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인가 군대인가, ‘부엌의 전사들’

서울환경영화제 - The Heat: A Kitchen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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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기사입력 2019-07-08 [13:30]

  지난 5월 서울극장에서 개막작 아쿠아렐라를 시작으로 제 16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가 개최되었다. 그 중 에코 폴리티카(Eco Politika)섹션은 갈등의 역사 속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인류의 노력을 담은 작품들을 상영했다. 멈출 수 없는 청년들, 부엌의 전사들, 기린과 앤, 어느 여자의 전쟁, 인형의 집 그리고 성형중독까지 총 5작품이 선정되어 관객들을 찾아왔다.

 

▲ Our Movie, Our views     ©이지은

 

 주방이라고 하면 앞치마를 두르고 분주하게 요리하고 있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과 같은 단어들이 유행하기 시작하더니 셰프라는 직업이 남성들 사이에서 핫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셰프에 열광했고 방송가에서도 남성 셰프들이 요리하는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방송되기 시작했다. 최근에 방영되었던 백종원의 골목 식당’  역시 요식업의 대가 백종원 대표를 선두로 각 식당의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는 컨셉으로 인기를 끌었다. ‘먹방에 이어서 쿡방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흥행하던 수 많은 쿡방들 중에서 단연 최고의 화제가 된 방송으로 ‘JTBC’냉장고를 부탁해도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셰프들이 당신의 냉장고를 탈탈 털어드립니다! 처치 곤란! 천덕꾸러기 냉장고 재료의 신분 상승 프로젝트!”라는 주제로 유명 셰프들은 연예인 게스트들의 냉장고 재료를 이용해 눈 앞에서 뚝딱 15분만에 요리를 완성해 냈고 셰프들의 현란한 손놀림은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최현석 셰프의 전매특허 소금 뿌리기에서부터 시작해 한동안 화제를 몰고 다니던 이 방송은 개인적으로도 정말 재미있게 시청한 프로그램이었다. 다만 한가지 의아했던 점은 출연하는 쉐프들이 모두 남성이었다는 점이었다.

 

▲ 네이버 '냉장고를 부탁해' 포토 갤러리     ©이지은

 

▲ Newsnack     ©이지은

 

 외국에서도 예외는 없다. 세계적인 스타 셰프의 시초라고 말할 수 있는 고든 제임스 램지도 방송을 통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은 대표적인 셰프 중에 한 사람이다. 특히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헬스 키친에서 그는 주방에만 들어가면 ‘F Word’와 독설을 남발하며 불 같이 엄격한 면모로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스테이크가 덜 익어서 숙련된 수의사면 되살리겠다.”, “치킨이 사하라 사막보다 말라 보인다그리고 기름을 하도 넣어서 미국이 이 망할 접시를 침공하겠다등 그가 남긴 주옥 같은 독설들만 해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그가 성공적인 스타 셰프로 성장하게 된 것이 단지 이런 말들과 남성이라는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나 남성으로써 그의 마초적인 카리스마와 성격이 유명세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 Los Angeles Times     © 이지은

 

 사실 요리나 집안일을 단순 노동이라 여기며 여성의 일로 치부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런 암묵적인 사회적 통념이 깨진 것은 축하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남성 셰프들의 스타성을 내세워 미디어 전면에 끊임없이 노출시키는 행위는 정작 오랜 시간 뒤에서 묵묵히 일해오던 여성들에게 씁쓸함을 안겨줄 수 밖에 없다. ‘부엌의 전사들’(The Kitchen Revolution)은 바로 그런 점을 꼬집어 낸 다큐멘터리이다. 마야 갈루스 감독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주방에서 존중 받지 못하고 무시당하거나 거부당하는 상황의 불합리성을 알리고 그런 장벽을 깬 여성들을 소개한다.

 

기록에 따르면 미슐렝 스타 6개를 받은 최초의 셰프는 남성이다. 하지만 사실 그 이전에 여성 셰프가 먼저 미슐렝 스타 6개를 받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여성이 역사 서술에서 배제되고 잊혀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왜 주방 업계는 남성 중심적으로 돌아가게 된 것일까? 주방의 구조와 시스템에서 그 문제점을 찾아 볼 수 있다. 주방을 군대에 빗대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주방에는 명령을 하는 사령관 같은 주방관이 있고 이는 군대와 같은 서열구조를 형성한다. 과도한 업무로 항상 정신 없이 분주한 주방에서는 이런 시스템은 질서를 만들고 신속함을 돕는다. 효율성이 높기 때문에 시스템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 탓에 주방 업계는 남성 중심적으로 변모하였고 주방은 여성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살아남기 힘든 환경으로 변질되었다. 자신의 존재감을 끊임없이 나타내려고 하는 남성 셰프들의 성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자기과시에 눈이 벌어 '음식의 맛'이라는 본질을 망각하는 사태가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남성 셰프들이 주방의 지휘권을 잡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반면에 여성들이 주방을 지휘하고 음식을 지적하면 까다롭다는 평가가 이루어진다. 남자와 다르게 여자는 상냥해야 한다는 편견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중잣대는 주방 안에서 여성을 소외시킨다. 또 이렇게 소외되는 여성들은 주방 안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성희롱을 받기도 한다. 주방에서 성희롱을 당한 경험을 덤덤하게 얘기하는 여성의 모습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지만 주방 환경은 아직도 여성들에게 특히 더 열악하다. 그런데 이것은 소수의 힘으로 개선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복합적인 시스템 그리고 주방 문화의 문제이다. 부엌의 전사들(여성 셰프)들이 연대하여 주방의 혁명(Kitchen Revolution)을 이뤄내는 날이 올 때까지 모두들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영화에 출연하는 '수잔 바'(Suzanne Barr)가 마야 갈루스 감독을 대신해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는 요리사가 된 지 15년이 된 여성 셰프로 요식업에 종사하기 이전에는 영화 산업에서 15년을 일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18년 전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된 그녀는 자연스럽게 요리사가 되었다.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운영중인 그녀도 처음에 직업을 바꾸기로 결정했을 때 여성 셰프에 대한 편견에 맞서야 했고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계에서 긴 시간의 노동과 스트레스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던 탓에 비교적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그녀가 레스토랑 운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팀을 꾸리는 것이었고 요식업 트레이닝 센터들을 통해서 여성들로 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레스토랑에서 개발한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 인력을 교육하고 개발시키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들을 통해서 사회에 환원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 Hollywood Reporter     © 이지은

 

 [씨네리와인드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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