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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관녀(棺女)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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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5-05 [14:25]

버스정류장에서 오세근이 목격된 시간.

 

냇가에서 오세근이 목격된 시간.

 

그 사이에 오세근이 살인을 저지른 시간.

 

그 시간을 종합해 봤을 때 자전거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물론 오세근이 체력이 좋고 빠른 달리기 속도를 지녔다면 이야기는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절름발이가 살인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해내려면 자전거 밖에 답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건의 살인 모두 자전거를 사용했다고 가정했을 때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는 점은 의문이다.

 

그 고요한 시골마을에서 끽끽거리는 자전거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을까.

 

근처에 학교가 있었음에도 굳이 냇가까지 간 이유는 무엇일까.

 

불편한 다리로 돌계단을 꼭 내려갈 필요가 있었던 걸까.

 

흉기를 처리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오세근의 집은 마을에서 동떨어진 곳이라 방문이 없었다.

 

효림 : 잠깐! 오세근의 집만 왜 동떨어진 곳이야?
진석 : 그러게. 책에 보면 오세근은 원래 마을 사람은 아니었던 거로 되어 있어. 젊은 나이에 일거리를 찾아 여기로 왔다나봐. 책에 자세히 서술되지 않은 거 보면 어느 때에 어떤 일로 왔는지는 숙자 아줌마도 알아내지 못했나봐.
효림 : 그렇구나. 그런데 학교는 무슨 소리야? 오빠 말은 학교가 살인현장 근처에 있었는데 왜 거기서 피를 씻지 않았나 그 소리인 거야?
진석 : 그치. 굳이 왜 불편하게 냇가까지 갔느냐 이거지. 그러다 두 사람한테나 걸리기도 했고 말이야.
효림 : 내 생각은 좀 다른데. 학교가 더 위험하다고 판단한 거 아닐까. 35년 전에 그 학교에 도시로 가기 위해 밤새 공부하는 학생이 있었을 수도 있고 학교에는 방호원이 있잖아.
진석 : 방호원은 없었다고 하더라고. 처음 살인을 저지르면 당황해서 놓쳤을 수도 있겠는데 20번째 살인이었잖아. 나 같으면 최대한 안전한 길을 택했을 거 같은데.
효림 : 냇가가 안전하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르지. 여기가 35년 전에 어땠는지 오빤 모르잖아.

 

효림이는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내 추리에 의문을 표한다.

 

그래, 네 말이 맞다.

 

35년 전 여기가 어땠는지는 숙자 아줌마만 알 수 있겠지.

 

하지만 내가 그 사실을 알아낸다면, 그리고 책을 통해 진실을 밝혀낸다면 새로운 35년을 얻을지 모른다.

 

진석 : 살인 장소도 뭔가 이상해.
효림 : 어떤 점에서?
진석 : 안방이랑 현관에 사방으로 문이 나 있거든. 한 명이 세 명을 죽인다고 가정했을 때 한 명 정도는 그 난장판을 눈치 채고 미리 도망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뭐, 숙자 아줌마가 적은 대로 범인이 먼저 한 번에 피해자들을 죽인 다음에 난도질을 했다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과연 한 방에 사람을 찔러 죽이고 다음 사람도 한 방에 찔러죽이고, 이런 만화 같은 살인이 가능할까 의문이 들거든. 더군다나 오세근은 절름발이였어. 어둠 속에서 기민하게 움직였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
효림 : 20번이나 살인을 저질렀잖아. 그리고 이 마을 사람이 아니라며. 다른 곳에서 살인을 저지르다 왔을지도 모르지. 능숙한 살인마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진석 : 글쎄. 내가 살인을 저질러본 게 아니니.
효림 : 뭐야, 그 무책임한 대답은? 오빠 범죄 추리소설 작가야. 범죄에 대해 전문적으로 알아야 되는 거 아냐?
진석 : 그래, 네 말이 맞다. 근데 조사는? 어떻게 잘 했어?
효림 : 오빠 말대로 하니까 직빵이더라. 뭐, 어느 정도 성과는 거뒀다고 생각해.

 

효림이에게 내 명함을 줬다.

 

추리소설 작가인데 아직 명함을 받지 못했다.

 

선배님이랑 같이 왔는데 제대로 조사하지 못하면 혼난다.

 

제발 도와 달라.

 

그리고 애교 섞인 목소리.

 

내가 녹았는데 다른 누가 버틸 수 있을까.

 

경찰이나 기자는 경계심을 준다.

 

내가 한 말에 혹 실수가 있지는 않을까.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서 문제를 일으키진 않을까.

 

작가는 물꽃 마을에 신뢰를 주는 단어다.

 

이 마을 출신 최고의 인사가 작가이니 말이다.

 

뭐, 35년 전 사건의 진범을 새로 풀어낸다 하더라도 이 마을에 좋은 일은 없다.

 

오히려 어두운 이미지를 다시 가져올 뿐이다.

 

하지만 어차피 매스컴에 노출될 위기에 처한 지금 적어도 기사보단 소설이 더 부드럽게 그들을 다뤄줄 것이라 생각한 거겠지.

 

35년 전에 그랬던 거처럼.

 

효림이는 수첩에 적어둔 내용을 읽기 전 머리를 긁적인다.

 

효림 : 근데 우리 여기서 이러는 거, 별 문제 없겠지?
진석 : 갑자기 왜 그래? 다 각오하고 온 거 아니야?
효림 : 난 상관없는데 오빠가 좀 걱정돼서. 오빠 회사에서 여기 온 거 알면 문제가 생길수도 있잖아.
진석 : 나도 각오한 일이야. 괜찮으니까 오늘 조사한 내용 좀 알려줘.

 

거짓말이다.

 

괜찮을 리가 있나.

 

그저 안 걸리기만을 바랄 뿐이다.

 

회사에는 개인사정을 핑계로 3일간 휴가를 냈다.

 

예상 외로 쉽게 받아들여진 게 더 화가 났다.

 

날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보는 그 눈빛에 독기가 올랐다.

 

은실 : 혹시 물꽃 마을 가려는 건 아니죠?

갑작스러운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다.

은실 : 뭐야? 진짜 그 목적으로 휴가 내는 거야?
진석 : 거길 왜 갑니까? 지금 가봐야 뭐가 있다고. 그냥 개인사정으로 휴가 좀 당겨쓰는 겁니다.
은실 : 허긴, 그렇지. 35년 전 사건인데 가봐야 뭐가 있다고. 그래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잘 다녀와요.

 

그 여자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하지만 설마 진짜 여기에 왔을 줄은 모를 거다.

 

만약 알게 된다면, 가만있지 않겠지.

 

효림 : 조사는 주로 동사무소랑 마을회관 중심으로 했어. 여기 어르신 분들이 착하셔서 그런지 다 연락해서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주시더라고. 덕분에 마을회관에 있는 회의실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었어?
진석 : 와, 진짜 너무하다. 노인 분들한테 오라가라 한 거야?
효림 : 내가 했나? 거기서 그렇게 도와준 걸 어쩌라고. 덕분에 과자 먹고 유튜브 보면서 편하게 기다렸지, 뭐. 마을회관에 와이파이도 있더라.
진석 : 이거 대충 조사한 거 아냐?
효림 : 오빠보다 훨씬 더 잘 조사했거든요? 꼬우면 오빠도 내일부터 나랑 같이 다니던가. 먼저 첫 번째. 그 오세근을 봤다는 버스기사 아저씨 있잖아. 마을에 핸드폰 번호를 아는 사람이 있더라고. 그래서 전화를 해봤는데 경찰 조사 결과랑 다른 부분이 있었어.
진석 : 그게 뭔데?
효림 : 오세근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는 거야.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뒷모습을 봤는데 차림새랑 덩치가 오세근과 비슷해 보였다고 하더라고. 진술 내용을 보니 그 시간 즈음에 버스 정류장에서 검은 점퍼를 입은 남자를 봤다. 그 정도였다고 해. 경찰이 자꾸 누구랑 비슷한지 물어봤고 증거물이 발견된 후에는 오세근 아니었냐고 취조실에 붙잡아 놓고 강요했대. 당시에는 남자들은 대부분 검은 점퍼를 입고 있었다고 해. 그러니까 확실히 오세근이 아니었던 거지.
진석 : 오세근은 절름발이였잖아. 걸음걸이를 보고 알 수 있지 않았을까?
효림 : 지나가면서 본 거라 걸음걸이까지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고 하더라고. 그때 그 장소를 지나간 사람이 다른 사람일 수도 있지만 경찰이 진술을 오세근으로 몰아갔다면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았겠지.
진석 : 좋아. 다음은?
효림 : 말투가 굉장히 사무적이네. 좋아. 다음으로는 냇가에서 오세근을 봤다는 증언. 첫 번째 증언을 한 노인의 경우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그때 옆에서 노인의 증언을 들었다는 분이 있더라고. 노인이랑 같이 경찰조사를 받았던 사람인데 그분 말이 노인이 오세근이라는 말은 한 적이 없대. 냇가에서 누구를 봤는데 어둡고 뒷모습이라 잘 모르겠다. 이 정도 증언이었어. 그럼 중요한 건 당시 꼬마의 증언이겠지. 이 꼬마는 지금은 마을을 떠났고 연락이 닿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대신 꼬마랑 친했던 분을 만날 수 있었지.
진석 : 이 마을에서 쭉 살았던 사람이야?
효림 : 맞아. 그 꼬마랑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대. 꼬마가 자기 때문에 아저씨가 잡혀갔다며 엄청 괴로워했다고 하더라고. 오세근은 아이들한테 뻥튀기를 자주 사줬었나봐. 아이들이 장애인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따라다녔대.
진석 : 장애인 아저씨라, 잔인하네.
효림 : 자기들 딴에는 친근함의 표현이었겠지. 이 시골마을에서 인권 의식이 높아봐야 얼마나 높았겠어. 아무튼 그래서 괜히 말했다고 자책했다나봐. 그때 말한 내용을 물어보니 오줌을 싸고 가는 거 같았다고 말했대.
진석 : 말이 뭔가 애매하다.
효림 : 그치. 그래서 그분이 다시 물어보니 냇가에서 바지를 올리고 있는 모습을 봤다나봐. 그러니까 꼬마 눈에는 오줌을 싸는 거처럼 보였겠지. 경찰에 그렇게 진술했고 경찰은 흉기와 피 묻은 옷을 버린 걸 봤다고 생각했던 거야. 증거물 하나로 오세근이 범인으로 몰린 상황이었고 모든 정황들이 불리하게 해석될 때였으니까.
진석 : 그날 조용히 집에 들어갔어도 범인으로 의심받았을 거야. 증거라고는 하나 나왔는데 그게 오세근이 범인이라고 가리켰으니 어쩔 수 없지. 그 냇가는 나도 가봤는데 꼬마의 증언에 의심이 들어. 그 어둠 속에서 한참 아래에 있는 냇가에 사람 얼굴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을까? 버스기사의 말도 그래. 잠깐이지만 걸음걸이를 볼 수 있었을 거야. 절뚝거리면 티가 나니까. 하지만 지금 와서 온전한 증언을 받아내긴 힘들겠지.

 

우리는 과거를 찾고 있는 것이다.

 

기억이 퇴색되고 변형된 이들을 상대로.

 

그들이 35년 전에 했던 말은 진실일 수도 있고 어쩌면 거짓일 수도 있다.

 

본인이 한 말이 거짓이었는지 아니면 진실이었는지 헷갈릴 만큼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다.

 

효림 : 오빠 말이 맞아. 오세근이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는다 하더라도 누가 진범인지 알아내지 못한다면 여기 온 큰 의미가 없을 거야. 그러려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아야 되겠지. 그래야 올바른 방향으로 수정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오빠를 따라온 거고.
진석 : 정말 고마워. 덕분에 첫 날인데 정말 많이 알아냈다, 그치? 그럼 이제 같이 침대로 갈까? 오늘 많이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효림 : 잠깐만. 아직 연희가 남았어.
진석 : 연희에 관해서도 뭐 알아낸 게 있는 거야?

 

20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한 동안 경찰이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물꽃 마을에는 원한 관계를 지닌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타게 증거를 찾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그 증거를 숙자 아줌마가 경찰서에 가져왔을 때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하나뿐인 증거가 가리키는 범인은 한 명 뿐이었으니까.

 

오세근이 좋아했던 다방 아가씨 연희.

 

연희의 머리핀이 사건현장 근처에서 발견됐다.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획취재부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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