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무용 아카데미에 관한 진실을 기억하라

[프리뷰] 진실을 밝히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서스페리아' / 5월 16일 개봉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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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령
기사입력 2019-05-13 [11:02]

▲ (좌) 서스페리아(1977), (우) 서스페리아(2018)     ©DAUM 영화

 

 마녀의 무용 아카데미에서 펼쳐지는 광란의 무대를 감각적으로 그려내 공포 영화의 한 획을 그은 '서스페리아'가 사십여 년 만에 재탄생하여 한국 관객을 찾아간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인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여 감정 장인으로 불리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자신만의 색채로 '서스페리아'를 커버했다. (전반적인 세계관을 제외하면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이기에 '리메이크'가 아닌 '커버 버전'에 가깝다) 그는 캐릭터에 부여한 개성을 통해 인간이 진실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본 기사에서는 진실을 밝히려는 캐릭터의 시점에서 영화를 살펴보겠다.

 

날씨를 통해 진실을 부각시키는, 1977년의 겨울

▲ 서스페리아(2018)은 1977년 겨울을 배경으로 한다     © DAUM 영화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1977년의 겨울이다. 이때 독일에서는 바더 마인호프의 테러가 극에 달했다. 당시 독일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가 전시에 벌인 잔혹 행위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테러 단체는 지난날의 과오를 청산하고 진실을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무용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마녀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무용수 패트리샤는 진실을 밝히려고 하다가 그만 마녀 추종자들의 표적이 되어 버리고 만다. 패트리샤가 자취를 감추자 마녀 추종자들은 그녀가 분명히 테러 단체에 개입되어 있을 거라며 거짓말을 퍼뜨린다.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묻으려는 자, 영화는 두 양상을 끊임없이 대립시킨다.

 

 겨울은 비도 올 수도 있고 눈도 내리며 맑은 날도 있다. 영화는 시간적 배경을 겨울로 설정하여 등장인물이 진실을 마주하는 중요한 장면마다 날씨를 통한 은유를 다채롭게 사용한다.

 

밝혀야만 하는 진실을 씻어 내리는, 비

▲ 클렘페러 박사를 찾아온 패트리샤     © DAUM 영화


 무용 아카데미에서 도망쳐 나온 패트리샤는 정신과 의사인 클렘페러 박사를 찾아간다. 패트리샤는 아카데미가 마녀 추종자들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고 밝히지만, 박사는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판단해 버린다.

 이때 패트리샤는 선반 위에 있던 박사의 아내의 사진 액자를 엎어 버린다. 박사의 아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실종된 이후로 행방이 불명한 상태다.

 이 장면에서 패트리샤는 '당신은 언제나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지금도 내가 하는 말을 안 믿지 않느냐,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기에 아내에 관한 진실 역시 알 수 없는 거다'라고 말하듯이 심오한 눈빛을 보낸다.

  

 그날 이후로 패트리샤의 행방은 완전히 묘연해진다. 무용 아카데미에서는 새로 온 무용수 수지가 패트리샤가 쓰던 방을 대신 쓰게 된다. 마녀 추종자들은 수지를 비롯한 무용수들에게 아카데미의 정체를 숨기기에 급급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무용수는 주술의 희생양이 되어서 사지가 꺾이고 휘는 고통스러운 춤을 추게 된다.

 

 이러한 사건이 주가 되는 도입부에서는 비가 쉴 새 없이 내린다. 빗물은 세상의 만물을 씻어내린다. 바닥에 떨어진 빗방울은 증발해버리면 이 세상에 흔적 하나를 남기지 않는다. 영화 초반부에서는 누군가가 애써 밝히려고 했던 진실이 비에 씻겨 내리듯이 말끔히 사라진다.

 

진실의 발자국을 남기지만 완전하지는 못한, 눈

▲ 패트리샤를 찾는 클렘페러 박사     © DAUM 영화


 클렘페러 박사는 실종된 패트리샤가 남긴 일기를 읽고는 아카데미에 관한 진실을 밝히고자 나선다. 그는 경찰서에 가서 아카데미를 수사해달라고 하지만 형사들은 마녀의 존재를 믿는 거냐면서 비아냥거린다.

 형사들은 일단은 수사 의뢰가 들어왔기에 아카데미를 둘러보지만 아무 이상이 없다고 판단한다. 마녀 추종자들은 형사들에게 의식을 잃게 하는 주술을 걸고는 그들의 성기를 성적으로 학대한다. 주술이 풀리자 형사들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영화에서 마녀 추종자들은 '너희 남자들은 여자들이 하는 말을 모두 망상으로 받아들였지!'라고 말하며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클림페러 박사는 눈길을 걷다가 전쟁 때 헤어진 아내와 재회하게 된다. 아내는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있었다고 말하며 둘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확인한다. 하지만 사실 아내의 모습은 주술로 만들어낸 환영이었다. 진정한 진실을 마주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거짓을 믿어버린 박사 역시 마녀의 굴로 끌려가서 주술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만다.

 

 박사가 아카데미를 조사하는 장면부터는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눈은 비와 달리 일정 시간 동안 바닥에 남아 있으며, 눈길에는 누군가가 걸은 발자국이 남는다. 영화 초반부에 사람들이 외면한 진실이 비에 씻겨져 내려갔던 것과 비교하면, 이는 아카데미의 진실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는 사건 전개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눈 역시도 언젠가는 녹아서 세상에서 사라진다. 클림페러 박사는 아내의 실종에 대해 줄곧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눈길에서 아내의 환영을 봤을 때 아내가 무사하다는 거짓을 믿어 마음의 짐을 덜려고 했다. 그리고 거짓은 영원할 수 없기에 눈이 녹듯이 사라져 버린다. 

 

눈이 부시도록 밝으면 진실을 가리고 마는, 햇빛

▲ 사라는 처음에는 마녀의 소굴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지만,  후에는 아카데미의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 DAUM 영화

 

 마녀 추종자들은 의심을 피하려면 사람들에게 평범한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면서, 일부러 동네 식당에 가서 평범한 중년 여성들처럼 수다를 떤다.

 한편 클림페러 박사는 무용수 사라를 찾아가서 아카데미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도록 도움을 달라고 한다. 영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사라는 자신이 세계적인 무용 아카데미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기에 아카데미가 마녀의 소굴이라는 걸 처음에는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결국 아카데미에 관한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난다. 클렘페러 박사는 아내와 관련된 진실을 받아들이고는 그로 인해 마녀에게 구원받는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클렘페러 박사와 아내가 살던 집에서 다른 가족이 단란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온다. 여기서 클렘페러 박사 부부가 과거에 벽에 새긴 이니셜이 클로즈업 되는데, 내리쬐는 햇빛에 의해서 강조되나 싶더니 빛이 너무 강한 나머지 이니셜이 가려지고 만다.

 

 진실은 누군가에 의해 악의적으로 은폐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나 안정적인 삶과 같은 너무나도 밝은 것들이 진실을 가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진실을 알려는 호기심은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면 평화로운 일상이 깨진다는 두려움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비록 우리가 역사적 아픔과 비극적인 사건들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을지라도,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우리의 정신은 그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진실과 마주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녀의 소굴에 끌려가서 주술에 이용될지도 모른다.

 

[씨네리와인드 김재령]

 

 

 

보도자료 및 제보: cinerewind@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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