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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의 사회적 합의

'히어로'란 호칭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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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6-30 [16:16]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히어로는 무엇일까. 수많은 히어로 영화가 보여주는 히어로의 모습은 악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빌런으로 지칭되는 악은 세상을 멸망시킨다거나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때문에 히어로 영화는 강한 이분법을 보여준다. 히어로에게는 오직 선이, 빌런에게는 악만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히어로의 호칭에는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모든 이들이 영웅이 될 수 없고, 또 영웅이 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매스컴은 히어로를 찾아 나선다. 세상은 존경을 받고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멘토란 존재를 추구한다. 때문에 매스컴은 히어로를 찾지 못한다면 만들고자 한다. 우리 시대의 영웅이라 여겼던 이들의 추악한 민낯이 밝혀지는 순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히어로의 세계관은 DC 코믹스의 세계관처럼 심오하다.

 

외계인이 아닌 인간의 형상을 한 이상 사고와 성장, 고통과 행복을 반복적으로 겪으며, 이 과정에서 변화의 모습을 보인다. 마블 코믹스의 캡틴 아메리카처럼 굳건한 정신으로 정의를 지키는 히어로도 있는 반면 자신의 정체성에 끊임없이 반문하는 히어로도 존재한다. 동시에 히어로를 받아들이는 대중 역시 몇 가지 점에서 히어로의 존재에 대해 합의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이 합의에 해당하지 못하는 존재는 설사 영웅적인 면모를 보인다 하더라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히어로가 될 수 없다.

 

▲ '코드8'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이 합의는 세 가지 측면을 따른다. 첫 번째는 두려움이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존재는 절대 히어로가 될 수 없다. 넷플릭스 영화로 개봉을 앞두고 있는 ‘코드8’에는 특수 인간이란 초능력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과거 미국의 발전을 이끈 영웅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힘으로 만든 기계와 문명이 역할을 대신하면서 특수 인간들은 탄압 당한다. 그 탄압의 이유는 그들이 지닌 능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이는 히어로가 능력에서 비롯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 개인의 성향이나 행동과 달리 사회적으로 두려움을 유발하는 존재는 배척당한다. 트로마 엔터테인먼트사의 전설적인 컬트 호러 히어로물 ‘톡식 어벤저’의 히어로 역시 마찬가지다. 트로마빌 헬스클럽에서 일하는 나약한 멜빌은 이 타락한 도시의 젊은이들에 의해 조롱당하던 중 화학약품이 든 드럼통에 빠져 ‘톡식 어벤저’가 된다.

 

시작은 자신을 괴롭힌 이들에 대한 복수였지만, 그가 지닌 정의감과 트로마빌을 향한 악당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점점 히어로의 면모를 지닌다. 하지만 톡식 어벤저에게는 온전한 히어로로 인정받을 수 없는 큰 약점이 있다. 사람들이 그에게 느끼는 두려움이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할 땐 톡식 어벤저에게 기대지만, 악당과 싸우면서 역한 모습을 보일 때는 그 역겨움을 숨임 없이 표한다.

 

때문에 톡식 어벤저는 음지의 영웅에 위치한다. 그는 대중의 환영을 받지 못하고 그들과 어울려 살아가지 못한다. 오직 필요에 따라 그 가치가 조정된다. 그와 사랑에 빠지는 여성이 장님이란 점도 이를 의미한다. 외형을 볼 수 없기에 톡식 어벤저가 지닌 정의감과 강인함에만 여자는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생각하는 히어로는 빌런과 달리 두려움을 유발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가미된다.

 

▲ '엑스맨: 아포칼립스' 스틸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두 번째는 국가의 방향성이다. 히어로가 되고 싶어도 국가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자력구제가 금지되고 자기방어권이 소극적인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 시민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조폭이나 양아치를 상대로 폭력에서 남을 구해내는 건 힘든 일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엑스맨’이다. ‘엑스맨’이라 일컬어지는 돌연변이들은 국가에 의해 탄압을 당한다. 누군가는 돌연변이로 태어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지만 국가는 공포와 혐오를 이유로 압박을 멈추지 않는다.

 

프로페서X는 돌연변이와 인간의 공존을 위해 인간이 할 수 없는 일과 그들에게 닥친 위기를 돌연변이의 힘으로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엑스맨이 인간에게 필요한 존재란 걸 강조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런 엑스맨의 모습은 한 번의 임무 실패 혹은 엑스맨의 폭주와 변절로 쌓아놓은 신뢰가 단번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차라리 매그니토처럼 돌연변이가 지배하는 세상이 더 이롭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말이다.

 

그런 점에서 ‘캑 애스: 영웅의 탄생’의 데이브가 지닌 고민 역시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다. 여느 소년들처럼 히어로물에 심취한 데이브는 ‘세상은 영웅을 필요로 하는데 왜 아무도 슈퍼히어로가 되려고 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품는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국가가 히어로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를 장악한 마약 거래단에 의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며, 아내를 잃게 된 경찰 데이먼은 딸 민디를 슈퍼히어로로 훈련시킨다.

 

▲ '브이 포 벤데타' 스틸컷  © 워너 브라더스

 

하지만 민디(힛-걸)은 히어로로 인정받을 수 없다. 배트맨이나 슈퍼맨처럼 국가가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도 내부고발자라는 기업이나 단체의 잘못을 고발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들은 히어로로 인정받지 못한다. 경우에 따라서 국가기관이 그들의 외침을 묻어버리기 때문이다. 어쩌면 고담시가 악에 빠진 도시임에도 가능성을 보이는 이유는 경찰이 배트맨이란 영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암울함은 국가 또는 도시의 방향성 자체가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오히려 히어로란 존재를 죽이는 환경에 있다. 거대 카르텔의 등장이나 부패한 공권력은 히어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브이 포 벤데타’의 ‘V’가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는 히어로가 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국가를 뒤엎고 국민들을 위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히어로는 사람들의 염원과 특별한 능력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국가가 원하고 그 보호 하에 있을 때에만, 국가의 방향성에 따라 임무를 수행할 때만 히어로만 명칭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국가를 바꾸는 과정에서 히어로가 주축이 된다면 이는 또 다른 억압과 독재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때문에 ‘V’는 스스로의 존재를 지워버린다. 히어로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를 필요로 하는 국가와 방향성이 요구된다.

 

▲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세 번째는 집단의 구성이다. 요즘 히어로물은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DCU(DC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대립이라 할 만큼 히어로들이 뭉쳐 다닌다. 마블 히어로들의 집합인 ‘어벤져스’와 DC히어로들의 집합인 ‘저스티스 리그’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히어로들이 이렇게 뭉치는 이유는 적이 강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혼자서도 엄청난 성장과 힘으로 강적을 이겨왔던 이들인데 뭣 땜에 귀찮게 서로 뭉치겠나.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히어로의 집단구성은 더 큰 시너지를 가져오고 세계관과 관계성을 넓히며 높은 수익을 누릴 수 있다. 여기에 히어로의 입장에서 봤을 때 집단은 그들 역시 한 명의 인간임을 보여준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혼자 극복할 수 있는 위기도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위기도 분명 존재한다. 이는 히어로가 인간의 속성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히어로의 생김새는 인간에 가깝다. ‘어벤져스’와 ‘저스티스 리그’를 이끄는 리더 역시 가장 이상적인 인간에 생김새에 가까운 이들이다. 여기에 고민과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동을 택하는 모습은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이 지금의 문명을 이륙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사회화와 집단화 역시 이들에게 포함될 속성이다. 두려움을 감소시킬 요소는 동질성이다. 자신과 비슷하다 여기는 대상에게 인간은 친근함을 느낀다. 우리가 처음 만나는 상대에게 대화를 통해 공통된 관심사를 발견하려는 건 이런 속성에서 비롯된다.

 

현대의 히어로는 더 인간적인 형태에 가까워진다. 배트맨과 슈퍼맨은 정체성에 고민을 품고 ‘어벤져스’는 내부에서 분열을 겪으며,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의 우정처럼 서로를 통해 성장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은 할리우드 히어로의 공식화가 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지 보여준다. 히어로란 명칭에도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함을, 이를 통해 우리가 히어로가 부를 수 있는 인물이 영화 속에 자리 잡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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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획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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