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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갈망하는 타인의 '옆얼굴' [24th BIFAN]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영화 '옆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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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7-10 [23:59]

▲ '옆얼굴' 포스터  ©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よこがお’는 ‘옆얼굴’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이 단어는 비유적으로 사람의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일면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모니움’으로 칸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주목받은 후카다 코지 감독의 이 영화는 영제 ‘A Girl Missing’이 의미하듯 한 소녀의 실종을 통해 각 인물들의 또 다른 얼굴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가정간호사 이치코는 오이시 가족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화가이기도 한 가족의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오는 그녀는 자신처럼 가정간호사를 꿈꾸는 첫째 모토코의 공부를 도와준다. 언니를 따라 둘째 사키 역시 옆에서 공부한다. 이치코는 이들 가족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이 유대관계에 흠집이 가기 시작한 건 두 가지 사건을 통해서다. 첫 번째는 이치코가 좋아하는 카즈미치라는 남자가 모토코의 애인이란 점이다.

 

이치코는 죽은 남편과 이름이 똑같다며 카즈미치에게 머리를 맡기게 된다. 이 일을 인연으로 두 사람은 서로를 알게 된다. 다만 이치코의 이 말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 이치코의 집이 카즈미치의 집 건너편에 있다는 점, 위층에서 그녀가 카즈미치를 보고 있었다는 점은, 어쩌면 거짓으로 남편을 죽이고 그에게 머리를 맡겼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만든다. 이치코가 카즈미치와 만나는 장면 역시 과장된 지점이 종종 나타나며 이것이 환상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힘들게 만든다.

 

▲ '옆얼굴' 스틸컷  ©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카즈미치를 향한 이치코의 욕망은 모토코로 인해 무너진다. 그녀가 개 짖는 소리를 흉내 내는 장면이나 개처럼 네 발로 기어 모토코를 공격하는 환영은 강한 욕망을 보여주지만 이룰 수 없다는 한계를 동시에 지닌다. 때문에 이치코는 방문 의사인 켄지와 약혼한다. 모토코로 인해 카즈미치에게 손을 뗀 것이다. 이런 이치코의 욕망은 남들이 알 수 없는 그녀의 얼굴이다. 겉보기에 이치코는 순하고 착하며 조용한 여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사키의 실종이다. 사키는 실종 후 경찰에 의해 구조되지만, 흉흉한 소문에 휩싸인다. 그녀를 납치한 남자에 의해 강간당했다는 소문이다. 때문에 사키는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이치코는 충격적인 진실에 직면한다. 사키를 납치한 사람이, 자신이 책을 가져다 달라고 한 조카 타츠오라는 점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치코는 나중에 문제가 될까봐 오이시 부인에게 사실을 말하려고 한다.

 

그런 이치코를 말리는 건 모토코다. 모토코는 이치코와 계속 함께하고 싶다며 사실을 말하지 말아 달라 부탁한다. 그날 타츠오를 본 건 모토코 뿐이기 때문에 자신이 입을 다물면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라 말한다. 그렇게 이치코는 영원히 진실이 파묻힐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기자한테 전화가 걸려오며 그녀의 인생은 바뀌게 된다. 인터뷰를 거절한 이치코는 다음 날 간호사가 납치대상을 수색했다는 자극적인 기사를 보게 된다.

 

▲ '옆얼굴' 스틸컷  ©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우리는 누구나 어떤 사람의 옆얼굴만 본다. 얼굴 전체를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가리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그 사람의 바라보고 싶은 모습만을 보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은 욕망이다. 내가 원하는 모습만을 남이 지니길 원한다. 작품은 이런 옆얼굴의 욕망을 세 가지 장면과 소재를 통해 풀어낸다. 첫 번째는 오이시 가의 할머니다. 할머니는 복부에 종양이 생겨 마치 임산부처럼 배가 부풀어 올랐다.

 

할머니는 자신의 배를 만지며 이것이 아기면 좋겠다고 말한다. 종양은 죽음을 의미하고, 아기는 새로운 생명을 말한다. 부풀어 오른 배는 같지만 그 방향에 따라 희극과 비극이 갈린다. 할머니의 방은 사키가 실종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클래식 음악 속 고요함을 이룬다. 이는 가족이 죽음을 앞둔 할머니에게만은 좋은 기억만 간직한 채 떠나게 해주고 싶음을 보여준다. 긍정의 옆얼굴만 간직한 채 떠나게 하고 싶은 것이다.

 

두 번째는 카즈미치와 만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이치코의 환상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그녀의 상황 또는 모토코와의 추억과 유사점을 지니기 때문이다. 동물원 장면을 예로 들자면 이치코는 모토코와 동물원에 놀러가 코뿔소를 본다. 이때 이치코는 타츠오가 어린 시절 발기를 했을 때 호기심에 바지를 벗긴 이야기를 한다. 그녀가 카즈미치와 동물원에서 만나는 장면에서는 코뿔소를 보며 과거 코뿔소가 발기한 걸 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 '옆얼굴' 스틸컷  ©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카즈미치와 모토코가 연인 사이라는 점에서 이치코는 모토코가 되어 감정을 이입했을지 모른다. 미술관 장면에서 이치코는 모토코의 할머니 그림을 가방에 가지고 있고, 그녀가 돌아가셨다는 카즈미치의 말에 눈물을 흘린다. 마치 모토코가 된 듯이 감정을 이입해서 말이다. 클럽에서 춤을 추던 이치코가 카즈미치와 만난 후 정사를 나누다 갑자기 그 장소가 장롱이고 문이 열리는 장면은, 과거 모토코가 말했던 장면과 일치한다.

 

때문에 이치코와 카즈미치의 추억은 현실이기보다는 이치코의 욕망이 투영된 환상이 일부 섞여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치코가 바라보는 카즈미치는 현실 속 존재가 아닌 그녀가 바라보는 얼굴의 일부다. 그녀는 이 옆얼굴을 바탕으로 상상을 하며, 그 안에서 카즈미치라는 존재를 만들어낸다. 모토코가 멀리서 카즈미치를 바라보기만 했다는 점에서 행복을 위한 욕망이 거짓을 꾸며냈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기자다. 기자는 한 사람의 옆얼굴만을 필요로 한다.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얼굴 말이다. 그들은 이치코와 오이시 가족의 유대관계, 이치코에게 닥친 우연한 상황에는 집중하지 않는다. 이치코가 범인 타츠오의 조카라는 점만 부각한다. 일본 사람들이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연좌제에 있다. 일본 매스컴은 사건이 발생하면 그 가족이나 친구를 찾아가 인터뷰를 한다.

 

어린 시절 알아 듣지도 못하는 NHK 방송을 보다 큰 충격을 받았는데, 그 장면은 한 여학생이 살해당했다는 소식과 그 살인범의 어머니를 기자들이 둘러싸고 취재하는 장면이었다. 살인범의 어머니는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일본어인 すみません(스미마셍, 미안합니다)을 연발하며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일본영화 ‘아무도 지켜주지 않아’를 보면 기자들은 사건이 발생하자 가해자 가족에게로 간다.

 

때문에 경찰은 가해자 가족을 지켜야만 한다. 기자에 의해, 신상정보를 파는 네티즌들에 의해 자살이나 살인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부정적인 옆얼굴만 조명하기에 이치코는 주변에서 멸시를 받게 된다. 주변 사람들은 기자들이 조명하는 그 얼굴이 이치코의 일부라는 걸 모르고, 그것이 가려진 실체라 여긴다. 착하고 순한 모습 역시 옆얼굴이란 걸 그들은 알지 못한다. 기자는 남의 불행이란 옆얼굴을 통해 자신의 행복이란 옆얼굴을 얻는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타인의 옆얼굴을 바라보려는 걸까. 그건 욕망 때문이라고 본다. 사회 속에서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은 혼자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 타인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때에만 진정한 행복을 찾는다. 예를 들어 내가 명예나 부를 얻더라도, 타인과의 비교나 부러움을 얻지 못한다면 이것이 행복인지 알지 못한다. 내 행복은 타인의 옆얼굴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

 

▲ '옆얼굴' 스틸컷  ©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이치코가 카즈미치에게 품었던 욕망처럼, 모토코는 이치코에게 욕망을 품는다. 욕망은 아이러니하게도 상대가 나보다 행복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이 담겨있다. 그 대상은 나를 통해서만 행복해야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영화 ‘밀양’이다. 이 작품에서 신애는 자신의 아이를 납치해 죽인 도섭을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하고자 한다. 하지만 도섭이 자신은 이미 주에게 용서받았다고 말하자 분노에 휩싸인다.

 

신애에게 도섭은 자신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아야 한다. 도섭이 자신에게 잘못을 했기 때문이다. 신애에게는 도섭을 용서해주고 도섭의 고마움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이 욕망이 충족되지 못한 순간, 신애는 불행해진다. 모토코의 불행도 이런 욕망에서 비롯된다. 모토코는 이치코의 행복이 자신에게서 비롯되길 원한다. 그녀가 타츠오와 이치코의 관계를 숨겨주는 것. 이것에 이치코가 감사함을 느끼고 자신을 따라주길 원한다.

 

하지만 모토코에 의해 자신의 행복(카즈미치에 대한 애정)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이치코는 온전히 모토코에게 애정을 품을 수 없다. 모토코 때문에 실패한 행복으로 이치코가 택한 켄지와의 약혼은 모토코의 분노를 이끌어낸다. 모토코는 자신으로 인해 이치코가 행복해지길 원한다. 때문에 그녀에게 켄지는 방해꾼이다. 마치 신애가 자신만의 하나님이라 여겼는데 도섭에게도 하나님이란 걸 알았을 때 여겼던 분노와 같은 감정을 보여준다.

 

‘옆얼굴’은 한 사건을 통해 각자의 반대편 옆얼굴을 바라본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행복을 어디서 찾는 걸까. 그 대상이 타인이라면 혹시 그 사람의 옆얼굴만 바라보며 다른 모습이 없길 바라는 게 아닐까. 욕망 속에서 행복을 찾는 건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타인을 통한 충족감은 온전히 채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온전한 개인을 말하지만 우리 자체가 온전히 상대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게 아닐지, 자신의 숨겨진 이면에 타인을 맞춰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지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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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획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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