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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관녀(棺女)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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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5-15 [11:08]

영주 언니의 무덤으로 가던 중 동일이에게 전화가 왔다.

 

보람이와 인준 오빠가 앞서가고 뒤따라 천천히 가기로 했다.

 

동일이는 가라앉은 목소리는 어떠냐고 묻는다.

 

숙자 : 어떠긴 뭐. 이 마을이야 항상 같지. 영주 아줌마 벌써 무덤에 묻었다고 해서 지금 그리로 가는 중이야.
동일 : 벌써? 엄마 좀 실망했겠다, 그치?
숙자 : 민혁 아저씨가 준비를 다 끝내놨다나 봐. 관속에 넣고 옮기기만 하면 돼서 빨리 끝냈다네. 살았을 때 얼굴이라면 모를까, 죽은 모습 보는 게 좀 그랬는데 어쩌면 더 잘된 걸지도 몰라. 죽은 사람 옆에서 말하면 진짜 듣는 거처럼 느껴지잖니.
동일 : 그게 더 좋지 않아? 그러면 엄마가 영주 아줌마한테 못한 말을 아줌마가 다 들어주는 기분이잖아.

 

아니,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했어.

 

언니와의 마지막 만남이 없었다면 달랐겠지.

 

언니가 이상한 말만 하지 않았다면 마지막으로 잠든 언니의 모습을 보고 말했을 거야.

 

고맙고 미안하다고.

 

그런데 그때의 언니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이었어.

 

낯설고 두려웠어.

 

차라리 영정사진 속 익숙한 언니의 모습이어서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진심을 꺼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

 

동일 : 이제 영주 아줌마 못 본다고 생각하니 허전하네.
숙자 : 그러니까. 근데 동일아, 혹시 명숙이 연락되니? 얘가 문자에 답이 없네. 전화도 안 받고.
동일 : 응? 명숙이 거기 있는 거 아냐?
숙자 : 아니, 여기 안 왔대. 그래서 얘가 혹시 모르나 해서 연락했는데 안 받더라고. 혹시 명숙이 무슨 일 있니?
동일 : 아니, 그러진 않을 거야. 걔가 연락을 끊고 그럴 애가 아닌데.
숙자 : 그러니까. 문자를 봤으면 바로 올 텐데 안 온 거 보면 문자도 못 본 거 같거든. 늦게 오면 마을에서 안 좋게 생각할 텐데. 혹시 최근에 명숙이랑 연락한 게 언제니?
동일 : 좀 됐지? 그 엄마가 영주 아줌마 상태 안 좋다고 연락받은 날 있잖아. 그날 바로 다음 날인가 이틀 후인가 명숙이랑 만났던 거 같아. 명숙이가 같이 영주 아줌마 보자고 그래서 둘이 차타고 물꽃 마을 갔었어.
숙자 : 왜 말 안 했어?
동일 : 굳이 엄마한테 뭐 하러 얘기해. 그때도 영주 아줌마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더라. 못 걷는 건 그렇다 치고 자꾸 우리한테 미안하다고 그러는 거야. 명숙이가 진정시켜서 방으로 데려갔는데 세상 서럽게 울더라고.
숙자 : 그때 영주 아줌마가 뭐라고 그랬니?
동일 : 그냥 미안하다고.
숙자 : 그게 다야?
동일 : 모르지, 뭐. 뒤에 둘이 방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난 마당에 있었어. 아, 엄마, 나 빨리 물꽃 마을로 돌아가고 싶다. 더 늦어졌다간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사라질 것만 같아. 그때 명숙이랑 왔을 때 경률 아저씨가 우리 먹으라고 닭 한 마리 잡아서 삼계탕 끓여줬어. 민혁 아저씨는 매실주 주고. 거기는 진짜 사랑이 넘치는 마을이야. 물은 맑고 꽃은 예쁘고. 풍경만 바라봐도 마음이 깨끗해지잖아. 안 그래, 엄마?
숙자 : 엄마도 그래. 아들, 엄마가 부탁 하나만 할게. 명숙이 좀 찾아봐 줘. 연락을 계속 하라는 게 아니라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봐 줘. 알았지?
동일 : 왜, 엄마? 걔가 여기에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바빠서 연락 안 받는 건지도 모르잖아. 너무 오바하는 거 아냐?
숙자 : 명숙이한테 연락한지 이틀이 지났어. 네 말대로 연고도 없는 애가 어디서 뭘 하기에 지금까지 연락이 없는지 이상하잖아. 그러니 꼭 좀 찾아봐 줘.
동일 : 엄마가 그러니까 나도 좀 걱정되긴 해. 사실 영주 아줌마한테 갔던 날, 돌아오는 길에 명숙이 표정이 되게 안 좋더라고. 아무래도 마음으로 길러준 엄마니까 더 마음이 쓰이겠지. 알았어, 엄마. 내가 한 번 찾아볼게. 심부름 업체에 맡기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대신 금액은 엄마한테 부탁 좀 할게. 알았지?
숙자 : 돈은 걱정 말고 빨리 찾아야 해, 알았지? 장례식에 명숙이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들 좋지 않게 생각할 거야. 명숙이는 다시 이 마을로 돌아올 수도 있잖니.
동일 : 그때면 나도 같이 돌아올지 모르지. 알았어, 엄마. 이따 다시 연락 줄게.

 

서울로 올라간 후 동일이는 한 번도 이전처럼 웃지 못했다.

 

그 애의 웃음에는 어딘가 꽉 막힌 답답함이 느껴졌다.

 

명숙이가 서울로 올라온 뒤 동일이는 툭하면 물꽃 마을 이야기를 꺼냈다.

 

명숙이가 맞장구라도 쳐주면 밤이 새도록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언니, 언니가 동일이를 그렇게 만든 거지?

 

무덤 앞에 서니 명주 언니가 작게 느껴진다.

 

언니는 170이 넘는 키에 힘이 장사였다.

 

식당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할 만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이었다.

 

언니는 자기처럼 키 크고 덩치 있는 여자는 인기가 없다며 재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단단한 나무 같았던 언니의 뿌리가 쉽게 뽑혀 넘어졌을 때 두려움을 느꼈다.

 

언니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현실이 나에겐 공포였다.

 

하늘 위에 신이 있다면 언니에게 이러면 안 되는 거라고 몇 번이고 생각했다.

 

1985년 늦가을.

 

그날은 우리 모두 긴장감에 온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경찰과 마을 남자들, 그리고 언니와 나는 오세근의 집을 향했다.

 

주변에서는 내가 따라가는 걸 만류했지만 오세근이 붙잡히는 모습을 꼭 눈앞에서 보고 싶었다.

 

인준 오빠가 대표로 나서 문을 두드렸다.

 

마을 공동경작 일로 할 말이 있다는 소리에 오세근은 문을 열었다.

 

인준 오빠가 문을 활짝 열었고 경찰이 들이닥쳤다.

 

소리를 지르며 저항하는 오세근을 꽉 붙잡았다.

 

그가 마당으로 끌려 나오는 순간, 모든 일이 끝났다는 생각에 몸에 힘이 풀렸다.

 

그 힘은 아주 짧은 순간 다시 긴장의 끈을 움켜쥐었다.

 

“여기 아이가 있어!”

 

한 경찰의 말에 영주 언니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초등학생 나이로 보이는 아이가 온몸을 떨며 구석에 움츠리고 있었다.

 

오세근이 미혼이라는 것을 아는 마을 남자들은 그를 밟기 시작했다.

 

살인도 모자라 유괴를 한 이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용서하지 않았다.

 

경찰이 말리지 않았다면 악마는 그때 숨을 거뒀을 것이다.

 

법의 처분에 맡기면 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이 그를 살려줬다.

 

아이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앞도 보지 못하는지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 못했다.

 

우리가 하는 말에 신체적인 반응은 보였지만 그 이상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촌장님은 장애가 있는 아이이기에 오세근에게 납치된 거라고 말했다.

 

경찰은 실종신고를 바탕으로 아이의 부모를 찾으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아이는 경찰서와 마을회관을 왔다 가며 지냈다.

 

아이의 몸에서는 성폭행 흔적이 발견됐고 오세근에게는 유아강간 혐의가 추가됐다.

 

경찰은 오세근이 아이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다며 보육원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영주 언니는 이 결정에 반대했다.

 

보육원이 아이를 언론에 노출시킬 수 있고 상처가 심한 아이에게 더 큰 아픔을 줄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촌장님은 어차피 수사는 종결된 거 아니냐며 아이 문제는 마을에 맡겨줄 것을 간청했다.

 

그때 촌장님은 영주 언니가 아이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눈치 챈 게 분명하다.

 

언니가 나에게 품은 감정은 동정이었을 것이다.

 

남편과 동생 부부를 잃은 불쌍한 아내.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싶지만 힘도 능력도 없는 악만 남은 인간.

 

남들은 무시하고 포기를 설득할 그런 존재를 위해 언니는 동일이를 대신 도맡아줬다.

 

언니의 눈에 동일이가 얼마나 불쌍해 보였을까.

 

그 연약한 애가 아빠 없이 살아갈 시간이 얼마나 막막하게 느껴졌을까.

 

그 여자아이한테도 언니는 똑같은 마음을 품었을 것이다.

 

앞도 못보고 말도 할 수 없는 그 아이는 보육원에서 새 가족을 만나지 못하면 평생을 혼자 살아가야 한다.

 

내면에 품은 아픔을 치유하지 못하고 언론에 의해 노출된 그 아이는 제대로 된 사랑을 느끼지 못한 채 망가진 삶을 살아갈 것이다.

 

언니는 그 미래를 상상하기 싫었고 행동으로 옮겼다.

 

아이의 이름을 명숙이라고 지어줬다.

 

명숙이는 더디지만 천천히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한 번은 언니가 전화를 걸어 울먹이며 말했다.

 

명숙이가 말을 했다고.

 

언니의 지극한 사랑은 말을 할 수 없는 아이에게 기적을 선물했다.

 

명숙이가 말을 할 수 있게 된 이후 언니는 더 밝아졌다.

 

명숙이 자랑을 하루 종일 늘어놓을 때도 있었다.

 

하루하루가 행복해 시간 가는 게 아깝다며 투정을 부렸다.

 

영주 : 숙자야, 너 전에 집에 방이 많다고 그랬잖아. 미안한데 우리 명숙이 좀 데리고 살아주면 안 되겠니?

 

언니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머리가 어지러웠던 적이 있다.

 

영주 : 애가 서른이 넘었잖아. 언제까지 이 마을에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눈이 안 보여도 마사지사는 할 수 있으니까 네가 좀 도와줘. 내가 부탁할게.

 

언니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느껴졌다.

 

영주 : 명숙이도 다른 애들처럼 여기가 싫은가 봐. 자꾸 서울로 가고 싶다고 해. 그런데 내가 서울에 아는 사람이 너 한 명 뿐이잖아. 귀찮고 힘든 부탁이란 거 알아. 그래서 너한테 하는 거야. 네가 아니면 누구한테 명숙이를 맡기겠니.

 

언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명숙이에게 집을 따로 마련해줬다.

 

동일이가 가끔 연락을 하거나 집에 들려 명숙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했다.

 

혹 불편한 건 없는지, 누군가에 의해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진 않은지.

 

명숙이는 마사지사로 금방 자리 잡았다.

 

어렸을 때부터 동네 어른들을 안마해 준 덕인지 손힘이 좋았다.

 

명숙이는 입버릇처럼 엄마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남들이 보기에 이상적인 삶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기적이었다고.

 

명숙이한테 문자를 남겼을 때 바로 답이 올 줄 알았다.

 

다음 날에도 답이 없어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혹시 명숙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그날 방에서 언니와 명숙이는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그 이야기가 명숙이에게 영향을 끼친 걸까.

 

언니는 그날도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고, 다 내 잘못이라고.

 

그리고.

 

그리고 나한테 했던 말을 또 했을까.

 

그 말을 들은 명숙이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명숙이는 오세근이 진범이란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말은 못해도 소리는 들을 수 있으니까.

 

영주 언니는 그 애의 마음에 난 상흔을 다시 후벼 파고 싶지 않다며 그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지금 난 명숙이에게 들어야 될 이유가 생겼다.

 

영주 언니, 언니가 그 이유를 만들었어.

 

그러니까 난 명숙이를 꼭 찾아야만 해.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획취재부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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