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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다시읽기|이제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장마'

윤흥길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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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5-28 [17:05]

▲ '장마' 표지  © 민음사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냉장고에 보면 먹다 남긴 음식이 있다. 그 음식들을 볼 때면 생각한다. ‘아, 그냥 그때 먹을 걸’ 맛있는 걸 아껴 먹으려고 고이 모셔두거나 언젠가 먹겠지 라는 생각으로 버리지 않고 두가다 공간만 차지하고 결국 쓰레기통으로 가게 된 것이다. 어떤 문제는 미루고 미루다 보면 처리가 곤란한 지경에 이른다. 그러다 결국 문제의 발전이 아닌 유지를 택한다. 남북의 분단은 그런 문제다.

 

광복 이후 우리 민족은 3미국과 소련, 양국이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눠 점령한다. 이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북쪽과 남쪽에는 서로 다른 정권이 수립된다. 당시 미군정의 지지를 받았던 이승만은 먼저 정부를 수립한 뒤 통일을 진행하자는 의견을 내비쳤다. 한 민족인 만큼 오랫동안 분단이 가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반백년 넘게 분단이 지속되며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았다.

 

윤흥길 작가의 ‘장마’는 분단을 소재로 한다. 42년생인 그는 유년시절 전쟁을 겪었다. 제목인 ‘장마’는 당시 그가 생각했던 전쟁의 이미지다.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침묵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는 작품 속 문장은 전쟁에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길고 긴 장마의 모습을 보았음을 명시한다. 비는 오랜 시간 지속되는 아픔과 고통을 표현하는데 사용된다.

 

영화를 예로 들자면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검은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검은 비를 통해 원자폭탄 투하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도입부에서 소녀의 얼굴을 검게 적시는 비는 원자폭탄으로 인한 후유증의 길고도 긴 고통을 보여줄 것을 암시한다. ‘장마’ 역시 마찬가지다. 초등학생 동만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6.25전쟁이 지닌 동족상잔의 아픔이 지닌 깊이를 말한다. 장마처럼 길고 푹 젖어버리는 고통을.

 

‘장마’에는 배경이 대한민국이기에 보일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대가족이다. 동만의 가족은 친할머니, 외할머니, 부모님, 이모, 친삼촌과 외삼촌이 모여 산다. 가족이 많다는 건 그만큼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농경사회에서 대가족은 그 가족 간의 역할과 가부장제로 대표되는 위계질서가 확실했기에 질서가 잡힌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전쟁의 혼란기 속에서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동만의 가족은 남과 북처럼 내부에서 분단된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갈등을 겪으며 가족 사이에 냉기가 흐르게 된 것이다. 이 냉기는 평범했던 가족이 하나의 사건을 통해 갈라지게 된 게 아닌 가족이 지니던 불안과 공포가 표면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심도 높은 긴장감을 유발한다. 윌리엄 홀든 주연의 영화 ‘피크닉’을 예로 들자면 인물들은 공통으로 품고 있지만 외부로 표출하지 않는 불안이 있다.

 

이 불안은 관객으로 하여금 서스펜스를 유발한다. 언제 이 감정이 터져 나올지 모른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윌리엄 홀든이 연기하는 할은 직업이 없는 건달이다. 그가 동창 알란을 찾아왔을 때 알란의 가족들은 할에 대한 불만이 있지만 이를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할이 알란의 여자 친구 매지와 춤을 추고 애정을 나누는 순간 이 불안은 분노를 통해 표출된다.

 

‘장마’에서 불안이 ‘분단’이 되는 순간은 외삼촌의 죽음이다. 여기서 두 번째 특징으로 전쟁 상황을 들 수 있다. 당시 남과 북은 38선에서 밀고 당기는 싸움을 반복했다. 북한이 내려오면 북한에 협력해야 했고, 반대로 남한이 올라오면 남한에 협력해야 했다. 문제는 북한에 협력했단 이유로, 또는 남한에 협력했단 이유로 반대편으로 몰려 한 민족임에도 죽임을 당했다는 점이다.

 

친삼촌은 완장을 차고 돌아다니던 빨치산(공산주의 비정규군)이고 외삼촌은 국군 소위다. 두 사람의 가족은 한 집에서 지내지만 한 명은 북한에, 다른 한 명은 남한에 속해 서로에게 총과 칼을 겨눈다. 이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강하게 드러내며 이 두 사람으로 인해 불안이 갈등으로 번질 것이란 걸 암시한다. 작품은 이를 위해 한 가지 사건을 앞서 집어넣는다. 동만이 형사의 꾀임에 빠져 초콜릿을 얻어먹고 친삼촌의 행방을 발설한 일이다.

 

이 일로 친할머니는 동만을 사람 백정이라 꾸짖지만 외할머니는 감싼다. 친할머니에게 동만은 아들을 죽이려한 실수를 한 것이고, 외할머니 입장에서는 어린 손주가 실수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앞선다. 반대로 외삼촌이 죽은 뒤, 외할머니는 빨치산을 저주한다. 이 저주에는 친할머니의 아들도 속해있다. 때문에 두 사람의 갈등은 극에 달한다. 자식의 문제를 양보할 어미는 없다. 가족으로 묶인 그들은 가족 안에서 가족을 저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다.

 

남과 북의 어른들은 모두 피해자다. 그들은 오직 살아남기 위해 편을 바꿔야만 했고 친구나 가족을 밀고해야 했다.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의 ‘유로파 유로파’라는 영화를 보면 유대인 소년이 살아남기 위해 독일 나치인 척 연기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전쟁의 목적은 오직 생존이다. 때문에 두 할머니는 아들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기도한다. 그들 사이에는 가족의 사랑과 화해, 치유보다 생존이 먼저다.

 

하지만 친삼촌마저 점쟁이가 예언한 날짜에 돌아오지 않자 작품은 세 번째 특징을 통한 치유와 화해를 말한다. 바로 샤머니즘이다. 동만이의 집 앞뜰로 거대한 구렁이가 등장하는 장면은 친삼촌의 귀환을 말한다. 하지만 그 귀환은 정상적인 귀환이 아니다. 구렁이는 민담이나 전설에서 부정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구렁이가 아이들에게 돌팔매질 당하다 왔다는 점, 나무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는 점은 친삼촌이 전쟁으로 인해 죽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샤머니즘은 초자연적인 존재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샤먼을 중심으로 한 종교나 주술을 말한다. 외할머니가 구렁이에게 말을 걸고, 친할머니의 머리를 태워 돌려보내는 점은 이런 샤머니즘적인 요소를 보여준다. 이때 외할머니가 건네는 말에는 위로가 담겨 있다. 외할머니는 구렁이가 친삼촌이란 걸 알고 그 영혼을 기리고자 한다. 샤머니즘은 영혼을 믿으며 영혼이 식물이나 동물 또는 물건에 들어갈 수 있다 여긴다.

 

다른 사람이 쓴 물건을 주어오지 마라는 이유도 이런 샤머니즘에 기초를 둔다. 영혼을 편히 보내기 위해서는 그 영을 위로해야 한다. 외할머니는 친할머니의 머리카락을 태우는 의식을 통해 위로를 전한다. 이는 외할머니가 친할머니에게 품었던 원망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사이에는 행위 없이 감정만 존재한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품은 증오는 애증에 가깝다.

 

자식을 전쟁터로 보낸 마음은 이해하지만 적이 되었기에 어쩔 수 없는 증오를 지닌다. 외할머니가 친삼촌의 영을 기리는 순간, 친할머니는 외할머니에게 품었던 증오의 감정을 거둔다. 이는 민족의 화합을 의미한다. 남과 북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 민족이기에 감정의 문제만 해결된다면 하나가 될 수 있다. 아니, 그렇게 여겼다. 하지만 오랜 분단으로 인해 그 상황은 뒤틀리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격차가 벌어졌고 정권에 있어 거리가 멀어졌다. 남한이 투표를 통한 자유민주주의인 반면, 북한은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사실상 김씨 정권의 세습으로 권력이 유지된다. 또 전쟁 이후 세대는 통일을 원하지 않으며 한 민족이란 의식이 약하다. 결국 현재까지도 이 ‘장마’는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다. 언젠가 끝날 것이라 여겼던 과거를 살아온 이들의 예측과 다르게 말이다.

 

‘장마’는 한국전쟁의 아픔을 한 가족을 통해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문화의 특징을 담으면서 갈등의 구조를 밀도 있게 이끌어 간다. 여기에 전기적인 요소를 통해 판타지의 면모도 선보인다. 아쉬운 점은 이 작품이 보여준 주제의식, 비가 그치면 해가 뜬다는 희망이 이제는 어렵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흐린 날은 계속될 수 있음을, 그래서 해가 뜨지 않는 날을 일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음에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 작가 윤흥길  © 나무위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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