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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관녀(棺女)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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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4-28 [10:31]

새벽 3시 반, 영주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나이가 들수록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 스마트폰을 묵음으로 해 놨다.

 

두 번 연락을 한 거로 봐서는 급한 일이었나 보다.

 

잠깐 절망적인 생각에 빠졌지만 다른 번호로 온 연락이 없었던 거로 봐서는 개인적으로 할 이야기-아니면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말동무가 필요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어 문자를 남겼다.

 

몇 분 뒤 언니에게서 시간이 되면 연락을 달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숙자 : 언니, 무슨 일 있어?
영주 : 숙자야, 요즘은 바쁘지 않아?
숙자 : 아니, 그렇게 바쁘진 않아. 근데 무슨 일이야, 언니. 새벽에 연락한 거 보면 급한 일인 거 같은데.
영주 : 일은 끝났어. 그런데 내 마음이 좀 불안해서. 그래서 너한테 연락했어. 심장이 자꾸 쿵쿵거려서.
숙자 : 언니 그럼 나한테 연락한 후에 한숨도 못잔 거야? 왜? 무슨 일인데 그래?
영주 : 집에... 강도가 들었어.
숙자 : 뭐? 진짜? 언니 안 다쳤어?
영주 : 난 괜찮아.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어서 당황하긴 했지만.
숙자 : 범인은? 잡았어?
영주 : 그게 잡기는 했는데 조선족이더라. 한국말도 제대로 못해서 조사하기 힘든 가봐. 경찰에서는 며칠 전에 근처 공장에서 불법체류자 단속했었는데 그때 도망친 사람이 아닌가 하더라고. 배가 고파서 도둑질을 하려고 한 거 같다네.
숙자 : 나 참, 정말 별 일이 다 있네. 언니도 오래 살다 보니까 별별 일을 다 겪는다, 그치?
영주 : 근데 숙자야, 내 생각에는 도둑질 하려고 온 게 아닌 거 같아.
숙자 : 그게 무슨 소리야, 언니.
영주 : 그 사람이 식칼을 들고 내 방으로 들어왔어. 경찰 말로는 경계심 때문에 주인을 먼저 죽이고 도둑질을 하려고 그런 거 같다는데 난, 난 나를 노리고 우리 집에 온 거 같아.
숙자 : 도둑이 왜 언니를 노려?
영주 : 눈빛이란 게 있잖아. 그 눈빛이 정말 나를 죽여 버리겠다는 눈빛이었어. 얼마나 소름이 끼쳤는지 몰라. 조금만 늦게 알아챘으면 나, 분명 죽었을 거야.
숙자 : 언니, 진정해. 진정하고 내 말 들어. 지금 언니는 그 도둑이 언니를 노리고 집에 들어왔다는 거야?
영주 : 그래, 그런 거 같아. 며칠 굶은 도둑이면 부엌에서 냉장고를 먼저 열지 식칼을 집고 내 방으로 들어올 리가 없잖아. 분명 나를 노린 거야. 처음부터 내 목숨을 노리고 집으로 들이닥친 거라고.
숙자 : 언니한테 원한을 품을 사람이 어디 있어? 언니가 너무 놀라서 그래. 경찰 말이 맞을 거야. 경계심이 강해서 사람을 먼저 죽이려고 했을 수도 있지. 언니 무사한 것만 해도 정말 다행이야.
영주 : 그렇지? 그런 거겠지? 날 죽일 마음으로 온 게 아니겠지?
숙자 : 그럴 리가. 그 조그마한 마을에 무슨 원한이 있어 사람 죽이려고 왔겠어? 뭐, 그럴 일이라고는 아주 오래 전에 있었지만 이제 와서 원한을 풀려는 것도 이상하고 더군다나 언니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잖아. 뭐, 내가 범죄자 심리를 다 아는 건 아니지만 걔 중에는 살인을 더 안전하다 여기는 심리도 있어. 살인에 거부감이 없는 거지. 공부하기 전에 책상 위에 놓인 물건들이 방해된다 싶으면 치우듯이 내 배고픔이 남에 의해 방해받으면 안 된다 하는 마음으로 언니를 죽이려고 한 거야. 사람 목숨 자체를 가볍게 여기는 심리도 있어. 특히 죽음을 많이 경험해 본 사람일수록 더.
영주 : 죽음을 많이 경험한 사람...
숙자 : 살인범의 경우 어린 시절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던 경우가 많아. 그때 경험한 폭력이 트라우마이자 습관으로 남게 되는 거야.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공포 앞에서는 심리적인 불안을 느끼지만 행하는 폭력에는 거부감이 없어. 인간은 모방의 동물이라고 하잖아. 어린 시절 보고 배웠던 걸 그대로 모방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 언니를 죽이려고 했던 그 조선족도 그런 마음을 지니고 있었을지 모르지.
영주 : 그럼 숙자 네 말은 죽음을 많이 경험한 사람은 남을 죽이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거네?
숙자 : 꼭 그런 건 아냐. 트라우마가 심각한 경우에는 폭력 그 자체에 공포를 느껴. 다만 그 트라우마를 어떻게 표출하느냐에 따라 다른 거지. 자기를 파괴하느냐, 남을 파괴해 나가냐.
영주 : 남을 파괴한다는 건 무슨 소리니?
숙자 : 질투심이야, 언니. 내가 이렇게 괴롭고 힘든데 상대는 행복하면 안 된다는 거지.
영주 : 그 질투심은 같은 경험에서 나오는 거니?
숙자 : 그렇다고 볼 수 있어. 가정 폭력에 시달린 사람은 가정 폭력 피해자가 행복한 걸 원치 않아. 그 사람도 자기처럼 과거를 증오하고 힘들어 했으면 해. 그러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거야. 저 사람은 불행하다. 저 사람은 나처럼 잘못 태어난 거다. 그러니 내가 죽여줘야지. 그래야 저 사람도 이 세상도 행복해지는 거지. 이렇게 자기 잘못을 합리화시키는 거야. 그러다 보면 살인에 정당성이 부여되는 거고.
영주 : 어렵다, 진짜.
숙자 : 맞아, 정말 어려워. 범죄자의 심리를 모르면 범죄소설을 쓸 수 없잖아. 자료만 봐서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으니까 직접 살인범도 만나보고, 만나면 기분도 기분이지만 스스로에게 좌절감이 드는 그런 기분? 일상적으로 대화할 때는 그 사람 말에 공감만 잘 표해줘도 유대관계를 맺고 상대의 속마음을 열 수 있는데 범죄자는 그런 게 아니니까 복잡하더라.
영주 : 그래. 어려워, 참. 그 도둑이 날 왜 죽이려고 했는지 알 수 없잖아. 정말 배가 고파서 그런 거라면 말로 해도 됐을 텐데. 내가 신고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었을까?
숙자 : 너무 다 이해하려고 하지 마. 우리가 봤을 때 이상하다 싶은 생각이 그 사람한테는 당연한 거일 수도 있어.
영주 : 너 그 이야기하니까 민혁 오빠 생각난다. 왜 오빠 마을 잔치 때 넌센스 퀴즈 이상하다고 막 항의하고 그랬잖아.
숙자 : 아, 그거 생각나. 그거 때문에 민혁 오빠 상품 못 받았다고 화냈잖아. 사회자한테 화장실까지 따라가서 항의했더라. 하여간에 그 오빠 성격 있어. 근데 그거 문제가 뭐였지?
영주 : ‘미소’의 반대말. 정답이 ‘당기소’였잖아. 그런데 오빠는 계속 왜 답이 ‘당기소’냐고 물었잖아. 어찌나 웃기던지. 다들 이해했는데 오빠 혼자 끝까지 이해 못했잖아.
숙자 : 맞아, 맞아. 아무리 설명해줘도 이해를 못했지. 있잖아, 언니. 세상에는 참 별별 사람들이 다 있는 거 같아.
영주 : 왜 그래? 최근에 뭔 일 있었어?
숙자 : 아니, 그냥.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마음 쓰이는 그런 일들 있잖아. 나 이사하기 전에 살던 아파트가 층간소음이 심했거든. 하루는 도저히 못 참겠어서 올라갔는데 거기 아저씨가 그러더라. 애들 사는 집이 시끄러운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그래도 너무 시끄러우니 조용히 좀 해달라고 하니까 못하겠다고 그러더라. 우리 애들이 우리 집에서 뛰는데 왜 뭐라고 그러냐며 오히려 큰 소리 치는데 나 한 마디도 못한 거 있지.
영주 : 못됐다, 정말.
숙자 : 한 번은 재활용 하러 나간 적이 있는데 플라스틱에 붙은 비닐을 안 떼었다고 부녀회장이 찾아온 거야. 미안하다고, 다음부터 잘 하겠다고 하니까 자기랑 같이 내려가자고 하더라. 그러더니 플라스틱 재활용 모아둔 비닐봉지를 가리키면서 지금 내가 버린 거 다 떼래. 미안한데 내가 버린 게 뭔지도 잘 모르고 사과도 드렸는데 너무 한 거 아니냐고 그러니까 화를 내더라고. 나 때문에 다른 사람 고생할 건 생각도 안 하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데 사람들이 다 쳐다보더라.
영주 : 그래서, 뗐어?
숙자 : 어쩔 수 없지. 여자가 옆에서 이것도 우리 집 거 아니냐며 자꾸 하나씩 건네는데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 왜 세상에는 저런 사람들이 있는 걸까. 조금만 남을 배려하면 되는데 화부터 내고 달려들고.
영주 : 맞아. 여기 사람들은 서로 잘 알잖아. 그러니까 배려도 해주고 양보도 하고. 너 서울에서 와서 손에 물 한 번 안 묻혀봤다고 네 남편이 그러니까 마을 일은 다 빼준 거 봐.
숙자 : 그니까. 그때 촌장님이 그랬지.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이해해줘야 된다고. 우리가 남을 먼저 이해해줘야 그 사람도 우릴 이해하고 받아들인다고 했잖아.
영주 : 맞아. 지금도 촌장님이 계셨다면 마음 놓고 잠도 잤을 텐데. 민혁 오빠는 이제 늙어서 기운도 없더라.
숙자 : 그 오빠는 어깨만 넓지 힘은 별로야. 다음에는 인준 오빠 불러. 혹시 알아? 소타고 와줄지. 근데 언니, 나 여기서 이런 저런 일 겪으면서 들은 생각이 뭔 줄 알아?
영주 : 뭔데?
숙자 : 사람이... 사람이 왜 사람을 죽이는지 알겠더라. 위층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내가 투명인간이라면,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저 쿵쿵거리는 아이들이랑 그 부모를 싹 다 죽이는 그런 상상을 하곤 했어. 매일 머릿속에서 다른 방법으로 그 가족을 죽이는데 점점 내가 무서워지는 거야.
영주 :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해.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뿐이지.
숙자 : 총도 방아쇠를 당겨야 발사가 되잖아. 조준을 하는 게 분노라면 방아쇠를 당기는 건 살인인데 그 사이에는 어떠한 기폭제가 있어. 만약 나에게도 그런 기폭제가 있다면 살인범이 되는 게 아닐까.
영주 : 그런 생각하지 말고.
숙자 : 언니, 나 가끔 그 사람 꿈꿔. 그 사람 처음 봤을 때 그 눈빛 말이야, 아무리 봐도 사람의 눈이 아니었어. 짐승 같았다니까. 어쩌면 그 기폭제는 야성(野性)을 깨우는 신호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영주 : 숙자야, 미안한데 언니 그만 잘게. 다음에 또 통화하자.
숙자 : 알았어, 언니. 푹 자고. 다음에 또 통화해.
영주 : 너 덕분에 마음이 좀 편해진다. 고마워. 언제 마을에 오게 되면 꼭 연락주고.
숙자 : 그래, 가게 되면 꼭 연락할게. 푹 쉬어, 언니.

 

그날 언니의 집에 들어온 도둑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해프닝이었을까.

 

아니면 목적을 지녔던 걸까.

 

언니가 한숨도 청하지 못했던 건 어떤 불안 때문이었던 걸까.

 

영주 언니, 언니는 어떤 비밀을 품고 있었던 거야.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획취재부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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