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걸헤이트'이지만 여적여가 아니다 ①

Girl Hate (おんなのこきら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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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령
기사입력 2019-05-04 [12:30]

▲ Girl Hate (おんなのこきらい, 2015) 공식 포스터     ©SPOTTED PRODUCTIONS

 

 "귀여운 외모의 소유자인 키리코는 언제나 여자들에게 미움받는 존재다. 회사 동료들은 그녀를 대놓고 시기하며, 심지어는 사랑하는 남자를 빼앗으려는 라이벌도 등장하는데!?"

 몇 년 전에 예고편을 봤을 때는 뻔한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영화 한 편이 또 나왔다고 생각했다. 여자들은 협동심이 없고 서로를 질투하기 급급하며, 예쁘고 잘난 여자가 있으면 부당하게 따돌린다는 획일화된 젠더 프레임을 필자는 혐오하기에 영화를 굳이 찾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 예고편이 영화 본편의 매력을 담지 못해 작품이 저평가되었다는 후기를 우연히 읽고는 부랴부랴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여적여를 다루고 있는 건 맞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불쾌하지 않다. 영화를 보고 나면 주인공 키리코가 '여적여 사회의 희생양이 된 가여운 미녀'로 기억되는 게 아니라 '잠시 방황 중이기는 하지만, 우리와 다를 거 없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 머릿속에 남는다.

 

귀여운 케이크를 먹는 귀여운 주인공의 정신세계

▲ 폭식하는 주인공 키리코     © SPOTTED PRODUCTIONS

 

 "초콜릿, 아이스크림, 마카롱, 케이크... 귀여운 건 몸속에서 녹아서 나의 일부가 되어야 해."

 영화 첫 장면에 나오는 키리코의 대사다. '내가 먹는 건 곧 내가 된다'라는 식생활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명언이 떠오른다. 귀여운 디저트를 먹으면 나까지 귀여워질 거라니, 남다르고 엉뚱한 발상을 한다는 점에서 그녀가 기존의 여적여 캐릭터와는 다른 매력을 지녔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이 장면에서 주목할 건 키리코의 귀여움에 대한 집착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안한 정서다. 키리코는 많은 양의 디저트를 먹고는 곧바로 속에 있는 걸 게워낸다. 폭식증 환자는 정신없이 먹을 때 자신이 무엇을 얼마만큼 먹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카메라는 키리코의 시선을 보여주고자 디저트의 모습을 흐릿하고 난잡하게 잡는다. 영화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보다는 마음의 병을 앓는 키리코의 시선에서 세상을 담는다.

 

▲ (좌) 주인공 키리코, (우) 밴드 'PHENOTAS'의 보컬 MICO     © SPOTTED PRODUCTIONS


 영화에서는 밴드 'PHENOTAS'가 작곡한 주제가가 여러 번 삽입되면서 음악이 극을 이끌어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노래의 가사는 '여자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귀엽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해', '내가 귀신이 되어도 무섭다고 하지 말고 사랑해줄래?'라는 식으로 키리코의 마음을 대변한다. 밴드 멤버들은 카페 직원으로 분해서 디저트를 폭식하는 키리코 앞에서 연주를 하기도 하고, '키리코, 너에게는 어떤 장점이 있니?'하고 의미심장한 말을 직접 건네기도 한다. 영화는 음악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과 키리코의 정신세계를 교차시키면서 보여준다.

 

키리코가 세상에서 제일 귀여워야만 했던 이유

▲ 키리코와 유토     © SPOTTED PRODUCTIONS


 키리코는 단골 칵테일 바에서 일하는 유토를 사랑한다. 둘은 밤도 함께 보내는 사이지만 유토는 키리코에게 확실하게 사귀자고 말하지 않는다. 게다가 유토와 어린 알바생 사이에는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키리코는 유토가 자신을 떠나가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한다. 키리코가 유토에게 왜 요즘 연락이 뜸하냐고 안절부절하며 묻는 장면은 애절함 그 자체다. 20대의 서투른 연애를 현실적으로 잘 그려냈다는 것도 이 작품이 수작이라고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다.

 

 결국 키리코는 어린 알바생에게 유토를 빼앗기고 만다. 현실을 미처 받아들이지 못한 키리코는 유토의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며 소리를 지른다.

 "내가 훨씬 더 귀엽고 내가 훨씬 더 오래 좋아했단 말이야!"

 영화에서 키리코가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은 '나는 귀엽잖아'이다. 이 말에 담긴 키리코의 마음은 무엇일까?

 

 예고편에서는 키리코는 회사에서 남성 동료들에게 귀엽다고 칭송받는 걸 즐긴다. 관객들은 영화 본편 역시 키리코가 그로 인해서 회사에서 여성 동료들의 시기와 음모에 시달리는 내용이 주된 내용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본편에서 그러한 내용은 곁가지에 불과하다. (실제로 여자들이 질투하는 장면은 예고편에서 보여준 게 다다)

 키리코는 이미 유토가 자신에게 마음이 떠났다는 사실을 눈치를 챘었다. 그렇지만 현실을 애써 부정하면서 나는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존재라는 걸 되새긴다. 남성들만 있는 식사 자리에 일부러 찾아가서 귀여운 척을 해서 귀염을 받고, 나중에 여성들로부터 '키리코 씨는 귀여우니까'하고 비아냥거리는 걸 듣는다. 이 모든 건 '나는 남들에게 공인된 귀여운 존재이므로 유토가 절대 나를 버릴 리가 없다'고 믿기 위한, 키리코에게 있어서 일종의 현실 도피 수단이다.

 

▲ 엉망이 된 키리코의 집     © SPOTTED PRODUCTIONS


  영화 중후반부는 실연한 키리코의 붕괴된 정신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키리코는 불안 증세를 보이다가 홧김에 가위로 머리카락을 막 잘라 버린다. 회사에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 폭식을 반복할 뿐이다. 유토에게 사랑받지 않게 되었기에 더 이상 외모가 귀여울 필요도 없고 밖에 나가서 남들에게 귀엽다고 인정받지 않아도 되는 거다.

 

 키리코가 폭식을 하다가 오열하는 장면은 롱테이크 기법으로 촬영되었는데 이때 카메라는 키리코의 뒷모습만을 담는다. 유토에게 사랑받기 위한 수단이었던 귀여운 얼굴에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키리코의 심리 상태가 반영된 거다.

 

 영화는 여적여를 다루고는 있지만 '여자라는 존재 자체가 질투가 많다'라는 젠더 프레임으로 상황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키리코는 기존의 여적여 영화에 나왔던 '수많은 남자들의 시선을 즐기는, 생각이 단순한 미녀'가 아니다. 키리코는 순수하게 유토의 사랑만을 갈구했으며 그가 떠나갈까 불안한 나머지 마음의 병을 앓게 되었다. 누구나 소중한 사람과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그 사람과의 이별을 두려워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거다. 키리코는 여성이냐 남성이냐를 떠나서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는 감정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인물이기에 우리는 그녀의 정신세계에 몰입할 수 있다.

 

 영화는 우리가 쉽게 여적여라고 치부하는 상황일지라도 인과관계를 획일화된 젠더 프레임만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한 영화의 본질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예고편이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온 거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예고편만 보고 진부한 여적여 영화를 예상했던 관객들은 여적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접했을 때 그 충격이 크게 다가왔지 않을까. 필자는 진부한 예고편이 있었기에 관객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여적여 상황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성장 과정에서도 남다른 방식을 취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후속 기사에서 다뤄보도록 하자.

 

 ②에서 계속

 

[씨네리와인드 김재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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