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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뒤처진 남성 판타지

[프리뷰] '시,나리오' / 7월 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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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6-26 [11:49]

▲ '시, 나리오' 메인 포스터     ©노바이앤티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문근영 주연의 ‘유리정원’을 보러 갔을 때의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으로 봤기에 같이 간 후배 역시 좋게 봤다고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후배는 영화의 이야기에 화를 냈다. 몰래 주인공 재연의 삶을 훔쳐보는 지훈의 모습이 기분 나쁜 스토킹이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숲 속 유리정원에서 자연과 교감하는 재연을 바라보는 지훈의 모습이 아름답고 감성적으로 보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범죄로 비춰진다.

 

여성의 ‘아니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며 집착하는 남성의 모습은 보기 유쾌한 모습은 아니다. 이는 사회적인 현상에서는 데이트 폭력과도 연결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런 남성의 집착이 여성의 마음을 열고 사랑으로 이어지는 지점은 어찌 보면 ‘신데렐라 스토리’ 못지않은 남성 판타지에 해당한다. ‘시,나리오’는 이런 시대에 뒤처진 남성 판타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는 3가지 지점을 통해 이런 판타지를 보여준다. 9년째 시나리오를 쓰지 못해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영화감독 경태는 4년 반을 동거한 여자친구 다운과 헤어진다. 경태의 모습을 보다 견디지 못한 다운이 이별을 선언한 것이다. 이에 경태는 시를 쓴다. 마치 예술적인 영감을 위해 뮤즈를 찾아 나서는 예술가처럼 다운의 집 앞에 천막을 치고, 그녀를 계속 따라다니며 말이다.

 

경태는 계속해서 반감을 표하는 다운을 쫓아다닌다. 택배인 척 속이고 집안에 들어가려고 하는가 하면, 마트에서도 따라온다. 만약 다운이 미련이 남았거나 경태가 먼저 이별을 고했다면 이 상황이 남성 판타지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가 완강하게 반감을 표함에도 남자가 적극적으로 들이대면 결국 마음이 풀릴 수밖에 없다는 환상은 경태를 남의 집 근처에 텐트를 치고 노숙하는 집착남으로 만든다.

 

▲ '시,나리오' 스틸컷  © 노바이앤티

 

첫 번째 판타지 이후 이어지는 두 번째 판타지는 다운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이뤄진다. 다운에게 호감이 있는 인디가수 율과 다운의 친구 해림은 둘 다 경태에게 호감을 표한다. 율은 시를 쓴다는 경태에게 빠져들고 자신을 형이라 부르며 따르는 그를 좋아한다. 분명 율은 다운에게 호감이 있는데 오히려 경태에게 더 마음이 있는 듯하다. 경태에게 반감을 보이는 다운을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 보면 말이다.

 

이는 다운의 절친 해림 역시 마찬가지다. 해림은 스토커처럼 다운에게 들러붙는 경태보다 그런 경태를 받아들이지 않는 다운에게 더 불만이다. 율과 해림은 다운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다. 경태처럼 좋은 사람의 마음을 왜 받아주지 않는지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한다. 다운이 달라붙는 경태에게 격렬하게 반응할수록 두 사람은 더 경태의 편에 선다. 이는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점을 주변 사람들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남성 판타지의 발현이라 볼 수 있다.

 

너에게 달라붙는 내가 이상한 게 아닌, 나처럼 좋은 사람을 거부하는 네가 이상한 거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영화는 세 번째 판타지를 보여준다. 열 번 찍어 넘어간 나무다. 이미 경태는 모든 이의 마음에 쏙 드는 좋은 사람이고 스토킹은 열정적인 사랑의 표현인데 여기서 더 저항해 봤자 여주인공인 다운의 이미지만 이상해진다. 무조건 여자에게 적극적으로 들이대면 떠나간 마음도 돌아온다는 판타지를 이 영화는 실현시킨다.

 

▲ '시,나리오' 스틸컷  © 노바이앤티

 

제목인 ‘시,나리오’는 감독인 경태가 시나리오 대신 시를 쓴다는 의미에서 나왔다. 시는 감정을 말한다. 단편적인 감정을 보여주는 문학인 시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다. 시나리오는 이야기다. 사랑에 있어 시나리오는 추억이 담긴 감정의 흐름이다. 경태는 시를 통해 감정을 말하고자 하고, 다운은 경태가 다시 시나리오를 쓰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완성시켰으면 한다.

 

이런 작품의 의미를 바라볼 때 경태와 다운의 관계는 아름다움을 지니지만 그 표현에 있어 지나친 남성 판타지는 아쉬움을 남긴다. 김동원 감독은 전작 ‘꼭 껴안고 눈물 핑’에서도 불륜을 로맨스로 포장한 적이 있다. 비슷한 소재의 작품들이 그런 점을 염려해 영화 안에서도 인물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집어넣고자 노력하는 반면 김동원 감독은 자신이 주고자 하는 감정에만 몰입한다. 불륜이나 스토킹을 넣지만 이에 대한 인식을 배제한다.

 

내가 프로 불편러일 수 있다. 경태의 간절함과 다운이 품은 여운을 알아채지 못하고 외적인 부분에만 집착했을 수도 있고 말이다. 영화를 보다 어떤 지점이 거슬리다 보면 그 부분 때문에 다른 긍정적인 면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기 마련이다. 그것이 개연성일 수 있고 섬세하지 못한 시선일 수 있다. 이 영화의 남성 판타지는 아름다운 시도, 흥미로운 시나리오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아쉬움을 보여준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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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획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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