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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푸르게 덮는 '담쟁이'처럼

[프리뷰] '담쟁이' / 10월 28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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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0-10-26 [09:42]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 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는 넘을 수 없다 여기는 벽과 같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아스팔트를 뚫고 꽃을 피우는 민들레의 생명력처럼 담쟁이는 여러 줄기가 손을 잡고 오르고 올라 결국 벽을 뛰어넘는다. 한제이 감독의 담쟁이는 이 시의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퀴어 장르의 매력을 더한다. 퀴어를 돋보이게 만드는 사회적 금기와 사랑을 통한 성장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화면에 담아낸다.

 

▲ '담쟁이'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은수와 예원은 과거 사제지간에서 현재 연인으로 발전했다. 두 사람은 한 집에서 동거하며 서로를 향한 사랑을 키워나간다. 예원이 직장에 정착하고 매니저로 추천을 받으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좋아질 거처럼 보였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교통사고를 당한 은수는 하반신 마비를 선고받는다. 이제 자신이 지켜주겠다는 예원은 은수는 거칠게 밀어낸다. 예원을 밀어내고 화장실에서 혼자 절규하는 은수의 모습은 그 슬픔의 깊이를 보여준다.

 

이런 은수의 모습은 두 사람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은수는 교사의 입장에서 예원을 지켜주는 입장이었다. 예원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건 물론 그녀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과거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예원의 모습은 성실한 학생이라 보기 힘들다. 하지만 복도 밖에서 은수를 바라보며 설레는 마음을 느꼈던 예원은 그 사랑의 결실을 위해 성실하게 본인을 바꿔나간다.

 

이는 사랑의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예원은 자신에게 기적 같은 사랑을 선사한 은수를 혼자 둘 수 없다. 장애나 사회적인 편견이 문제라면 함께 이겨낼 수 있다. 실제로 이 두 가지는 최근 사회적인 인식의 상향으로 그 금기가 많이 누그러졌다. 동성애가 범죄나 금기로 인식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에 작품은 수민의 존재를 통해 이 금기를 이어가며 애절한 관계를 형성한다.

 

▲ '담쟁이'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사고를 당한 날, 은수의 옆에는 언니가 있었다. 언니가 목숨을 잃으면서 조카 수민은 혼자가 된다. 은수가 수민을 곁에 두기 위해서는 예원을 포기해야 한다. 반대로 예원을 택하면 수민을 고아원에 보내야 한다. 예원과 수민은 마치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낸다. 세 사람은 그 자체로 완벽한 가정을 이룬다. 하지만 사회의 시선은 그렇지 않다. 남과 여로 이뤄진 부부가 아니라면 온전한 가정의 형태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고난은 넘을 수 없다 여기는 처럼 느껴진다. 두 사람을 모두 껴안기에 은수는 스스로가 부족하다 여긴다. 하지만 담쟁이는 잎 수천 개를 이끌고 벽을 넘는다. 담쟁이는 하나의 줄기로 형성되지 않는다. 여러 개의 줄기가 뭉쳐 벽을 타고 올라간다. 영화는 은수에게 혼자 고통을 감내하게 하는 가혹한 운명을 주지 않는다. 대신 예원과 수민에게 성장의 시간을 주고자 한다.

 

영화는 지금 이 순간이 아닌 이후를 기대하게 만든다. 여러 줄기가 뭉쳐 하나의 담쟁이로 탄생한 순간, 다 함께 손을 잡고 올라 절망을 푸르게 덮어버리는 순간이 다가올 것임을 예고한다. 물이 담는 용기에 따라 모양은 변해도 그 결정은 변하지 않는 거처럼, 사람의 모습은 바뀔 수 있지만 사랑의 감정은 변하지 않는다. 사랑이 지닌 온전함과 변화의 힘을 통해 함께 어쩔 수 없는 벽을 오르고 싶게 만드는 영화라 할 수 있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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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획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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