걸 막고자 했고, 때문에 스나다는 처음 집에 갔을 때 스미오를 볼 수 없었다. 아버지가 칼을 사고 휘두르는 장면을 기요우라의 카메라로 찍는다는 점에서도 이런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아버지는 특정한 사건 때문에 스나다를 보호해야 했고, 이런 보호는 칼이란 물건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스미오가 스나다 앞에서 아버지 몰래 이 칼을 휘두른다는 점에서 남성에 의한 폭력을 스나다가 당했음을 은연중에 나타낸다. 스나다를 보호하고자 했던 폭력이나, 스미오가 스나다에게 휘두른 폭력이나 이 두 가지 모두 스나다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장면인 것이다. 어머니가 치매라는 설정은 왜 다시 스나다에게 연락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 '블루 아워' 스틸컷  © 오드 AUD

 

스나다와 기요우라가 폭우 속에 집에 도착했을 때, 집안에 있던 아버지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이는 집안에 스미오가 있기에 스나다를 보호해야 했던 아버지의 반응이 아니었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 문을 여는 건 어머니다. 기억을 잃어버린 어머니에게는 과거의 이 아픔이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그녀는 스나다에게 집으로 오라고 연락을 하고, 아픔이 담긴 공간으로 들어오길 청한다.

 

스나다가 이 아픔과 마주할 수 있는 건 기요우라와 카메라 덕분이다. 기요우라의 카메라는 그녀의 가족을 비춘다. 기요우라는 스나다의 밝은 측면을 의미한다. 때문에 기요우라는 스나다 보다 그녀의 가족들과 잘 어울린다. 스나다에게 알아서 먹고 싶은 걸 냉장고에서 꺼내가라던 어머니는 기요우라에게는 아침 밥상을 차려준다. 기요우라의 캐릭터가 연한 이유는 그녀가 스나다의 또 다른 내면이기 때문이다.

 

스나다는 혼자 힘으로는 가족이란 고통과 다시 마주할 수 없었고, 때문에 기요우라라는 또 다른 자신과 함께한다. 기요우라를 통해서 그녀는 가족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낸다. 스나다가 찍는 건 할머니뿐이다. 이는 그녀가 아직 가족을 완전히 품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스나다가 기요우라가 동네 술집에 갔을 때, 그곳의 종업원은 쌩뚱맞게 스나다에게 슬픔을 숨기면서 그렇게 가식적으로 웃지 말라고 말한다.

 

▲ '블루 아워' 스틸컷  © 오드 AUD

 

스나다가 가족과의 사이에서 얻은 슬픔을 숨기기 위해 했던 건 억지웃음이었고, 이 웃음은 스나다에게 아무런 치유가 되어주지 못했다.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아픔이었던 가족과 다시 마주한 순간 진정한 자신을 찾게 된다. 이전까지 우울이었던 스나다와 밝음의 기요우라를 지니고 있었던 내면은 그 밝음을 우울이 품는 독특한 과정을 보여준다. 잃어버렸던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을 스나다는 알게 된 것이다.

 

블루 아워의 제목은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우울한 시간이다. 흔히 ‘blue’는 우울을 상징하는 색이다. 스나다의 지난 삶은 우울로 가득했다. 어린 시절 그녀가 혼자 숲길을 걸으며 도깨비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누구도 그녀를 공포와 두려움에서 지켜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때문에 스나다는 가족을 만든다 할지라도 자신이 겪었던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지닌다.

 

두 번째는 ‘hour’가 아닌 ‘our’. 이런 우울 속에서도 스나다는 기요우라라는 자신을 만들어 낸다. 시간은 그 공간 속에 고독하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혼자 걸어왔다 생각했던 길을 뒤돌아보면 수많은 누군가가 함께 했음을 알 수 있다. 스나다의 우울 속에서도 그녀의 곁을 함께 해줬던 이들이 있었기에, 그녀가 다시 아픔과 마주할 수 있는 순간이 다가올 수 있었음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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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획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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