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마녀(4)

최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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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1-23 [09:58]

[7]

 

지수가 손을 잡는다. 함께 거리를 걷는다. 서늘하게 폐를 찢던 아침 공기가 사라졌다. 따뜻한 온기가 옆구리를 파고 든다.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 기둥 뒤에서 입을 맞춘다. 갈증이 사라진다. 갈라진 심장 사이로 피가 흐른다. 뜨겁게 요동치는 소리가 들린다. 너도 좋은 거지? 눈빛으로 말한다. 지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사랑을 만났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안녕, 스티치야. 오랜만이지? 잘 지냈어? 너도 다른 애들처럼 버리고 싶었는데 옥선 아줌마가 이건 자기 딸 준다는 말에 오기로 널 데려온 거야. 기억하지? 너랑 우디랑 버즈랑 피카츄랑 내가 그 아저씨한테 당하고 있는데 그냥 바라보기만 했잖아. 내 몸에 피멍이 들고 다리 사이로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데도 그 커다란 눈으로 즐기기만 했지? 마음 같아서는 네 목을 잘라버리고 싶지만 외로울 때 그래도 뻔뻔하게 바라봐 줄 사람이 너 밖에 없어서. 스티치야. 사실 고민이 하나 있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거든. 그런데 그 사람을 괴롭히는 무리가 있어. 내 눈치를 보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면 때리고 꼬집고 급식을 몸에 던지기도 하는 거 있지. 한 번은 유리창을 깼어. 그 유리조각으로 놈들을 죽이려고 했어. 그런데 지수가 말리는 거 있지. 놈들은 유리조각에 포위돼서 오줌을 질질 흘리고 있는데 용서하재. 그 애가 그러는 이유를 알아. 거기서 그놈들을 죽이면 진짜 마녀가 되어버리니까. 그런데 스티치야. 넌 봤잖아. 내가 마녀가 된 순간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잖아. 다시 마녀가 되는 건 어떨까. 그래서 다 끝내버리는 거야.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을게. 엄마가 떠났던 거처럼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엄마는 그 아저씨를 사랑했어. 나보다 더. 나를 때리고 강간해도 하지 말라 말만 했지.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있었어. 자기는 모른다는 듯 숨을 죽이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어. 나를 찾는 일도 말을 거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지. 아저씨가 구멍이란 구멍은 다 범할 때면 온몸에 힘이 풀려 일어서기도 힘이 들었어. 엄마는 일부러 날 외면했고 피했어. 그래서 아저씨가 그랬을지도 몰라. 스티치야, 나는 다 알고 있어. 엄마가 날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그러니까 떠났겠지. 엄마는 날 잊고 싶은 거야. 나 같은 괴물과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거라고. , 왜 자꾸 않는다는 말만 반복하는 걸까. 내가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이제 행복해지고 싶어. 그래서 이 고리를 끊을 예정이야.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이 힘을 쓰면 돼. 그러면 난 인간이 될 수 있어. 지수랑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그 애랑 결혼할 거야. 매일 사랑한다 말해줄 거야. 남자 따윈 집에 들이지 않을 거야. 은성이라면 모르지. 그 애는 믿음직하니까. 머슴으로 부려먹을까? 크크크. 그래서 스티치야, 어떻게 생각하니? 이번에는 그때와 다르길 바라는데. 제발, 제발 그래야 하는데.

 

가로등 등불 아래에 익성 일당이 보인다. 벌써 일주일 째 우리 집 근처를 돌아다닌다. 놈들은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잠이라도 들면 들어가 죽여 버리겠다는 표정이다. 지수를 데려올 수 없다.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옆에는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들로 가득하다. 그 아저씨도 이런 사람이었겠지. 희망도 미래도 없지만 그저 태어났으니 꾸역꾸역 살아가는. 그래서 매사에 불만이 가득하고 피해의식에 절어있어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욕구를 푸는 그런 태어나서는 안 될 존재였을 거야. 위층의 아이들이 크면 익성이 같은 애가 되겠지. 의자로 다른 사람 팔다리를 내리치고 얼굴에 오줌을 싸는 그런 더러운 악마가 될 거야. 그 악마가 나이를 먹으면 그 아저씨가 될 거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찾아 등골을 다 빨아먹고 그 시체까지 우걱우걱 씹어 먹는 괴물이 되겠지. 그럼 지수는 죽을 거야. 못 이겨낼 거라고. 내가 그 애를 지켜야 돼. 지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이야.

 

[8]

 

아저씨는 새로운 걸 원했다. 며칠을 엄마를 설득했고 엄마는 화를 내며 거절했다. 아저씨를 피해 발코니에 숨어있던 난 그 끔찍한 소원이 무언지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엄마는 밤새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를 기다리던 난 빨리 자라는 아저씨의 말을 무시하고 TV앞에 있었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가 움직였다. 몸은 점점 느슨해지더니 이내 잠에 빠졌다. 눈을 떴을 땐 팔도 다리도 목도 벽에 테이프로 붙어진 채였다. 아저씨는 내 입을 테이프로 막으며 말했다.

-이번엔 진짜 아플 거야. 그런데 어쩌냐. 소리도 못 지르겠는 걸.

이상한 기구로 내 왼쪽 눈을 감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바지를 벗었다. 어떤 단어를 택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아프다. 아프다는 말만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5분도 되지 않는 그 시간 동안 삶은 무너졌다. 인생이란 지구는 두 동강이 났고 뜨겁게 녹아내렸다. 성기를 뺀 아저씨는 황홀한 표정으로 바닥에 누웠다.

-그래, 이거거든. 남들은 못 해보는 걸 해야지. 꼬마야, 원망할 거면 내가 아니라 네 엄마를 원망해. 널 학교에 보내지 않는 걸 포함해 모두 다 네 엄마가 허락해서 하는 거니까. 따지고 보면 너는 네 엄마가 전부잖아. 네 엄마는 내가 전부고. 그러니 내가 불행하라 명령하면 둘 다 불행해야 되는 거야. 너희들의 존재 이유는 내가 쥐고 있으니까.

남자는 몸에 뭍은 피를 닦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어차피 강간당해서 태어난 거라며. 낳고 싶어서 낳은 것도 아닌데 누가 널 사랑해주겠냐?

이를 악물고 저주했다. 모든 행복을 가져가도 좋다. 앞으로 불행만이 가득해도 상관없다. 아저씨를 죽이고 싶다. 아저씨를 죽일 힘만 쥘 수 있다면, 그리고 죽일 수 있다면 아무 상관없다. 한 번도 기도를 들어주지 않던 신을 대신해 악마가 나타났다. 악마는 뻥 뚫린 왼쪽 눈에 사인했다. 첫 소원이 이뤄졌다. 난 아저씨를 죽였다.

 

엄마는 새벽 4시에 돌아왔다. 현관 불을 켠 엄마가 맨 처음 본 모습은 한쪽 눈이 뚫린 딸이 아닌 온몸이 터져 그 형태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아저씨였다.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내 얼굴을 만졌다. 엄마는 생각했을 것이다. 누군가 집에 잠입했고 아저씨를 죽였다고. 그래서 물었을 것이다. 누가 그랬는지 아냐고. 대답했다.

내가 그랬어, 엄마

몇 번이고 묻는 엄마에게 똑같이 답했다. 내가 아저씨 사지를 절단했다고.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낸 다음 뼈는 모두 갈아버렸다고. 8살짜리라고, 네가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진실을 말 해줬다.

난 악마랑 계약했어. 하느님이 내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거든

뺨을 맞았다. 계속 또 계속 엄마는 내 뺨을 때렸다. 주저앉아 얼굴을 파묻고 울고 또 울었다. 엄마를 달래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엄마의 눈에는 공포와 증오가 서려있었으니까. 너무 늦게 알았다. 엄마는 아저씨를 택했고 나를 버렸다. 아저씨가 앗아간 가장 소중한 건 눈도 첫경험도 아니었다. 엄마, 아저씨는 엄마를 뺏어갔다. 또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 절대.

 

푸른 벽의 아지트가 보인다. 2층에 불이 켜져 있다. 내일 아침이면 저 애들은 또 학교에 갈 것이다. 지수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자르고 일부러 부딪치고 급식판 위로 성기 털을 뿌리겠지. 내 뒤를 졸졸 따라와 아파트 앞에서 대기할 거야. 한 번 당해봤으니까 달려들지 않고 겁을 주겠지. 그렇게 겁에 질려서 미쳐버리길 바랄거야. 내가 먼저 너희를 공격할 거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겠지. 누구도 너희에게 그러지 않았으니까. 천장부터 무너뜨린다. 놈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창문부터 현관까지 주먹을 쥐는 모양으로 집을 뭉갠다. 으스러질 때마다 비명이 강해진다. 손가락은 점점 오므라져 하나로 뭉친다. 동시에 집은 납작하게 주저앉는다. 다시 또 다시 납작하게 누른다. 녀석들이 완전히 뭉개질 때까지 누르고 또 누른다. 이제 지옥은 끝났어. 마녀는 인간이 될 거야.

 

[9]

 

쾅쾅! 쾅쾅! 쾅쾅! 눈을 뜨니 새벽 5시다. 잠에서 깬 아이들이 뛰고 있다. 저 소리는 더 시끄러워질 거고 내 가슴을 더 세게 때릴 것이다. 그 전에 떠날 것이다. 위층도 옥선 아줌마도 다 떠나버릴 것이다. 오늘 지수에게 말할 거다. 같이 떠나자고.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지수가 보이지 않는다. 큰 사고가 났다는 담임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몸이 아픈 걸까. 은성이를 붙잡아 부탁했다. 지수한테 문자 한 통만 보내게 핸드폰 좀 빌려달라고. 은성이는 굳은 표정으로 날 끌고 간다. 학교 뒤편 주차장까지 와서 손을 놓는다.

-오늘 새벽에 사고가 있었대. 익성이네 집이 무너져서 아마 그 안에 있던 애들이 다 죽었다나 봐. 심하게 무너져서 경찰이 아직 수사 중이긴 한데 그럴 확률이 크대.

나도 들어서 알고 있어. 그런데 왜 나한테 그 얘길 하는 거야?

-사실 좀 불안해서. 어제 지수가 너 의안 다 제작됐다고 같이 찾으러 가자고 했어. 그런데 그 동네가 익성이네 애들 노는 데잖아. 걔들 만나는 게 무서워서 거절했어.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무섭고 더 이상 걔들이랑 마주치지 싫어서.......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수한테 연락을 해봤는데 되질 않아. 집에 연락해 보니 어제 들어오지 않았대. 난 너희 집에 간 줄 알았어. 그런데 네가 지수를 찾으니까 너무 불안한 거야, 지금.

교문 밖으로 달린다. 숨이 차지 않는다. 다리가 아프지 않다. 계속 달리고 또 달린다. 아닐 거야. 절대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흐르는 게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다. 심장을 요동치는 통증의 정체가 무언지 모르겠다. 제발 아니어야 해, 제발. 같은 말이 입가를 계속 맴돈다. 무너진 건물 안에는 경찰들이 모여 있다. 그들 중 하나가 나를 막는다. 저기 친구가 있을 수 있어요. 제발 들여보내 주세요. 더 다가서기 위해 힘을 쥐어짜낸다. 점점 다가가려는 순간 한 경찰이 다리를 건다. 넘어지기 무섭게 일으켜 세워 팔을 꺾는다.

-가만히 있어, 이 재수 없는 년아. 네가 이 동네에 있으니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거야. 그때 감옥 안에 가뒀어야 했는데, 씨발.

차라리 감옥이었다면, 감옥 안이었다면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고독을 느낄 일도 상처를 받을 일도 없었겠지. 누군가 날 여기로 보냈기에 이렇게 아픈 거겠지. 경찰을 올려본다. 한 번도 날 지켜준 적 없는 그들에게 말한다. 방해하지 말라고. 경찰차를 공중에 띄운다. 뒤이어 경찰도 소방관도 구경 온 사람들을 모두 공중에 띄운다. 그리고 땅에 박아버린다. 핏덩이만 남을 때까지 온몸을 누르고 또 누른다. 이제야 고요가 찾아왔다.

 

무너진 주택을 가른다. 벽돌과 시멘트, 고철과 나무 더미를 사방으로 내던진다. 옷이 보인다. 살과 피와 내장조각으로 이뤄진 웅덩이 안에 지수의 교복이 젖어있다. 테이프와 밧줄이 보인다. 비명을 지를 수 없었구나. 네 목소리만 들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교복 아래로 무언가 떨어진다. 의안. 이것만 있으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악마의 저주는 영혼을 갉아먹는다. 다시는 인간이 될 수 없게 분노와 슬픔으로 마음을 잠식시킨다. 안대를 푼다. 텅 빈 공간에 눈을 집어넣는다.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세상은 반쪽이다. 어둠과 안개만이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전부다. 눈물이 흐른다. 한쪽 눈에서는 슬픔을 담은 투명한 눈물이 다른 눈에서는 분노를 담은 새빨간 눈물이 뺨을 타고 바닥을 적신다.

 

난 마녀가 되었다. 다시는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피의 마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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