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없는 ‘브이 포 벤데타’가 성공한 이유

한국 영화여, ‘사이다’를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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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기사입력 2019-05-01 [20:44]

  

▲ 브이 포 벤데타 포스터     © 워너 브라더스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18대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되었다. 2016년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최순실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논란은 드레스덴 연설문이라는 대통령 연설문이 아무런 직위도 전문성도 없는 최순실에게 미리 유출되었다는 일명 ‘드레스덴 연설문 보도’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점화되었다. 미르와 K스포츠 재단, 각종 권한남용과 헌법 위반에 꾸준히 자리를 지켜오던 세월호 사태까지 합쳐져 온 국민으로 하여금 대통령에게 진실을 요구하게 했다. 대통령의 해명과 진실에 대한 요구는 성의 없는 사과와 해명에 실망하여 하야 요구로 변했고 마침내는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했다. 누적 시위 인구 1000만 명에 육박하는 촛불 시위는 길고 긴 싸움 끝에 마침내 2017년 3월 10일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냈다.

 

광화문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촛불을 들던 시민들은 모두 자신이 역사의 현장에 서있다는 생각을 한 번쯤 했을 것이다. 4.19혁명, 6.25전쟁, 연이은 군부 쿠데타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항쟁 등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가 한국 영화계에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고 있듯이 한국의 2016년~2017년 또한 언젠가 한국 영화계에서 하나의 소재, 혹은 그를 넘어 장르가 될 것이다. 그때 한국 영화는 어떤 방향으로 이 사건을 그려내야 하는가? 좀 더 나아가서, 한국의 정치 영화는 어떤 영화가 되어야 하는가? 2015년부터 2017년 초까지 한국 영화는 말 그대로 사회 풍자 영화의 전성기였다. 더 킹과 같이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담고 사회 문제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런 영화들이 한국 정치 영화의 지향점이 될 수 있을까? 관객에게 사이다를 선사하고 싶다는 욕망과 과도한 웃음 포인트가 뒤섞여 오히려 현실의 문제를 가볍게 만들고, 정작 문제의 본질은 ‘사이다’에 가려 보지 못 하게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한국 정치 영화가 갈 길을 잃고 코미디와 사회 풍자의 어중간한 혼합물이 되어갈 때, 지향점이 되어줄만한 영화가 있다. 10년도 더 전에 개봉한 제임스 맥티그 감독의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이다. 영화는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2040년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정부 지도자와 피부색, 성적 취향, 정치적 성향이 다른 이들은 ‘정신집중 캠프’로 끌려간 후 사라지고 거리 곳곳에 카메라와 녹음 장치가 설치되어 모든 이들이 통제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평온한 삶을 유지한다. 이러한 영국 사회에서 생체 실험의 부작용으로 초인적인 힘을 얻게 된 V가 주인공 ‘이비’와 함께 영국 사회에 혁명의 불씨를 당기고, 점차 시민들도 V와 뜻을 함께 하게 된다. 결국 V는 죽음을 맞지만 그의 계획대로 폭탄을 실은 전철이 국회의사당에 도착하며 국회의사당이 폭파된다.

 

브이 포 벤데타는 무거운 메시지를 무겁게 그려내고 있는 영화다. 영화에는 웃음 포인트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며, 방송국에서 일하는 주인공의 친구가 정부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프로그램이 우습게 보이기는 하지만 곧 경찰들이 들이닥치면서 다시 영화는 어두운 분위기로 전환된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V의 얼굴은 끝내 등장하지 않으며 그는 가면을 벗지 않고 오직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또 다른 주인공인 여성 ‘이비’와 ‘V’ 사이의 러브라인도 없다.

  

 

▲ 브이 포 벤데타 스틸컷     © 워너 브라더스



최근 유행하는 한국 영화의 기준에 비추어 보자면, 그리고 대부분의 인기 있는 영화와 비교하자면 흥행 포인트가 지극히 부족한 영화다. 그러나 브이 포 벤데타는 개봉한지 10년이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수작으로 평가받으며, 브이 포 벤데타를 감상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영화를 명작으로 평가하는 데 이견이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브이 포 벤데타가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 때문이다. 그리고 메시지에 대한 집중도와 하나의 메시지를 위해 흘러가는 영화의 밀도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과 줄거리, 인물들의 설정과 소극적이던 이비가 적극적으로 혁명의 물결에 동참하게 되는 변화하는 모습까지. 브이 포 벤데타의 모든 배경과 설정, 인물이 공통된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모든 메시지를 압축하고 있는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라는 V의 대사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여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코미디 정치 영화가 결코 저급한 영화는 아니다. 관객에게 ‘사이다’를 선사하는 영화를 진중하지 않다고 평가절하하려는 의도 역시 아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정치와 현실 비판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영화들을 살펴보자면, 코미디가 들어가 있지 않은 영화를 찾기 어렵고, ‘사이다’를 목적으로 흘러가는 영화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영화의 장치들이 결국 더 중요한 메시지를 희석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결국 코미디 영화로 흘러갈 것인가, 사이다 영화로 흘러갈 것인가. 혹은 영화의 본질에 좀 더 집중할 것인가. 선택은 감독의 몫이다. 그리고 평가를 하고 좋은 영화를 선택하는 것은, 촛불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몫이다.

 

[씨네리와인드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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