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부모 말에 순종하는 아이가 ‘좋은 아이’일까? 영화 '송곳니'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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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재
기사입력 2019-04-15 [13:00]

▲ 영화 <송곳니> 한장면.     © 필굿 엔터테인먼트



독재체제에 갇힌 큰 딸을 일깨운 외부인 크리스티나

복종적인 아들의 성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불러들인 아버지의 공장 보안관인 외부인 크리스티나는 변화의 단초가 된다. 그녀의 직업은 보안관 (security)이다. 부모가 위험을 감수하고 그녀를 집에 들인 이유도 집안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크리스티나는 집안에 안전이 아닌 호기심을 부여한다. 크리스티나는 독재자의 아들과 성관계를 지속적으로 가지지만 성적 취향으로 인해 만족하지 못한다. 오히려 크리스티나는 큰 딸과의 깊은 관계를 원한다. 크리스티나는 머리띠를 빌미로 큰 딸에게 대가를 요구한다. 딸은 머리띠와 교환하기 위해 자신에게 소중한 도구인 줄자와 지우개 달린 연필을 제시한다. 하지만 외부세계에서는 너무나도 흔한 물품이었다. 결국 큰 딸은 성적행위의 조건으로 머리띠를 얻는 데에 동의한다. 이때 머리띠는 큰 딸에게 자극제가 된다. 크리스티나가 언급한 반짝이 머리띠 중 반짝이는 큰 딸의 상호주관적 실재에 없는 단어이다. 인광석이라는 단어가 반짝이라는 기호를 대체하고 있었다. 큰 딸은 혼란을 겪으며 주입식 교육으로 학습한 언어체계가 다른 세계에서는 통용되지 않을 수 있음을 점차 깨닫는다.

 

 

미디어 콘텐츠

아버지는 오로지 아이들의 복종을 위해 하나의 비디오테이프를 획일적으로 제공했다. 아버지가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Frame을 자녀들이 세상을 판단하는 척도로 여기기를 바랬다. 하지만 은폐되어있던 사실이 외부세계의 콘텐츠를 통해 밝혀지게 된다. 큰 딸은 성적행위강요를 폭로하지 않는 대가로 크리스티나에게 2개의 비디오테이프 영화 록키, 죠스를 제공받는다. 큰 딸은 외부문화인 영화시청을 계기로 자신에 부여된 객관적 실재에 저항하게 된다. 영화 속 캐릭터 간 이름을 부르는 지칭성과 집 안과 전혀 다른 상호작용은 본인이 살고 있는 삶과는 전혀 다른 실재였다. 그래서 그녀는 타인에게 불릴 호칭이 있어야 사회 속에서 존재할 수 있음을 자각하고 브루스라는 이름을 작명하여 자신의 존재를 생산하고 표출하게 된다. 그리고 집안의 언어체계에 의거하면 병신은 빛을 내는 도구를 뜻하는 도구였으나, 영화 속에서 병신은 전혀 다른 의미로 통용되고 있었다. 의문을 가지던 상황에서 부모의 통화내용을 들었으나 전혀 다른 구조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계기로 객관적으로 여겼던 상호주관적 세계가 철저히 부모가 만들어낸 산물임을 자각한다.

 

 

변화의 단초를 제거하기 위한 독재자의 극단적 폭력

 

▲ 영화 <송곳니>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 필굿 엔터테인먼트



독재 시스템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요소는 외부자극이다. 자신의 설정한 체계에 반하는 의견과 체계가 등장할 시 주입교육의 대상은 의문을 가지고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지게 된다. 이는 변화와 혁명의 불씨가 된다. 외부세계 비디오를 시청했다는 이유로 큰 딸을 무자비하게 폭행한다. 비디오 제공의 주체인 크리스티나에게도 폭력이 가해졌고 다시는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할 존재가 된다. 부모의 광적인 독재욕구가 초래한 산물은 근친상간이다. 크리스티나의 대체자로 지목된 큰 딸을 어머니가 머리를 빗어주고 화장을 해주며 동생 방으로 데려가는 씬은 독재정권의 지독한 색체를 내제한다.

 

 

그리고 송곳니

 

▲ 영화 <송곳니> 주체적 존재로 거듭난 큰딸     © 필굿 엔터테인먼트



아버지가 설정한 상호주관적 실재에서 송곳니는 탈출의 자격이자 혈연관계를 의미한다. 독재체계에 의거하면 집 밖에 나가기 위해서는 송곳니를 제거해야만 하고 이후 송곳니가 자라면 운전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녀들을 자신에게 복종하는 개로 양육하였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송곳니를 외부에 저항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한다. 외부세계에 대한 위험성을 강조하며 송곳니를 제거해야만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모순이며 단순히 독재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송곳니 담론을 형성하고 악용했다.

 

하지만 이미 상호주관적 실재에 의문을 가진 큰 딸은 상징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 아령으로 자신의 송곳니를 내리친다. 물리적 충격이 가해졌음에도 그녀는 웃으며 집밖을 나간다. 이는 육체적 탈출을 행했지만 정신적 탈출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가족 이외에 사회 안에서 경험해본 적 없는 상호교류, 기호, 다른 언어체계와 규범 등으로 인해 집밖을 나가기 위해서 일반 사회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를 전혀 모른다. 그녀에게 송곳니를 제거하는 행동은 자유를 위한 유일한 탈출구였다. 이후 집 밖을 벗어난 큰 딸은 아버지 트렁크에 몸을 숨기며 영화가 마무리된다. 해당 영화가 주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큰 딸이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고 외부사회로 융화 되었나 여부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형성된 상호주관적 실재와 부모의 가치에 의문과 혼란, 자신의 욕망에 대한 진취적 고민, 그리고 자유에 대한 욕망을 표출하여 집 밖으로 나간 그녀에게서 긍정적 메시지를 도출할 수 있다. 현 체재에 맹목적으로 순응하지 않고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현대사회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영화 <송곳니>는 자유의지 없이 특정 계층이 형성한 사회적 지식에 대한 무지한 수용이 초래하는 비극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관객들이 살고 있는 객관적 실재에 질문을 던진다. 해당 크리틱을 작성하며 지극히 객관적 실재에 살고 있다고 여기는 우리도 지극히 주관적 실재의 삶을 살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대입, 군대, 취업 등 각 나이별로 사회에서 요구하는 틀이 정해져있고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해 이에 구속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취업을 왜해야하고 취업 후 주어진 업무를 왜 수행해야 하는 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할 여유와 저항 없이 기계적인 삶을 살고 있다. 우리도 구속의 해방을 위해 송곳니를 깨는 행위를 초래하지 않으려면 객관적 실재와 상식적 지식에 관한 비판적 사고를 함유해야 한다.

 

[씨네리와인드 오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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