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와 헤어졌는데 동거할 수밖에 없다면?

[프리뷰] 영화 '오늘, 우리' / 10월 3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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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기사입력 2019-10-31 [16:30]

▲ '오늘, 우리' 포스터.     © 필름다빈




단편 영화는 짧은 시간 안에 주제의식을 전달하고 인상을 남겨야 한다. 수많은 감독 지망생들이 단편영화를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평가받는다. 이런 단편 영화의 성격은 한 지점을 선택해 그 순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늘'과 같다. 단편 영화의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필름다빈이 기획한 <오늘, 우리>는 네 명의 여성 감독이 네 명의 여성 배우를 주연으로 한 네 편의 작품을 통해 그녀들의 오늘을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배우 조은지의 감독 데뷔작으로 제16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2관왕을 기록한 첫 번째 단편 < 2박 3일 >은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사랑과 이별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지은은 남자친구 민규와의 2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선물을 사들고 민규의 집을 향한다. 그런 지은에게 민규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통보한다. 민규의 이별통보에도 미련 때문에 그 집을 떠날 수 없는 지은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 <오늘, 우리> 스틸컷.     © 필름다빈



이 동거는 지은으로 하여금 사랑에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별의 순간이 있음을 실감하게 만든다. 집을 나간 어머니 때문에 직장도 때려치고 어머니만 찾아나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 눈치를 보는 할머니, 철없는 백수인 민규의 동생 민석과 가족 일에는 무신경한 민규까지. 지은은 그저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지키고 싶은데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 2박 3일 >은 사랑의 상처와 이별의 고통을 두 개의 상황을 중첩시키며 섬세하게 묘사해낸다. 사랑을 하는 사람이 더 힘들고 괴로운, 사랑을 받는 사람은 뻔뻔하고 편하기만 한 사랑의 모습에 지은은 이별만큼 힘든 게 사랑이란 걸 알게 된다. 자칫 답답하고 수동적으로 보일 수 있는 지은이라는 캐릭터의 내면을 민규 가족의 모습을 통해 표현해내며 캐릭터에 대한 설득과 감정을 이입시키는 섬세한 연출이 돋보인다.

 

▲ <오늘, 우리> 스틸컷.     © 필름다빈



두 번째 단편 < 5월 14일 >은 청룡영화상 단편영화상 후보는 물론 다양한 영화제에서 노미네이트와 수상 경력을 지닌 작품으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날 위한 하루'를 담아낸 영화이다. 민정에게는 오래 사귄 남자친구 영기가 있다. 딱히 결혼계획이 안 잡힌 두 사람 대신 동생이 먼저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그런데 그 날은 가족들조차 까먹은 민정의 생일날이다. 민정은 영기라도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를 부른다.

 

하지만 영기는 민정의 가족들을 불편해 하며 회사 일을 핑계로 먼저 자리를 뜬다. 혼자 남은 민정은 결혼을 재촉하는 가족과 자신에게 무관심한 영기, 휴가인 건 알지만 잠깐 올라와서 회사에 참석하라는 직장 상사의 연락에 '최고'의 하루가 되어야 될 생일을 '최악'으로 맞이한다. 작품은 이런 민정의 모습에서 슬픔과 연민을 찾지 않는다. 민정에게 5월 14일의 하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힘겹고 외로운 하루다.

 

그녀는 그저 이 하루가 생일이라는 이유로 다른 날과 다르길 바랐을 뿐이다. 감독은 이 하루를 통해 힘겨운 일상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개인의 가치와 존중을 이야기한다. 비록 주변이 나를 힘들고 지치게 만들어도 내가 나를 사랑하고 지켜주는 한 내 모습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아름답게 빛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오늘, 우리> 스틸컷.     © 필름다빈



제 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단편경쟁 감독상을 수상한 <환불>은 <이월>에 이어 배우 조민경이 다시 한 번 현실의 벽과 무게 앞에 억세게 변해가는 배역을 맡았다는 점에서 흥미를 준다. 수진은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입사취소 통보를 받게 된다. 돈이 궁해진 수진은 취업스터디를 찾아가 자신이 주었던 책과 냈던 돈을 억척스럽게 다시 받아낸다. 그 모습에 친구인 카페 주인은 입사취소를 통보한 회사에게는 한 마디도 못하는 그녀의 모습을 나무란다.

 

수진은 첫 출근을 위해 정장을 샀고 이 정장 비용은 그녀에게는 막대한 생활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녀가 다시 취업준비생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 정장을 팔아야 한다. 하지만 수진은 그 순간을 망설인다. 자신이 마치 주문했다 취소할 수 있는 물건처럼 취급받은 거처럼 자신에게 큰 의미가 있는 이 정장을 환불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늘 때문에 내일을 꿈꾸지 않는 삶을 거부하고 싶다.

 

작품은 제목 그대로 사람마저 너무나 쉽게 '환불'해 버리는 사회의 모습을 비판하면서 그런 환경 속에서 점점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가는 수진의 모습을 그려낸다. 오늘 하루를 버텨내기 위해 악착스럽게 변할 수밖에 없지만 그런 자신을 지키고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한 수진의 노력은 오늘날 대한민국 청춘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힘겨운 현실이라 할 수 있다.

 

▲ <오늘, 우리> 스틸컷.     © 필름다빈



제 38회 청룡영화상 단편영화상을 수상한 <대자보>는 꾸준히 단편영화를 만들어 온 곽은미 감독의 내공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짧은 상영시간 안에 기승전결이 돋보이는 서사를 만들어 냈고 소재를 통해 서스펜스의 묘미를, 세 인물 사이의 관계를 통해 드라마적인 재미를 보여준다.

 

대학생 혜리는 교수의 비리를 적은 대자보 때문에 해당 교수로부터 고소를 당한다. 그 사실을 모르는 같은 동아리 민영은 신입생을 데려왔다는 사실에 들떠 할 말이 있다는 혜리의 말을 듣지 않고 대자보 쓰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이 작품은 세 가지 지점을 통해 서스펜스의 매력을 선사한다. 혜리가 교수에게 고소당했다는 사실을 처음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 유머러스한 민명의 대자보와 달리 혜리의 대자보에는 지나치게 비장함과 적의가 담겨있다는 점, 처음 동아리에 온 후배를 사이에 두고 혜리와 민영 사이의 관계가 격화되어 간다는 점이다.

 

이런 긴장감에 담긴 진실의 무게는 이 작품의 가장 큰 가치라 할 수 있다. 대자보는 학생이 감당하기 힘든 진실을 알리는 가장 큰 무기이자 수많은 학생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혜리는 진실이 묻히기를 원하지 않지만 그 무게 때문에 무너지고 있고 모든 걸 놓고 싶어 한다. 작품은 이 갈등의 순간을 혜리의 마음과 상반된 동아리실의 분위기와 대자보를 쓰는 과정을 통해 긴장감 있게 묘사해낸다.

 

<오늘, 우리>는 네 여성의 삶의 단면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을 이야기한다. 단편영화가 지닌 장점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순간을 담아낸다는 점이다. 나만 어려운 거 같은 사랑과 이별, 누구나 꿈꾸는 나를 위한 하루, 물건처럼 취급받기 싫은 나라는 존재, 혼자 감당하기 힘든 진실의 무게를 통해 누군가의 오늘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단편영화가 지닌 가치를 보여주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씨네리와인드 김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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