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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 않아도 찬실이는 복이 많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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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09-23 [11:07]

[씨네리와인드|정도의 리뷰어] 

 

"저요. 사는 게 진짜 궁금해졌어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표는 언제나 따라다니는 꼬리표 같다. 나이가 많든 적든 이 물음에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쩌면 이에 대해 깊이 고민할 틈도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 물음에 답을 찾는 과정이 어쩌면 사는 것일 수도 있고 죽을 때까지 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쉼 없이 이어지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당신들의 삶은 어떤지, 그 속에서 어떤 복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는지 넌지시 물으며 특별하지 않게 웃음과 위로의 메시지를 건네는 영화가 있다

 

▲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 찬란

 

영화 PD찬실은 한 감독과 오래도록 일을 해왔다. 이제 드디어 대박 날 영화에 착수하게 되었는데 갑작스러운 사고로 감독이 세상을 떠난다. 예기치 못한 사고에 슬퍼하기도 전에 실직을 하고 만 찬실. 그녀를 부르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전망만은 끝내주는 서울 귀퉁이에 겨우 방 한 칸을 마련하고 어떻게든 일어서야 한다는 생각에 친한 배우 소피의 집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시작한 찬실. 그 곳에서 자신 보다 한참 어린 영화 감독이자 소피의 불어 선생님인 김영을 만나게 된다. 집도 차도 남자도 없는 찬실에게 갑자기 닥친 차가운 현생에서 그녀는 어떤 것을 얻게 될까?

 

▲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 찬란

 

지금껏 영화를 해왔지만 누군가 뭐하는 사람이에요? 라고 물을 때면 저도 제가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어요.”라며 작아지는 그녀다. 마흔 살이 되도록 영화 한 길만을 걸은 찬실. 그것도 한 감독만의 영화를 했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우직하다고 칭찬하겠지만 그 결과에 따라 우직함은 미련함이 된다. 그녀의 우직함, 아니 미련함으로 인해 산동네 한 켠에서 인생을 다시 생각하는 순간을 맞이한 찬실을 혹자는 불쌍하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경쾌한 리듬 속에서 찬실을 결코 처량맞게 비추지 않는다. 찬실은 상황에 좌절해 울고 있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좋아하는 남자에게 무조건 직진한다. 정 많은 집주인 할머니와 한글 공부를 하고 콩나물을 다듬으며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한다

 

▲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 찬란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 속에서 영화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찬실의 이야기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오스 야스지로의 영화 같다. 정감 있는 사투리를 구사하고 짧은 커트머리에 무채색의 옷을 입는 찬실이는 동네언니, 누나처럼 현실에 존재할만한 인물이고 특별할 것이 한군데도 없다. 그런 찬실의 이야기 또한 평범하게 그려지지만 그 속의 소소한 웃음,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며 느끼는 감정들이 관객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누구나 갑자기 길을 잃고 헤맬 때가 있다. 그 시기를 이겨내는 데에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 그리고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고 믿었지만 나도 모르는 새 쌓여있던 나만의 이야기가 버팀목이 되어준다. 찬실은 집도 남자도 돈도 없지만 인복이 있는 사람이었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며 키웠던 꿈을 가진 사람이었다. ‘놀란의 영화처럼 특별하지 않지만 저마다의 평범한 이야기를 가진 관객들은 이런 찬실의 모습을 보면서 공감하며 감동과 재미를 느낀다.

 

영화의 말미에 찬실은 형광등을 사러 어두운 산길을 동료들과 내려간다. 어두컴컴한 길 위에는 동료들과 찬실이 함께 서있고 그런 동료들을 그녀는 작은 손전등으로 비춰준다. 이 장면을 통해 박복해 보이는 그녀에게 대체 무슨 복이 있는지 어쩌면 그제서야 눈치채는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어두운 길이지만 앞으로의 찬실의 앞길에는 동료들이 언제나 함께할 것이고 그녀는 작지만 환한 빛으로 그 길을 비출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영화 하는 것이 좋았던 찬실은 앞으로도 좋아하는 일을 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었다.

 

▲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 찬란

 

스물, 서른, 마흔 이런 나이에 부여되는 의미는 꽤 크다. 스물에는 무엇을 해야하고, 서른에는 무엇을, 마흔에는.. 이런 말들이 교과서의 공식처럼 일평생을 따라다닌다. 사실 마흔, 쉰 이런 나이도 지구의 나이에 비해서는 너무 작은 숫자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꿈을 찾아서 떠나는 것에 나이는 큰 문제가 아니다. 혹시나 이런 도전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영화를 보길 추천한다. 찬실은 나이 마흔에 남자에게 처음 안겨보았고 자신의 작품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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