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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AF|소녀는 어떻게 전쟁의 그림자에서 벗어났나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상영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쟁' / My Favorit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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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10-25 [20:03]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쟁' 스틸컷  © 제22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세계는 냉전의 시대에 접어든다. 소련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유럽의 절반을 공산주의로 물들인다. 나치의 점령 하에서 벗어났던 라트비아는 러시아에 의해 소련 연방에 속하게 된다. 감독 일즈 부르코프스카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위선과 억압이 가득했던 시대를 조명한다. 1945, 라트비아는 독일 나치에게서 독립했지만 1991년 소련 연방의 해체 전까지 또 다른 억압에 시달려야 했다.

 

일즈는 유년시절을 외할아버지의 농장에서 보냈다. 당시 외할아버지를 비롯한 사촌들과 아버지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아버지는 소련 공산당원이었고, 외할아버지는 반동분자로 지목되어 시베리아로 유배를 갔다. 뛰어난 예술가였던 외할아버지는 아름다운 그림을 다수 창작했지만 과거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어머니 역시 미래를 위해 외할아버지의 정체를 숨기고, 일즈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하게 한다.

 

일즈가 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자 아버지는 두 사람을 데리고 도시를 향한다. 일즈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된 쿠를란드는 마치 죽은 도시처럼 암울한 회색을 지니고 있다. 그 우울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더욱 심화된다. 자동차 사고로 아버지가 죽은 후 일즈의 가족은 힘겨운 상황에 처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는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당원에 가입하고자 한다. 모든 건 일즈의 꿈을 위해서다.

 

기자가 되고자 하는 일즈의 꿈은 고학력이 아니고는 이루기 힘들다. 일즈가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집안에 당원이 필요하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의 신념을 딸을 위해 저버린다. 일즈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당원활동에 참여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믿고 있는 무언가가 과연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작품은 이 의문을 세 가지 이야기를 통해 표현한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쟁' 스틸컷  © 제22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첫 번째는 1944년의 한 일화다. 당시 라트비아는 소련군과 독일군이 전투를 치르는 중이었다. 한 라트비아인 가정에 소련군이 들어와 식사를 한다. 집주인은 빨리 소련군이 가주기를 간청한다. 소련군이 나간 뒤, 독일군이 들어와 왜 소련군을 받았는지 묻는다. 이에 집주인은 말한다. 나에게는 소련군과 당신들처럼 총이 없다고. 그 총으로 차라리 날 쏴 버렸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주류 사상이란 건 바뀌기 마련이다. 영원한 건 없다. 자신들의 왕국을 공고하게 다져온 소련이 붕괴된 거처럼 신념과 사유 없이 주류의 사상을 따르는 행동은 한 집에 들어온 독일군과 소련군처럼 불안과 공포를 품게 만든다. 일즈는 자신의 생각을 적은 절친한 친구 일가는 고등학교 시험에서 떨어지고 자신은 붙은 것에 대해 고민한다. 신문기사의 이야기를 다시 적은 자신과 자신만의 생각을 말한 일가의 다른 결말 앞에 무엇이 진정 가치 있는 행동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두 번째는 참전용사들과의 만남이다. 일즈가 가장 좋아하는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다. 이 당시의 무용담을 듣는 걸 가장 큰 재미로 여기는 일즈는 그들의 입에서 화끈하고 뜨거운 전쟁경험이 나오길 기대한다. 하지만 참전용사 중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들은 그 아픈 기억을 꺼내지 않는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그들의 말은 건성이 아닌 진심이다. 공부를 통해 아이들이 전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꿈을 펼치길 바란다.

 

일즈의 성장은 전쟁에 대한 허상을 벗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쿠를란드에서 펼쳐진 독일군과의 전투는 영광적인 사투가 아닌 무의미한 희생이었다. 소련군은 독일군을 포위한 상황에서 그들의 군인을 기관총 앞에 내던졌다. 빠른 승전을 위해 과한 희생을 택한 것이다. 학교 놀이터에서 발견된 시체는 이 아픈 과거를 의미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한 전쟁은 추억해야 할 영광이 아닌 감추고 싶은 고통이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쟁' 스틸컷  © 제22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세 번째는 바다다. 1974년의 라트비아는 국민들이 바다로 나가지 못하게 막는다. 아버지는 일즈에게 바다를 보여주기 위해 몰래 해변을 향한다. 딸에게 한 번이라도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전혀 다른 위치에 있었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일즈에게 가치 있는 삶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했다.

 

영화의 수미상관은 바다를 통해 이뤄진다. 멀리서 바다를 바라보기만 했던 일즈는 두 아이를 데리고 바다에 들어간다. 평생을 저항하며 살아온 할아버지와 자유를 알려주고 싶었던 아버지, 타협의 삶에서 벗어나 라트비아 최초의 자립농장을 운영한 어머니처럼 일즈는 삶이 지닌 진정한 가치인 자유와 사유에 눈을 뜬다. 이 모든 건 바다에서 비롯된다. 한 번 바라봤던 그 바다가 일즈에게 나아가야 할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쟁은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일어나지도 않을 전쟁의 공포 때문에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던 아이들과 경제적 빈곤에도 체제를 찬양해야 했던 어른들은 이 거짓을 벗겨내고자 한다. 연극은 끝나기 마련이고 가면은 결국 벗겨진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독재와 억압이 이뤄지고 있다. 이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은 거짓을 벗기고자 하는 개개인의 연대와 용기임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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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획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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