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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이 평범하다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영화 ‘한나 아렌트’가 보여주는 ‘악의 평범성’ 그리고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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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4-30 [10:52]

▲ '한나 아렌트' 포스터  © Heimatfilm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제2차 세계대전 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조조래빗’에서 조조를 비롯한 나치 소년단에 가입한 아이들은 유대인을 ‘뿔이 달린 악마’라고 배운다. 그래서 조조는 어머니 로지가 집에 숨겨준 유대인 소녀 엘사와 마주한 순간 당황한다. 엘사의 머리에는 뿔이 없는 건 물론 누가 봐도 아름다운 생김새를 지녔기 때문이다. ‘악’의 설정에는 흉악한 생김새와 악마와도 같은 악랄한 내면이 수반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는 유대인을 말살시키기 위해 그들을 악마처럼 묘사했다. 이는 당시 유럽이 경제위기였던 것과 반대로 유대인들은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었기에 이들을 향한 혐오를 이용한 일종의 프레임이었다. 전 유럽을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고 유대인 말살정책을 편 나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진정한 ‘악마’라고 여겼던 그들의 모습에서 ‘평범함’을 발견했다면 누구든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 재판 당시의 아이히만 

 

1960년 5월, 나치 전범 중 한 명인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의해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를 당한다.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된 그의 모습에서 ‘뉴요커’의 특별 취재원 자격으로 참여한 한나 아렌트는 묘한 생각에 빠진다. ‘저 남자가 진짜 악마라고?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데?’ 그의 모습에는 타인을 압도하는 강렬한 카리스마도, 피에 굶주린 악령의 모습도, 지독한 사상을 지닌 고장 난 내면도 보이지 않았다.

 

당시 아이히만은 재판 내내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답했다. 한나 아렌트는 이 모습에 대해 말한다. 아이히만은 그저 한 명의 공무원으로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그를 비롯한 나치의 대원들은 명령을 따랐고 그 명령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단순하고 성실한 자세는 유럽 전역의 비극을 이끌었다. 한나 아렌트는 ‘악이 특별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 '한나 아렌트' 스틸컷  © Heimatfilm

 

한나 아렌트는 당시 나치에게는 마음에 악이 가득 찼던 게 아닌 대상을 두루 생각하며 개념, 구성, 판단, 추리를 향하는 인간의 이성 작용인 ‘사유(思惟)’가 부족했음을 말한다. 만약 그들이 자신에게 내려진 명령에 대해 생각하는, 그러니까 사유의 자세를 지녔다면 그들은 차마 그 명령을 시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히만의 범죄를 유대인이 아닌 ‘인류에 대한 범죄’로 규정 지으며 그를 이스라엘 법정에 세운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낸다.

 

이는 ‘동지들에게는 선을, 적들에게는 악을 행하는 것이 정의다’라고 말한 플라톤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간 이스라엘, 그리고 유대인에 대한 비판이었다. 정의는 적과 동지를 나누지 않는 데에서 피어난다. 적이라는 이유로 더 강한 벌을 내리고 고통을 준다면 그건 악인과 다름없는 행동이다. 그녀의 이 주장은 유대인 사회에서 큰 비판과 비난을 받게 된다. 한나 아렌트 역시 나치에 의해 프랑스 수용소에 수감됐던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악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사유하는 인간’만이 이 악의 손길을 뿌리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런 그녀의 생각은 스승 하이데거와 연관되어 있다. 두 사람은 나이 차에도 불구 이성 그리고 정신적인 사랑으로 이어진 사이였다. 하이데거는 철학이 근원적 사유임을 강조하면서 끊임없이 ‘사유’하는 자세를 강조했다.

 

▲ '한나 아렌트' 스틸컷  © Heimatfilm

 

허나 그랬던 스승이 나치에 협력하자 한나는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다시 스승을 만나 이 문제에 대해 물어보나 스승은 명확한 답을 내지 않는다. 여기서 한나는 알게 된다. 다수가 침묵하면 소수의 ‘사유’는 묻히고 만다. 그러기에 나는 말해야만 한다. 악은 평범하다고. 그 평범한 악을 내버려 둔다면 사유하지 않는 개인들은 악에 물들어 버린다고.

 

하지만 그녀의 주장은 사회적인 논란을 낳게 된다.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에 대해 ‘그들은 또 다른 나치일 뿐’이라는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던 거처럼 악의 상징인 나치에 대해 다른 주장을 펼친 한나 아렌트는 대학에서조차 수업에 들어가지 말 것을 종용받는다. 그럼에도 한나는 강의실에 들어가고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그 이후 그녀는 큰 상처를 받게 된다.

 

 ▲ '악의 평범성'을 주장한 한나 아렌트

 

강의를 끝낸 그녀의 앞에는 유대인 친구가 서 있다. 그는 한나에게 말한다. ‘네가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 있어?’ 제발 그만하라는 한나의 외침을 배신하듯 친구는 계속 한나를 책망한다. 그녀에게도 ‘나치’는 아픔이자 고통, 죽이고 싶은 악이다. 하지만 악이 나치처럼 ‘특별하다’고 인정하는 순간, 세상에 모든 평범한 ‘악’은 활개를 친다. 사회의 상류층이라는 이유로, 국가에서 일을 한다는 이유로 악이 아니라 여기게 되고 그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명령에 ‘사유’하지 않은 채 공감하고 따르게 된다.

 

유럽에는 이와 비슷한 역사가 있다. 바로 ‘마녀사냥’이다. 당시 유럽사회는 기근과 빈곤의 문제를 여성에게 돌렸다. 그 대상은 결혼이라는 사회적인 굴레를 따르지 않는 여성, 남편과 사별한 후 홀로 살아가는 나이든 여성이었다. 특히 나이든 여성은 주름진 외형이 주는 두려움 때문에 마녀로 몰렸고 학살당했다. 그들은 ‘악’을 특별한 것이라 규정했고 혐오의 대상을 만들었다. 악을 특별하다 여기는 생각은 평범한 악을 놓치게 만든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6년 수면 위로 올라왔던 국정농단 사건을 들 수 있다. 당시 정부 주도 하에 국정원을 동원해 여론을 조작했다. 하지만 국가에 소속된 공무원들은 그저 ‘명령’이라는 이유로 국정농단에 가담했다. 그들에게 사유가 있었다면 정의와 상식을 벗어난 국정농단이란 사건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국민들 역시 마찬가지다. 악을 특정한 대상으로 지정해 둔다면 평범한 이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이들의 악행을 발견할 수 없다.

 

▲ '한나 아렌트' 스틸컷  © Heimatfilm

 

악을 막는 방법은 사유다. 어떠한 사안에 대해 편을 나누고 성역을 지정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판단하며 추리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던 이유 역시 사유의 부족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유럽은 지식인들의 강연과 사상에 젊은이들이 심취했을 때였고 이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믿고 따랐다. 그리고 이들의 말에 의해 전쟁터를 향했다.

 

사유는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은 이 당시 유럽 청년들의 부족한 사유를 꼬집으며 알을 깨고 나오라는 계몽의 외침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치 정권의 목소리로 ‘선동의 제왕’이라 불리는 괴벨스가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 건 스피커를 가진 사람의 말에 쉽게 휘둘리는 군중심리를 의미한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또 다른 악을 막기 위해, 이 악에 의해 희생당하는 이들을 막기 위해 꼭 해야만 했던 중요한 주장이었다.

 

그녀의 주장은 타협을 볼 수도, 포기할 수도 있는 주장이었다. 이미 2차 대전은 끝났고 비극은 막을 내렸다. 세상이 나치를 비롯한 ‘악의 잔당’들을 처단하자는 분위기인데 찬물을 끼얹는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포기할 수 없었던 건 그녀의 사유가, 또 다시 등장할 수 있는 평범한 악이 이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치가 사라진 후에도 독일은 분단이란 고통을 겪었고 극좌 테러단체 바더 마인호프의 등장으로 혼란에 빠졌다.

 

악은 특별함을 지니지 않는다. 때문에 사유를 지니고 경계해야 한다.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무너진 독일의 경계와 국민들의 자존감을 이용해 정권을 잡았고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나치의 등장을 의심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사유는 다수의 군중심리에 의해 무너졌다. 사유가 없으면 악은 힘을 얻는다. 의심하고 생각할 때, 평범한 악을 막아낼 수 있음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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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획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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