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할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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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1-21 [10:35]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스틸 이미지  ©워너브라더스 

 

[씨네리와인드|안지현 리뷰어] 우리의 삶에는 수많은 고난이 있다. 단순하고 사소할 수도 있겠지만 극복하기에 너무나 어렵고 거대하기도 하다. 이 영화는 후자에 해당하는 고난에 대한 이야기이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스틸 이미지 ©워너브라더스

 

영화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즉 종말론이라는 세계관 속에서 구원을 그려낸다. 영화 속 '시타델'은 핵전쟁과 석유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물과 기름을 차지한 독재자 '임모탄'이 지배하는 국가이다. 독재자 임모탄이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자원인 물을 독점함으로써 가지게 되는 권력은 막대하다. 임모탄은 그 권력에 취해 자신이 구세주이며 오직 자신만이 이 잿더미 같은 세상에서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연설을 듣고 사람들은 그를 연호한다. 특히 워보이들의 숭배는 더욱 맹목적이며 광신도적이다. 워보이들은 임모탄에게 인정받는 것을 가장 가치 있는 일로 여기고, 임모탄을 위해 싸우다 죽으면 전사자들의 천국인 '발할라'에 갈 수 있다는 구원적 메시지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스틸 이미지 ©워너브라더스

 

이렇게 그들이 숭배하는 독재자 임모탄의 이름은 immortal, 불멸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호흡기에 의존하고 부하의 부축을 받는 등 그 실체는 약하기 그지없다. 그에게는 그저 권력뿐이다. 따라서 그의 권력을 자신의 후손에게 세습하기 위해 여자들을 선별해 자신의 아이를 가지게 한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그가 그렇게 믿고 있던 사령관 퓨리오사에 의해 무너지게 된다. 그녀가 그의 아이를 가진 '스플렌디드'를 포함한 5명의 여성을 데려가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들 또한 워보이들처럼 자신들만의 구원의 땅, '그린랜드'로 향하지만 영화는 그들에게 그린랜드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에 대해 좌절하고만 있지 않는다. 다시 시타델로 돌아가 불합리적인 기존의 체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이 질서를 되찾기로 결심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지배자인 임모탄을 죽이게 되고 성공적으로 시타델로 돌아가 그들만의 그린랜드를 찾게 된다. 워보이 '눅스' 또한 발할라라는 영적인 구원만을 꿈꾸며 임모탄에게 숭배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자신이 사랑하게 된 여성 '케이퍼블'을 위한 희생으로 목숨을 바치게 된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찾던 구원은 이 세계에서의 탈출이 아니라 이 세계 안에서의 개혁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스틸 이미지 ©워너브라더스

 

<매드맥스>는 전형적 영화 공식에 대한 개혁 또한 이뤄낸다. 남성적 장르로 대표될 수 있는 '액션안에서 실질적으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여성 사령관 '퓨리오사'이다. 퓨리오사는 여러 영화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와는 사뭇 다르다.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대신 삭발에 가까운 짧은 머리를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초적인 캐릭터라고는 볼 수 없다. 강인하고 자립적이며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 그려질 뿐이다. 5명의 여성들 또한 초반 연약하고 의존적이며 보조적인 모습에서, 영화에 흐름에 따라 점차 성장해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서 주체적인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스틸 이미지 ©워너브라더스

 

남성 캐릭터 맥스와 퓨리오사에 관계 또한 특별하다. 대부분의 영화 속에서 남녀 주인공이 만났을 때 그려지는 로맨스 적 클리셰를 탈피했다고 볼 수 있다. 무기를 다루는데 능숙한 전형적 남성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오발만을 남발하던 맥스에게 총을 넘겨받은 퓨리오사가 맥스의 어깨를 지지대 삼아 목표물을 명중시키기도 한다. 또한 그렇게 찾아 헤매던 그린랜드가 폐허가 된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오열하는 퓨리오사를 휘감는 건 남성 캐릭터의 단단한 팔이 아닌 황량한 사막의 모래바람이다. 남자 주인공 맥스는 여자 주인공 퓨리오사의 연인이 아니라, 그저 반란에 대한 조력자이자 동지의 역할로만 그려질 뿐이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 감독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의 메시지를 남긴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스틸 이미지 ©워너브라더스

 

"희망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최초의 인류

 

질문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질문자가 최초의 인류라는 점을 통해서도, 퓨리오사의 그린랜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답은 바로 ‘없다’가 아닐까. 희망이 없고 구원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희망과 구원은 저 멀리 어딘가가 아니라 우리가 속한 이 세계 안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삶에는 많은 고난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고난은 최초의 인류 또한 겪었고 우리도 겪을 것이다. 최초의 인류가 이겨냈기에 존재하는 우리 또한 이겨 낼 것이다. 희망 없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새로운 목적지가 아닌, 우리가 가진 올바른 신념 아래 주체적인 행동과 이를 통한 개혁뿐이다. 희망은 바로 우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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