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부모 말에 순종하는 아이가 ‘좋은 아이’일까? 영화 ‘송곳니’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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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재
기사입력 2019-04-15 [11:00]

▲ 영화 <송곳니> 한장면.     © 필굿 엔터테인먼트

 


사회사상가 버거(Berger), 루크만(Luckmann)은 우리가 일상생활의 실재로 사회를 인식하게끔 하는 거대한 지식의 저장고 (Social Stock of Knowledge)가 실제로는 객관적 토대가 아닌 주관적인 산물임을 지적한다. 개인이 단편적으로 시공간에서 경험하는 실재는 지극히 제한적이며, 타인과의 상호작용 없이는 사회적 존재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지속적 외부 접촉을 통해 사회내의 지식, 규범을 습득하고 사회화를 통해 보편적 가치관과 신념을 내재화해야 한다. 사회에서 습득한 사회적 지식은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 행동규범이 되어 특정 사건을 판단함에 있어서의 옳고 그름과 다른 실재와 차이를 구분 짓는 판단기준이 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객관적 기호, 상식적 지식을 비판, 의심 없이 객관적 실재로서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 버거와 루크만은 사회의 객관적 실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간의 무지한 수용은 특정권력의 지배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영화 <송곳니>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사회의 객관적 실재와는 전혀 다른 실재를 보인다. 한 가정에서 아버지라는 특정 계급이 독단적 체제를 설정한 후 피지배층인 세 남매가 테두리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철저히 외부의 접촉을 제한한다. 구성원은 상호주관적 세계에서 외부인과의 교류가 철저히 차단된다. 사회 속에서도 구성원 중 아이들은 모두 사망하였고, 아내는 해당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외부인들이 인지하고 있어 그의 가족들은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독재자인 아빠가 설정한 상호주관적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자택을 치밀하게 설계했다. 수영장과 정원 그리고 높은 담장으로 외부의 풍경을 내부 구성원이 눈 안에 담을 수 없는 구조이다. 구성원들에게 상호교류의 대상은 오로지 부모이며 행동반경 또한 오로지 집이다. 부모는 단순히 집 앞 정원을 나가는 것조차 엄격히 통제하며 집 밖을 벗어나는 행위는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독재체계를 보수, 유지하기 위한 수단

 

기호

한 사회에서 타인과 상호교류를 하며 공동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가 있다. 바로 기호이다. 타인이 를 칭할 수 있는 이름, 동일한 언어체계, 생활습관, 유사한 가치관을 갖추고 있어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 아버지는 자녀들을 체재 순응적 존재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무조건적 통제 이외에도 의미화 작업을 한다. 해당 영화에서 이들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체계와 행동양식, 기호 또한 부모가 작위적으로 형성하여 양육한다.

 

기호는 기표와 기의로 구성된다. 물질적 구성인 기표는 처음부터 기의를 담고 있지 않는다.사회적 합의를 통해 기표에 의미를 부여하여 기호를 생성한다. ,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호의 의미는 사회문화적 동의의 결과이다. 영화 속 부모와 관객들은 사회화작업을 통해 바다의 기의가 짠 물이 괴어 있는 넓은 공간임을 인지한 상태이다. 하지만 왜곡된 언어 매커니즘이 주입된 아이들은 바다의 기의는 앉을 수 있는 사물로, 좀비는 노란 꽃, 그리고 총은 아름다운 새로 인지하게 되었다. , 언어는 아이들과 타인 간의 교류를 철저히 억제하기 위한 도구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자녀들에게는 아버지가 설정한 체계가 곧 이들에게 질서정연한 실재이다. 우리에게 왜곡되고 잘못된 세계로 비춰지는 구성원들의 세상이 그들에게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회이다.

 

 

행동양식

 

▲ 영화 <송곳니> 속 비정상적 행동양식을 자녀들에 강요하는 아버지     ©필굿 엔터테인먼트

 

 

 

위에 언급된 기호화 작업과 더불어 사회에서 통용되는 행동양식, 상식과 거리가 먼 왜곡된 교육을 통해 독재체계를 강화한다. 아들이 고양이를 살해하는 씬은 이들의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빠는 아이들에게 고양이를 우리를 위협하는 괴물로 칭하는 허구를 부여하여 외부세계에 대한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따라서 아들에게 고양이는 하나의 생명체로 존중해야할 생명체가 아닌 외부자극이다. 어느 날 정원에 고양이를 본 아들은 위협을 느끼고 정원용 가위로 고양이를 살해하여 주입된 외부세계의 두려움을 제거한다. 독재자인 아버지는 자신의 말에 복종한 아들의 잔인한 행동에 기뻐한다. 이후 고양이를 쫒아내는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개짓는 행동을 하도록 강요한다. 자녀들은 개와 같이 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개처럼 짓는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의 이치와 마찬가지로 훈련을 통해 고양이가 보일 시 개같이 짖어야 한다는 조건반사를 이끌어내어 사육하고 있다. 그리고 부모의 결혼기념일에 항상 딸들은 어린 아이처럼 춤을 춰야만 하고 어린아이같이 춤을 춘다.

 

부모는 해당 지시에 잘 복종하는 피지배자에게 스티커를 부여한다. 스티커는 이들의 가치와 평판으로 직결되며 시스템에서 더욱이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주어진 세계에 복종해야만 한다. 이 세 자매의 행복과 서열은 스티커로 결정된다. 또한 세 자매 모두 모형 비행기에 대한 소유욕을 표현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말에 잘 복종하는 이에게 모형 비행기를 수여한다. 물론 모형 비행기는 세 자매 자유갈망의 은유이다. , 자녀들은 철저히 아버지에 의해 사육되고 있으며 독재체제를 굳건히 한다.

 

 

미디어

 

▲ 영화 <송곳니> 속 독재자의 미디어통제     ©필굿 엔터테인먼트

 

 

우리에게 미디어는 필수적이다. 미디어를 통해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으며 오락, 구경거리 등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 하지만 미디어는 누군가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제작자가 작위적으로 형성한 Frame에 따라 사실이 왜곡, 은폐되는 경우가 존재한다. 아버지는 독재체계를 굳건히 하기 위해 미디어의 힘을 악용한다. 구성원들이 유일하게 시청할 수 있는 콘텐츠는 이들이 어린 시절 본인의 체계에 순응하는 모습을 Frame화한 비디오테이프이다. 이들에게 유일한 문화생활인 반복적 비디오테이프 시청은 즐거움의 대상이자 행동의 매뉴얼이 된다. 자녀들에 내제되어있는 외부세계에 대한 호기심 및 억압된 욕망은 자연스레 중화화된다. 자녀들은 반복적인 간접경험을 통해 아버지가 설정한 지극히 주관적 실재가 절대적 가치가 되면서 객관적 실재로 믿게 된다.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 및 타 욕구 억제를 위해 사용한 도구 폭력

독재자가 독재체재를 유지하기 위해 휘두른 폭력의 대물림으로 피지배자들의 폭력성이 초래되었다. 부모의 폭력적 행동과 자유의 억압은 자녀들의 폭력성으로 이어진 셈이다. 큰 딸은 동생이 가지고 놀던 모형 비행기를 뺏어 집 밖으로 던져버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칼로 동생의 팔을 그어버리는 극한의 폭력을 휘두른다. 재미를 위해 행하는 게임조차도 뜨거운 물에 손을 넣고 오래 참는 자가 이기는 자학적인 행위이다. . 폭력으로 유지하는 권력과 자유의 억압은 피지배층을 반사회적 괴물로 만들게 된다.

 

 

편에 계속

 

[씨네리와인드 오승재]

 

보도자료 및 제보 : cinerewind@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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