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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우리의 열대야

Review|영화 '남매의 여름밤'(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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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1-02-01

[씨네리와인드|한솔지 리뷰어] 피부 끝으로 닿아오는 습기, 더운 공기를 몰아내듯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더운 줄도 모르고 깜빡거리는 가로등. 이상하게 여름밤은 다른 계절의 밤보다 애절하고 애절하기에 희미하다. 눈을 감고 그 여름밤을 회상하고 있자면, 뭉클뭉클한 어떤 감정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우리들의 노스탤지어를 그린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부산국제영화제에 처음 공개된 이후,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마르델플라타 국제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사람들에게 큰 각광을 받았다. 그렇다면 ‘남매의 여름밤’이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한 이유는 무엇일까.

 

▲ 영화 '남매의 여름밤' 포스터     © 오누필름

 

‘남매의 여름밤’은 아빠와 남매인 옥주와 동주가 함께 반지하방에서 할아버지 집으로 이사 가면서 시작된다. 아빠는 경제적인 문제로 갈 집이 없어 할아버지 집으로 온 것이었고, 옥주는 그런 아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동생 동주는 그저 해맑다. 영화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래도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양옥주택이다. 어디선가 쉬이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평범한 주택. 바닥이며 벽이며 나무로 되어 있고, 옛날 물건들로 가득가득 채워진 집. 옥주가 둘러보는 시선을 따라 비치는 집의 풍경은 어딘지 모르게 정감을 풍기고 기억 저편에 숨어 살던 어떤 한 조각을 차츰차츰 꺼내게 된다.

 

할아버지 집에 살게 된 옥주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기만의 방을 찾고 모기장을 둘러치는 것이다. 그리고 같이 들어가서 자고 싶다는 동생 동주를 완강하게 거절한다. 빨리 나가! 라며. 누구나 그런 기억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서 의자를 나란히 놓고 이불을 둘러 아늑한 그 공간을 ‘나의 집’이라고 불렀던 기억. 어린 옥주는 한창 자신만의 ‘공간’을 바란다. 그런 옥주는 나의 어린시절을 뒤돌아 보게 한다.

 

 

며칠 뒤, 할아버지 집에 새로운 손님이 하나 찾아오는데, 바로 고모다. 고모부와 불화를 겪고 있는 고모는 할아버지 집으로 들어오면서 집안은 갑작스레 북적북적해진다. 넓은 이층 주택에서 혼자 계시던 할아버지 옆에 아빠와 고모, 남매 옥주와 동주까지. 삼대가 다 모인 것이다. 영화의 초반을 보면 알겠지만, 아빠는 엄마와 이혼한 상태이며, 경제적인 여건도 좋지 않다. 고모 또한 남편과 이혼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며, 할아버지와는 데면데면하다. 어쩌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함께 지내는 그들의 일상에 어떤 리듬이 부여됨과 동시에 그들은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찾아나간다.

 

▲ '남매의 여름밤'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주)

 

아빠는 아빠대로 가짜 브랜드 신발을 팔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새로운 일에 대한 공부도 하는 한 부모로서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자신의 여동생을 위하기도, 유산 문제로 티격태격하기도 하는 한 오빠의 모습을 보여 준다. 고모 또한 남편과의 불화로 ‘남편은 자기를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요괴’라고 표현할 정도로 나름대로의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오빠 앞에서는 한없이 무너지며 엉엉 우는 여동생이다.

 

동주는 아빠 옆을 가장 잘 지키고, 막춤으로 가족들을 웃게 해 주는 얄밉지만 착한 동생이지만 엄마를 만나지 말라는 누나의 야단에도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는 어린 아들이기도 하다. 옥주는 이혼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엄마를 미워하고, 가짜 브랜드 신발을 팔며 생계를 이어나가는 아빠를 안타까워하며 장녀의 무게를 짊어진다. 더불어 좋아하는 남자애에 대한 확신도 없는 보이지 않는 폭풍 속에서 묵묵히 자신을 지켜야 하는 사춘기를 보낸다. 이런 그들을 가장 멀리서 지켜보지만 누구보다 그들 뒤에서 묵묵히 버티고 있는 할아버지의 표정과 가끔씩 얼굴에 비치는 웃음은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남는다.

 

‘남매의 여름밤’의 가장 큰 매력은 우리가 언젠가 겪어본 적 있는 것만 같은 상황과 캐릭터들로 우리의 지나온 날을 환기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등장하는 여름 별미 음식들과 어린 시절에 본 것만 같은 물건들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영화가 ‘꿈’을 소재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것이다. 고모는 할머니가 갓난아기인 자신을 안고 뛰어가는 기억을 생생하게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꿈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장면과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할아버지와 아빠, 엄마, 고모 그리고 동주와 자신까지 함께 밥을 먹고 웃고 떠는 꿈을 꾼 장면. 어떻게 보면 그들의 여름밤은 꿈과 같았는지도 모르겠다. 창피하고 부끄럽고 막막한 현실 속에서 보낸 일상의 안락함. 그렇기에 더더욱 그리운 그 꿈과 같은 여름밤인 것이다. 마지막에 엉엉 울며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는 옥주를 보면 내 마음 또한 알싸 해지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 '남매의 여름밤' 스틸컷     © 오누필름

 

누구에게나 지나간 시절은 있는 법이다. 돌아오지 않기에 그립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희미해지는 일밖엔 없기에 우리의 지난날은 아리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여름밤의 열기를, 더위를, 습기로 인한 끈적함을. 흐릿해지는 것 같으면서도 낭랑한 우리의 지난 계절은 ‘남매의 여름밤’과 함께 무르익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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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지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4기
cinerewind@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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