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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난민 문제’를 말하다

[프리뷰] '트랜짓' / 7월 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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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6-25 [16:33]

▲ '트랜짓' 런칭 포스터     ©엠엔엠인터내셔널(주)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세계 2차 대전 당시 유럽 사람들은 전쟁을 피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현재 유럽은 난민 문제에 봉착해 있다. 이란의 봄과 시리아 내전 등 중동 내에서의 문제는 수많은 피난민을 만들어 냈고, 이들은 유럽을 향하고 있다. 유럽의 난민 문제는 그들 과거와의 만남이다. ‘트랜짓’은 세계 2차 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시대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 문제가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게오르그는 프랑스 파리가 독일군에 의해 점령됨에 따라 항구도시 마르세유로 향하기로 한다. 그는 마르세유를 향하기 전, 작가 바이델에게 편지를 전해주기 위해 그가 묵는 호텔을 향한다. 바이델은 시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자살을 택했고, 게오르그는 바이델에게 남겨진 편지와 그의 마지막 원고를 들고 기차에 오른다. 작품 속 독일군은 ‘대청소’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대청소는 인종을 의미한다.

 

▲ '트랜짓' 스틸컷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게오르그를 비롯해 비자를 지니지 않은 난민들은 미국이나 멕시코로 도망가는 방법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마르세유에는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줄을 선 이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비자 발급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게오르그는 바이델의 원고를 전해주고 돈을 받을 생각이다. 그런데 멕시코 대사관은 게오르그를 바이델로 착각해 비자를 발급해 준다. 게오르그는 생존을 위해 바이델이 되고자 한다.

 

작품은 정체성과 관계를 통해 난민에 대해 말한다. 난민 문제의 접근은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그 첫 번째가 정체성이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처럼 난민은 다른 국가에 소속되는 순간 자신이 지닌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게오르그가 난민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바이델이 되어야만 한다. 앞서 그는 기차 안에서 바이델의 원고를 읽으며 모국어와 마주하는 특별한 순간을 경험한다.

 

언어는 민족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그만큼 정체성은 개인에게 중요한 요소다. 중동에서 이주 온 난민들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유럽의 정체성 사이에서 충돌을 겪는다. 그들의 이슬람 문화는 이질적이다. 특히 테러단체에 의해 이슬람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이 자리 잡으며 히잡 등 전통문화에 대한 반감이 자리 잡기도 한다. 이는 앞서 이민의 문제를 겪었던 유럽이기에 깊은 생각을 품게 만드는 문제다.

 

▲ '트랜짓' 스틸컷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두 번째는 가족이다.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경우도 탈북자 문제를 겪고 있다. 이 탈북자는 가족까지 모두 국경을 넘어올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국경을 넘지만 남겨진 이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게오르그가 마르세유로 올 때, 그는 상처 입은 동료와 함께 기차에 탔다. 하지만 동료는 죽게 되고, 게오르그는 그 사실을 동료의 가족에게 알린다. 이 과정에서 동료의 아들 드리스는 게오르그를 마치 아버지처럼 따른다.

 

게오르그에게는 비자가 있지만 드리스의 가족에게는 없다. 드리스는 게오르그가 아버지를 대신해 곁에 남아줬으면 하지만 그는 새로운 미래를 위해 떠나야만 한다. 난민은 가족 모두를 데려올 수 없기에 문제를 겪는다.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슬픔과 고통, 죄책감이 그들에게 남아있다. 게오르그는 아버지를 원하는 드리스에게 그 역할을 해줄 수 없는 선택을 한 현실에 갈등을 겪는다.

 

세 번째는 필요성이다. 이 필요성을 게오르그가 자신을 바이델로 아는 미국 대사와의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미국 대사는 작가인 바이델(게오르그)에게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서 이 이야기를 글로 남길 거냐고 묻는다. 이 질문에 게오르그는 글짓기 숙제 이야기를 한다. 학창시절 체험이나 경험을 하면 글짓기 숙제를 했다. 그는 글을 써야 하기에 체험을 한 기분이었다며 다시는 그 숙제를 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이는 시대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난민에게는 자신의 고통과 조국의 비극적인 상황을 알릴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자신의 미래세대가 행복할 수 있는 조국의 평안과 안정이다. 게오르그가 미스테리한 여인 마리를 만나게 되는 것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마르세유에 도착한 순간부터 마리는 게오르그와 계속 우연히 마주친다. 마리는 누군가를 찾아다니고, 게오르그는 마치 그 존재가 자신인 듯 싶다.

 

▲ '트랜짓' 스틸컷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마리와 게오르그가 서로를 인식하는 이유는 동질감에 있다. 두 사람은 모두 마음에 죄책감과 고독 그리고 슬픔을 품고 있다. 마리에게는 남편을 혼자 두고 미국으로 떠나려 했다는 점이, 게오르그에게는 드리스의 아버지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점이 죄책감으로 남는다. 때문에 두 사람은 유럽을 떠나기 힘들다. 이 과정은 지지부진한 전개로 다소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지만 시대의 양심과 필요성에 고민하는 이들의 모습을 심도 있게 담아낸다.

 

영화는 현대의 무장경찰 같은 복장의 독일군과 자동차를 통해 세계 2차 대전 당시라는 시대성을 흐리게 만든다. 이는 난민의 문제를 과거에 두지 않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장르에 SF가 포함된다. 동시에 영화는 유럽에서 난민의 문제가 있었듯 미래에는 세계 어디에서 난민 문제가 발생할지 알 수 없음을 암시하며 난민 문제가 지닌 본질을 바라봐야 된다는 목소리를 전한다.

 

‘트랜짓’은 난민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볼 때, 작품 속 캐릭터들의 행동과 선택을 이해할 수 있는 영화다. 특히 일제강점기로 인해 전 세계에 우리 동포가 퍼져 있는, 분단의 역사로 탈북자 문제를 겪는 우리에게 진중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기도 하다. 난민 문제는 특정한 시대와 국가가 겪는 현상이 아님을 말하며 그 근본적인 뿌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함을 작품은 보여준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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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획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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