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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마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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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1-17 [20:50]

[1]

 

날개가 주어졌다면 하늘 높이 날아갔을 거야. 태양을 향해 오르고 또 올라 불타서 죽어버렸겠지. 차라리 그게 나았을 거야. 재가 되면 땅속으로 사라지니까. 그럼 아무도 내 존재를 모를 테니까. 누군가를 미워하고 그리워하는 끔찍한 경험 따윈 하지 않았겠지. 그런데 내게는 조그마한 발코니를 빠져나갈 힘도 없어 구석진 공간에 숨어있어야 했다. 난 모두가 혐오하는 생쥐 같았다. 그래서 다들 짓밟으려 드는 게 분명하다.

 

옥선 아줌마는 오후 3시면 돌아간다. 학교가 빨리 끝난 날이면 쥐구멍에 숨는다. 아파트 지하실에는 갖가지 물품들이 즐비하다. 네발 자전거부터 항아리, 의자와 책상까지. 돗자리를 펴고 앉아 소꿉놀이를 한다. 엄마는 딸을 위해 찌개를 끓이고 계란말이를 준비한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은 가방을 침대 위에 던지고 재잘재잘 그날 있던 일을 떠든다. 엄마는 미소를 보이며 반응하고 밥을 차린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함께 TV를 본다. 예능프로를 보면서 웃고 또 웃는다. 소파에서 잠에 빠진 딸은 초인종 소리에 눈을 뜬다. 아빠에게 안겨 오늘 있던 일을 이야기하려는 순간이면 옥선 아줌마의 발이 보인다. 조그마한 창문으로 아줌마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면 집에 돌아간다. 변기에 아줌마가 해놓은 반찬을 버린다. 막히지 않게 조금씩. 다음으로 천장을 바라본다. 이 방 하나에 화장실 하나 달린 복도형 아파트는 텔레비전이 필요 없다. 위층의 발소리와 기침소리도 생방송으로 들리니까. 위층 아이들은 시끄럽다. 유치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은 밤새 뛰어다닌다. 위층 남자는 늦은 시간에 돌아와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른다. 아내는 한 마디씩 거들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새벽 1시가 넘어가면 남자는 아이들을 혼낸다. 아이들은 아빠를 피해 도망 다니고 아빠는 필사적으로 뛰어 아이들을 잡고 때린다. 이웃집이 항의라도 하면 생활소음도 못 견디느냐며 화를 낸다. 그래도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매일 뛰고 소리 지르고 빌고 또 빌며 잠을 자기를 거부한다. 남자아이 하나 여자아이 하나. 두 아이는 즐겁다. 게임이라도 하듯 한 아이가 혼나면 다른 아이가 떠든다. 남자는 지치지도 않고 때리고 또 때린다. 남자가 죽었으면 한다. 남자도 두 아이도, 아이들의 엄마도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옥선 아줌마도 같은 생각이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올 때면 눈은 스르르 감겨 꿈나라를 향한다.

 

2

 

초등학교 입학식 날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마녀라는 걸. 난 그 애들보다 2살 더 많았고 머리가 하나는 더 컸으며 힘도 더 강했어. 하지만 단체로 달려드는 그 애들을 이길 수 없었지. 한 애가 시비를 걸면 다른 애가 달려들어 때렸고 때린 애를 상대하려고 들면 다른 애들이 움직일 수 없게 몸을 붙잡았어. 실내화를 벗어 내 코에 들이댔어. 양말을 입에 넣는 애도 있었지. 구토를 할 때까지 괴롭힘은 계속 됐어. 그리고 담임선생님은 장난이 심했다고 한 마디 하고 끝이었어. 학교가 끝나면 엄마들이 교문 앞에 줄서있었지. 자기 아이를 데려가려고 말이야. 난 교실에 끝까지 남아있다 모든 아이들이 돌아가면 그때야 집에 갈 수 있었어. 선생님들은 돌아가면서 날 상담하고 감시했지. 괴롭힘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어. 오히려 내가 반격이라도 하려 할 때면 흥분해 소리쳤어. 맞아, 애들보다 날 무서워했던 건 어른들이야. 공포가 가득한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어. 학교랑 집이 유일하게 허락된 공간이었어. 놀이터에서 모습이라도 보이면 경비 아저씨가 경찰을 불러 쫓아냈거든. 이 아파트로 온 것도 민원 때문이래. 나랑 같은 아파트에 살면 불안하다나봐. 여기 사람들은 나에 대해 몰라. 알아도 신경 쓰지 않지. 다들 한밤중에 돌아와. 서로가 떠들고 시끄럽다고 지랄하고 뭐 여기가 그런 곳이야. 냉장고에 우유 있는데 좀 마실래?

-아니 괜찮아. 그래도 부럽다. 넌 네 집이 있잖아. 힘들고 지치면 혼자 쉴 수 있잖아.

그러게. 하루 종일 괴롭힘 당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건 좋겠네. 오늘 정말 고마웠어.

-내가 뭘. 은성이가 안 도와줬으면 둘 다 맞아 죽었을 거야, 아마. 설아 넌 계속 이 동네에만 있을 거야?

다른 곳에는 갈 수 없으니까. 만약 떠났다가 엄마가 다시 돌아오면, 그러면 날 찾을 수 없잖아. 엄마는 꼭 돌아올 거야. 날 사랑하니까. 잠깐 마음이 힘들어서 떠난 거뿐이야.

-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 왜 내가 행복했으면 하는 거야? 너 나랑 친해진지 아직 일주일도 안 됐잖아. 너무 앞서가는 거 아냐?

-불행 속에 사는 건 힘든 일이니까. 우리가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잖아. 인생이 유년, 초년, 중년, 노년이 있는 거처럼 하루도 힘든 순간이 있으면 행복한 순간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좋아.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거나 재미있는 영화를 본다거나 지금처럼 좋아하는 사람 옆에서 시간을 보낸다거나.

지수 넌 참 이상한 아이야. 월요일. 학교 체육관에서 지수를 만났다. 익성 패거리는 언제나 그렇듯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농구공을 내게 던졌다. 7~8개의 농구공을 몸에 맞았고 체육선생님은 쓰러진 내게 눈길 한 번 주더니 교무실로 올라갔다. 코와 입에서 피가 났다. 비틀거리며 일어나다 농구공을 밟고 미끄러졌다. 다음 반이 오기 전에 자리를 피하고 싶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다시 일어서려는 순간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소리에 몸이 움츠려들었다. 공을 모아둔 통 뒤로 몸을 숨겼다. 잠시나마 쉬었다가 체육관으로 들어오는 저 애들이 모두 자기 일에만 집중할 때 조용히 내려가고 싶었다. 그때 지수가 손을 건넸다.

-괜찮아? 너 피 엄청 나와.

지수의 부축을 받고 양호실을 향했다. 새하얀 솜이 몇 번이고 빨개지는 걸 보며 그 애는 눈물을 흘렸다.

-매일 너무 아프지 않나?

아팠다. 하지만 아프다고 말해봐야 달라질 건 없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괴롭힘을 참지 못해 교무실에 간 적이 있다. 인자한 얼굴을 했던 노년의 담임선생님은 내 말에 다짜고짜 안대를 잡아당겼다. 눈을 가리려는 내 손을 잡아 비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애들이 널 무서워하는 건 생각 안 하니? 애들이 무서워서 널 공격하는 거야! 네 이 안대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있는지 알아? 아냐고!

담임선생님은 울음을 터뜨렸고 다른 선생님들은 모두 날 노려봤다. 겁에 질려 도망쳤다. 안대를 꼭 쥔 채 집으로 뛰어갔다. 그날 이후로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엄마가 떠난 이후 날 사랑해줄 사람은 없다. 그리 믿었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다. 증오가 있으면 사랑이 피어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날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공포와 두려움만이 가득하다.

-난 네 눈이 좋아.

? 지수가 웃고 있다. 밝은 달빛이 그 애의 미소를 더욱 찬란하게 비춘다.

-네 눈을 보면 슬픔이 가득해 보여. 슬프다는 건 누군가 필요하다는 거잖아. 난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

지수는 다르다. 지수의 눈에는 사랑이 담겨 있다.

 

 

보도자료 및 제보cinerewind@cinerewind.com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획취재부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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