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대만에서 발견한 현재 청춘들의 모습

영화 '타이페이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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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기사입력 2019-10-29 [17:45]

▲ <타이페이 스토리> 포스터.     © (주)드림팩트 엔터테인먼트



제44회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1987년 작 <모리스>는 오는 11월 7일 국내 첫 개봉을 앞두고 있다. 만들어진 지 30년도 더 지난 이 작품이 뒤늦게 개봉하는 이유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캐롤>과 같은 퀴어 영화의 성공에서 찾을 수 있다. <모리스>는 앞서 언급한 두 작품과 비슷한 감성을 줄 수 있는 '아트버스터'로 손색이 없는 작품임에도 국내에서 개봉되지 못했다.  당시의 안타까움을 이번 기회에 풀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제작된 지 오래된 영화를 처음 개봉하는 것에는 위험요소가 적지 않다. 정서에 있어 현대와 맞지 않을 수 있고 영화 자체의 스타일이 지닌 올드함이 지루함을 줄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의 정서와 맞는 좋은 내용의 작품은 시대가 지닌 한계를 초월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1985년에 만들어진 <타이페이 스토리>에는 30년 전 대만의 모습이 나오는데, 거기서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 <타이페이 스토리> 스틸컷.     © (주)드림팩트 엔터테인먼트



아룽과 수첸은 오래된 연인 사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권태와 염증으로 얼룩져 있다. 방직업자 아룽은 과거에 안주하는 보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반면 커리어우먼 수첸은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이다. 수첸의 아버지는 파산한 실업자로 아룽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기대한다. 수첸은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현실에 좌절을 느낀다. 이 좌절은 일자리를 잃으면서 더욱 심화된다.

 

반면 아룽은 자신과 다른 사고를 지닌 주변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다. 그는 현재의 대만을 부정하는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과 충돌을 겪는다. 이런 충돌은 수첸과의 관계에서도 발생한다. 수첸이 꿈꾸고 가고 싶어 하는 미래를 아룽은 이해할 수 없다. 수첸이 꿈에 다가갈 수 없는 현실 때문에 괴로워한다면 아룽은 꿈이 없는 자신의 모습에 혼란을 겪는다. 영화는 세 가지 소재를 통해 80년대 대만 젊은이들의 상실과 혼란을 조명한다.

 

첫 번째는 미국이다. 수첸을 비롯한 친구들은 대만을 떠나 미국으로 가기를 원한다. 그들에게 미국은 꿈이자 이상향이다. 하지만 수첸과 아룽은 미국으로 향하지 못하고 작품은 이에 대해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감독이 의도한 것은 무엇일까. 절망적인 대만의 청춘을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미국은 이들이 꿈꾸던 이상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었을까. 영화를 보고 나면 후자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은 지금도 수많은 이들에게 '기회의 땅'이다. 하지만 그 기회는 누구나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에 간다고 해서 모두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감정은 <타이페이 스토리>와 비슷한 건조한 색을 지닌 짐 자무쉬 감독의 <천국보다 낯선>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작품 속 세 젊은이는 새로운 세계를 꿈꾸며 미국에 왔지만 그들이 경험한 미국의 세 도시는 모두 쓸쓸하고 황량할 뿐이다.

 

▲ <타이페이 스토리> 스틸컷.     © (주)드림팩트 엔터테인먼트



두 번째는 도시이다. 이 작품은 80년대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선두주자 같은 의미를 지닌다. '새로운 물결'이 등장하는 이유는 대부분 기존 영화계에 대한 염증과 문제에서 비롯된다. 80년대 대만 영화계는 할리우드와 홍콩 상업영화가 지배하였고 대만인들이 겪는 현실과 고통을 다룬 작품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해외에서 영화를 공부한 에드워드 양은 천편일률적인 스토리와 조잡한 기술력을 보였던 대만 영화계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감독은 수첸의 시점에서 자신이 주목하는 도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가 건물 위에서 본 대만은 마치 블록으로 만든 듯한 건물들과 늘어선 차들로만 채워져 있을 뿐이다. 그 안에서 인간적인 생명력과 활력은 찾아볼 수 없다. 에드워드 양은 대만 도시의 모습을 건조하게 담아내면서 우울하고도 쓸쓸한 청춘들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그는 도시의 건물과 풍경을 통해 대만의 현재와 미래를 카메라에 담아냈다.

 

▲ <타이페이 스토리> 스틸컷.     © (주)드림팩트 엔터테인먼트



세 번째는 유년시절이다. 아룽은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나지만 그는 경제적인 빈곤에 놓여 있다. 두 사람은 즐겁게 예전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작품은 아룽이 유소년야구단이었다는 점과 야구 중계 화면을 통해 묘한 연결을 보여준다. 아룽은 과거에 머무르는 인물이다. 그래서 미래를 그려나가야 하는 현재에 적응하지 못한다. 하지만 다시 만난 친구는 예전 같지 않고 유소년 야구단 시절로도 돌아갈 수 없다. 결국 아룽은 그 어디에서도 위안을 얻지 못한다. 

 

대만의 청춘들은 과거도 미래도 그릴 수 없는 현재에 놓여 있다. 그들은 '미국'이라는 미래를 그리지만 현실의 벽을 뚫기가 쉽지 않다. '유소년야구단'이라는 과거는 행복과 안정을 담고 있지만 지나간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그들에게 남은 건 차가운 아스팔트와 서늘한 벽으로 이루어진 도시의 바닥이다. 80년대 대만의 청춘들에게서 현재 대한민국의 청춘들, 아니, 전 세계 청춘들의 모습이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타이페이 스토리>는 서늘한 현실을 통해 대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야기한다. 거장 에드워드 양이 그려낸 80년대 대만의 젊은이들은 현대의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과 슬픔을 선사할 것이다.

 

[씨네리와인드 김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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