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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AF|기억과 감정을 품은 편지를 전하는 수기인형의 마지막 이야기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상영작] '극장판 바이올렛 에버가든' / Violet Evergarden: Th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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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10-25 [08:41]

 

▲ '극장판 바이올렛 에버가든' 포스터  © (주)라이크콘텐츠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때마다 가장 좋은 호응을 받은 작품은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극장판이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시장은 전 세계를 주름잡을 만큼 그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올해 이런 화제를 모은 작품은 극장판 바이올렛 에버가든이다.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과 엔딩 크레딧이 끝난 뒤 터진 박수갈채는 높은 완성도를 지닌 극장판에 대한 만족감을 표하는 순간이었다.

 

작품은 수기 인형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룬다. 글을 잘 쓸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이를 대신 써주는 사람을 인형이라 부르는데, 이들의 호칭이 인형인 이유는 자신의 생각이 아닌 남의 생각을 대신 글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CH 우편사에 소속된 수기 인형이다. 두 팔이 의수인 그녀는 대필을 하면서 사람의 감정을 알고자 한다. 감정을 알고 싶은 이유는 하나다. 한 남자가 남긴 사랑해라는 말의 의미를 찾고 싶어서다.

 

이번 극장판은 바이올렛이 그 한 남자, 길베르트 부겐빌리아의 기억을 회상하며 그의 행적을 밟아나가는 과정을 다룬다. 작품은 이 과정을 메인플롯으로 두고 두 개의 서브플롯을 통해 주제의식을 강화한다. 첫 번째 서브플롯은 데이지의 이야기다. 데이지는 할머니의 장례식 후 유품에서 편지상자를 발견한다. 그 편지는 할머니의 어머니가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후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다.

 

▲ '극장판 바이올렛 에버가든' 스틸컷  © (주)라이크콘텐츠

 

할머니의 생일 때마다 50년을 보내온 편지는 수기인형에 의해 작성한 것이다. 데이지는 이 50년 간 편지를 보내온 CH 우편사와 편지봉투와 함께 들어있는 스크랩된 신문기사의 주인공, 바이올렛 에버가든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데이지의 이야기는 편지가 주는 진심이 담긴 목소리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데이지가 미래의 바이올렛을 만날 것이란 점은 결말에 대한 기대를 품게 만든다.

 

두 번째 서브플롯은 죽음을 앞둔 남자아이의 이야기다.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남자아이는 자신을 걱정만 하는 부모와 동생의 과보호에 만날 화만 낸다. 진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입으로는 전할 자신이 없기에 바이올렛에게 자신이 죽은 후 편지를 전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이 서브플롯은 하진스와 바이올렛, 길베르트와 디트프리트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하진스는 처음 의수를 장착한 바이올렛을 어린 시절부터 돌봤다. 때문에 애정이 남다르다. 바이올렛에 관한 일이라면 더 진중하고 집착할 수밖에 없다. 주변에서는 그런 하진스를 다 큰 바이올렛을 과보호한다고 말한다. 남자아이의 부모가 아이의 상황 때문에 조심할 수밖에 없듯, 하진스 역시 바이올렛이 지닌 아픔을 알기에 더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이런 하진스의 모습은 바이올렛의 성장과 사랑을 더 극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 '바이올렛 에버가든' 스틸컷  © (주)라이크콘텐츠

 

길베르트와 디트프리트 형제는 남자아이와 그 동생의 관계와 유사하다. 남자아이는 동생을 사랑하지만, 동생이 태어난 후부터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단 생각에 질투를 느낀다. 그 질투를 남자아이는 마음의 짐처럼 여긴다. 디트프리트는 군인 가문에서 태어나 군인이 되어야 하는 운명에 저항하고 반항한다. 그때마다 길베르트는 아버지를 달래기 위해 자신이 열심히 훈련해 군인이 된다고 말했다.

 

디트프리트는 길베르트가 군인이 되기에는 마음이 따뜻하고 여리다는 걸 안다. 만약 자신이 아니었다면 동생이 바이올렛의 문제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품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에 짐을 품고 있다. 다른 인생을 택해야 했던 길베르트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다 디트프리트는 생각한다. 이 서브플롯은 메인플롯의 이야기를 더욱 강화하며 허친스와 길베르트, 디트프리트의 행동과 선택에 근거를 부여한다.

 

두 개의 서브플롯을 통해 메인플롯을 탄탄하게 만든 기술력은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눈물을 쥐어 짜내는 내용이지만 신파에서 벗어난다. 신파는 감정을 줄기차게 물고 늘어져 어떻게든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이 작품은 세 개의 플롯을 탄탄하게 엮으며 관객이 알아서 그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바이올렛이 길베르트에게 느끼는 애절함, 길베르트가 바이올렛에게 느끼는 죄책감, 허친스가 바이올렛에게 품는 아버지 같은 애정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 '바이올렛 에버가든' 스틸컷  © (주)라이크콘텐츠

 

여기에 작화의 힘은 감정의 격화를 이끌어낸다. 아름다운 작화는 보는 것만으로 기쁨을 준다. 이런 작화가 더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그림에 감정을 담을 줄 알아야 한다. 바이올렛이 과거 참전의 아픔을 떠올릴 때의 어두운 화면이나 감정이 격해질 때의 비가 내리는 장면은 한 폭의 명화를 보는 거처럼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다.

 

한 가지 더하고 싶은 작품의 미덕은 쓸쓸함을 덜어내는 결말이다. 작품은 전화의 등장으로 편지가 점점 사라지는 시대를 다룬다. 이런 시대적 배경은 쓸쓸함을 담기 마련이다. 쓸쓸함 대신 택한 감정은 아련함이다. 에피소드에 전화와 전보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며 시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를 이끌어내며, 편지에 담긴 추억과 감정의 의미는 훼손하지 않는 힘을 보여준다. 결말에 이르러 따뜻한 감정을 온전히 품게 만든다.

 

<극장판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원작을 몰라도 작품의 세계관에 빠질 수 있는 탄탄한 스토리와 감정을 이끌어내는 기술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매니아층의 지지만 믿고 허술한 이야기를 선보이는 몇몇 극장판 애니메이션과 달리 이 한 편만으로 완벽한 이야기를 완성한다. 올해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아마도 관객들에게 가장 높은 만족도를 선사할 작품이 아닌가 싶다. 1112일 극장에서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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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획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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