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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사랑하는 법에 대하여

리뷰|영화 '소공녀(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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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1-01-08 [10:00]

[씨네리와인드|박세진 리뷰어] 나 자신을 지탱해주고 정의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먹고 사는 것은 자주 우리 삶 속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추상적인 가치들은 모두 의미 없는 것들로 여겨지고는 한다. 따뜻한 집에서 살 집세가 없는데 위스키 한 잔을 들이키는 여유를 즐기고, 같이 하는 미래를 꿈꿀 자금이 없는데 그럼에도 온 힘을 다해 사랑하는 것. 그런 삶은 한심하게 사치를 부리는 것일까? 영화 <소공녀>는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 삶이 나의 것이 될 수 있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는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인물이다. 미소는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일당을 집세, 약값, 밥값, 세금, 담뱃값, 위스키 값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새해가 되면서, 일당은 오르지 않는데 집세와 담뱃값이 모두 올라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던 미소의 생활에 균열이 생긴다. 고민 끝에 미소는 집을 포기하고, 예전에 같이 밴드를 했던 멤버들을 찾아가 그들의 집에 잠깐씩 머물게 된다.

 

▲ '소공녀' 스틸컷    ©CGV아트하우스

 

집도 안정적인 직장도 없이 떠도는 미소의 상황이 나나 주위사람의 것이라 생각하면 답답하고 암울해지는데, 이상하게도 이 영화를 보면서 미소의 삶이 멋져보였다. 그녀는 조금도 한심하거나 철없어 보이지 않았고, 반짝반짝해 보였다. 미소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담배와 위스키, 그리고 남자친구인 한솔 정확히 알며, 그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다른 것들을 용감하게 버릴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다. 그런 단단함을 지녔기에, 미소는 위축되거나 위선적인 다른 어른들과 달리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타협하지 않으며, 다른 이들을 자신보다 위나 아래로 보지 않는다. 록이가 자신과 결혼해서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단지 가정을 꾸리기 위해 함께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미소는 화를 낸다.

 

다음날 아침 (기분 탓일지 실제일지 알 수 없지만) 미소는 자신이 그 집에 갇혔다고 여기게 되고 최선을 다해 탈출한다. 그녀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이 없는 집은 집이 아닌 새장이기 때문이다. 미소의 친구인 문영은 직장에서 자신이 담배를 피웠던 적이 없는 척 행동하고, 또 다른 친구인 정미는 남편 앞에서 자신의 열정 가득했던 젊은 날을 숨기려 하지만, 미소는 누구 앞에서나 거침이 없으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정미가 자신의 가치관을 경시하며 집에서 나가달라고 하자, 미소는 갈 곳이 없음에도 정미가 내민 돈을 거절하고 그녀의 집에서 나간다. 갈 곳이 없을지언정 자신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미소의 태도는 그녀를 고귀하게 만든다.

 

▲ '소공녀' 스틸컷    ©CGV아트하우스

 

또한 그녀는 자신을 존중하는 만큼 타인을 존중한다. 너무 자주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는 사람들과 달리, 그녀는 타인을 우러러보거나 경시하지 않고, 무책임한 설교를 늘어놓지도 않는다. 그저 다른 이들이 자신처럼 인생을 충분히 사랑하도록 격려할 뿐이다. 영화의 초반 그녀는 자신에게 집 청소를 맡기는 친구에게 차를 권한다. 먹고 살기가 어려워 친구의 집을 청소해야 하는 현실이 자존심 상할 수도 있을 텐데, 미소는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지쳐 보이는 친구를 돕고자 한다.

 

, 미소는 떳떳하지 못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다른 고용주 민지를 편견 없이 대하며, 그녀가 자신의 직업을 청산하고 집을 반납하려 한다고 하자 그녀에게 차를 끓여주고 격려를 전한다. 자신이 직장을 잃게 되었음에도 미소는 오직 민지의 행복을 바란다. 한솔이 그녀와의 미래를 위해 현재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을 포기하고 전근을 가려 할 때도, 미소는 한솔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결국 그를 존중하며 배웅한다. 그리고 그가 포기해버린 꿈을 놓지 않기를 바라며 그에게 선물을 전한다. 미소는 그렇게 타인을 제대로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며, 돈이 없고 집이 없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미소가 품위 있어 보이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 '소공녀' 스틸컷    ©CGV아트하우스

 

집이 없는 미소의 직업이 가사도우미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위스키와 담배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집에 머무는 미소의 사랑이 염치없다는 정미의 말과는 달리, 미소는 자신이 머무는 공간의 주인에게 무엇인가를 베풀며, 그들의 집이 진정한 이 될 수 있게 만든다. 미소는 자신이 못하는 요리를 꼬박꼬박 하게 만드는 시부모님과 무관심한 남편 틈에서 숨 쉴 구멍 없던 현정에게는 밑반찬을 잔뜩 만들어주며, 그녀가 자신을 더 챙기기를 바라는 쪽지를 남긴다.

 

그녀는 아내가 떠난 후 집도 자신도 엉망으로 만드는 대용의 푸념을 들어주고, 그에게 아침을 해 먹이고 그의 집을 청소한다. 그녀의 가치관을 존중하지 않아 미소와 말다툼을 했던 록이와 정미 역시, 이후 미소 이야기를 하며 웃음을 터뜨리고 그녀를 그리워한다. 그녀는 자신이 찾아갔던 모든 이들에게 위로의 따뜻함과 젊은 시절의 반짝임을 선물한다.

 

▲ '소공녀' 스틸컷    ©CGV아트하우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이 하나만은 바뀌지 않을 거야. 내가 공주라면 누더기나 넝마를 입었어도 속마음은 공주처럼 될 수 있어. 금빛 두른 옷을 입었다면 공주가 되는 게 쉬웠겠지만, 아무도 몰라줄 때에도 쭉 공주가 되는 게 훨씬 대단한 거야.” 프랜시스 버넷의 소설 <소공녀>에 나오는 대사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세라는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자신이 공주라고 상상하며, 곧은 마음과 희망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세라는 다시 공주 같은 삶을 되찾는다. 영화 <소공녀> 속의 미소 역시 세라의 곧은 심성을 닮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기꺼이 사랑하며,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그럼으로써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을 존중하는 것. 위스키 값마저 올라버리자 미소는 결국 약값을 포기하고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다. 하지만 미소가 미소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미소의 얼굴을 볼 수 없고 그녀는 그저 우리를 스쳐가지만, 우리는 이 시끄러운 도시의 한복판에서 하얀 머리를 한 미소를 분명하게 알아본다. 그녀는 먹고사는 것 이상으로 자신을 자신답게 만들어주는 가치들을 결국 지켜내고 있기 때문이다. 표정을 볼 수는 없지만, 언뜻언뜻 보이는 그녀는 여전히 단단하고 행복해 보인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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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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