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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뛰어넘는 '올란도'

영화 '올란도(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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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1-01-26

▲ '올란도' 포스터  © 소니 픽처스 클래식스


[씨네리와인드|최은민 리뷰어]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샐리 포터의 영화 <올란도>는 올란도의 일대기다. 올란도는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총애를 받는 아름다운 소년 귀족으로, 여왕은 올란도에게 “변하지 말고, 병들지 말며, 늙지도 말아야 한다.”는 말을 남긴다. 그렇게 올란도는 400년 동안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살아간다. 기나긴 세월 속에서 올란도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횡단한다.

 

‘성’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올란도는 서구 근대 철학의 이분법적 인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존재다. 서구의 이원론은 타자를 지배하는 논리 및 실천 체계를 제공해왔다. 타자는 주체의 자아를 비추는 거울 노릇을 하기 위해 동원되었으며, 서구의 근대적 시각성에서 탄생한 영화 또한 이러한 이원론을 기반으로 주류의 시선을 담지 해왔다. 샐리 포터는 올란도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기존의 의미체계를 전복시킨다. 감독의 노력은 배우 캐스팅에서부터 드러난다. 남성과 여성을 오가는 올란도를 연기하는 이는 ‘여성 배우’ 틸다 스윈튼이다. 반면,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연기하는 이는 ‘남성 배우’ 쿠엔틴 크리스프다. 이 외에도 샐리 포터는 다양한 영화 언어를 통해 전통적인 서사 관습을 전복한다.

 

<올란도>는 화면에 몰입하는 관객에게 이것이 ‘영화’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말한다. 일종의 ‘낯설게 하기’로서, 영화의 극적 환상을 깨트리고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 관습적인 영화는 비가시 편집을 통해 실제 같아 보이는 하나의 세계(서사)를 형상화한다. 즉, 영화가 인공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숨기며 관객을 효율적으로 설득한다. 하지만 <올란도>는 전통적인 서사 흐름을 의도적으로 방해한다. 영화는 약 400년의 시간을 담아내고 있는데, 이를 각각의 장으로 구분하며 관객의 몰입을 막는다. 이야기 사이에 검은 정지 화면과 자막이 삽입되는데, 순서대로 <1600년 죽음(DEATH)>, <1610년 사랑(LOVE)>, <1650년 시(POETRY)>, <1700년 정치(POLITICS)>, <1750년 사회(SOCIETY)>, <1850년 성(SEX)>, <BIRTH(탄생)>이다. 각 장마다 붙은 제목이 ‘탄생’부터 ‘죽음’이 아니라 ‘죽음’부터 ‘탄생’이라는 것 또한 전복적이다.

 

▲ '올란도' 스틸컷  © 소니 픽처스 클래식스


감독의 의지는 <올란도>의 첫 장면에서부터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올란도는 책을 읽으며 나무 아래를 거닌다. 이때 제삼자의 전지적 내레이터가 올란도에 대해 묘사하는데, 보이스오버 중간에 올란도가 끼어든다. 전지적 내레이터가 “올란도의 초상화는 벽에 걸릴 것이고, 그의 이름은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는..”이라고 말한 직후, 클로즈업으로 포착된 올란도는 카메라와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다시 말해서 나는”이라고 말한다. 카메라와 관객의 시선을 맞받아치던 올란도가 다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그가 다시 카메라에 의해 포착되는 대상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세상에 뛰어들어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라는 전지적 보이스 오버가 진행된다.

 

올란도의 ‘맞받아치는 시선’은 영화 내내 이어진다. 그는 영화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하다가, 잠시 멈추고 가만히 카메라(관객)를 응시한다. 혹은 카메라(관객)를 바라보며 직접적으로 말을 건다. 예를 들자면, 여왕이 올란도에게 “변하지 말고, 병들지 말며, 늙지도 말아야 한다”는 말을 남긴 후, 올란도가 침대에 풀썩 눕는 장면이 이어진다. 천장을 바라보며 가만히 누워있던 올란도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관객을 응시하며, “재미있는 분이셔”라고 말한다. 이런 식의 올란도의 응시와 목소리는 <올란도>가 ‘영화’라는 것을 끊임없이 알려주며 관객이 보다 능동적으로 사유할 것을 요구한다.

 

해당 기법은 올란도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더욱 힘을 얻는다. 긴 잠에서 깨어나 여성이 된 올란도는 자신의 나체를 거울에 비춰본다. 여기에서 카메라는 여성의 신체를 훑거나 파편화해 강조하지 않는다. 드러난 올란도의 몸을 있는 그대로, ‘전체’를 보여준다. 또한 ‘올란도의 (여성) 신체’를 직접적으로 이미지화하지 않고 ‘거울에 비친 올란도의 (여성) 신체’를 스크린 위에 펼쳐냄으로써, 카메라와 관객의 시선이 아니라 올란도 자신에 의해 관찰되는 (여성) 신체 이미지를 보여준다. 자신의 몸을 찬찬히 바라본 올란도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한다. “같은 사람이야. 달라진 건 없어. 성별만이 변했을 뿐 (Same person. No difference at all. Just a different sex.)” 여성의 몸을 가진 올란도는 카메라와 관객의 응시 대상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관찰하는 응시의 주체이며, 더 나아가 자신이 관찰한 것을 관객에게 직접 말하는 주체적인 발화자다.

 

기존의 영화가 볼거리로 삼았던 ‘여성 신체’는 <올란도>에서 더 이상 볼거리가 아니다. 페미니즘 영화 이론가 로라 멀비는 주류 내러티브 영화가 카메라와 관객의 시선을 부정하고 (남성) 캐릭터의 시선에 두 시선을 종속시킴을 비판했다. 동시에 카메라의 시선과 관객의 시선을 가시화할 때, 영화의 시각 메커니즘을 드러내며 그 쾌락을 파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올란도의 시선은 카메라와 관객의 시선을 그대로 맞받아치며, 숨겨져 있던 카메라와 관객의 시선을 드러낸다. 기존의 서사 영화에서 관객이 바랬던 관음증적 쾌락은 <올란도>에서 충족되지 않는다. 

 

▲ '올란도' 스틸컷  © 소니 픽처스 클래식스


뿐만 아니라 <올란도>는 이분법적 의미체계의 불균형한 권력관계를 폭로한다. 올란도는 여성이 되는 순간 남성으로서 누렸던 모든 권력을 상실한다. 여성 올란도는 남성 올란도와 ‘같은 사람’ 임에도 불구하고, 코르셋을 조이고, 거추장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사교 모임에 참석한다. 모임의 남성들은 올란도의 미모에 추파를 던지며 여자에 대한 저열한 편견을 늘어놓는다. 이는 남성으로 살던 올란도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남성으로 살던 시절 올란도는 러시아 대사의 딸과 바람을 피우며, 이에 대해 약혼녀에게 “남자는 자신의 마음을 따라야 해,”라고 주장한다. 러시아 대사의 딸에게는 “당신을 사랑하니까 당신은 내 것이오.”라고 말한다. 사랑의 끝이 좋지 않자, 남성 올란도는 “여자란 배신하는 자들이야”, “여성을 묘사하는 세 개의 단어를 찾았어. 그중 어떤 것도 표현할 가치가 없지.”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여성이 된 올란도는 남성 올란도가 당시 여성들에게 던진 말과 행동을 그대로 돌려받는다. 여기에 더해, 여자는 재산을 소유할 수 없는 당시 법 때문에 올란도는 자신의 집과 재산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올란도는 남녀 위계질서에 따른 비대칭적인 권력관계를 각각의 상황에서 몸소 체험한다.

 

▲ '올란도' 스틸컷  © 소니 픽처스 클래식스


기존의 의미체계를 뛰어넘으려고 하는 샐리 포터의 의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정점을 이룬다. 캠코더를 든 올란도의 어린 딸이 등장하고, 아이의 시선을 매개한 카메라로 찍힌 이미지가 뒤를 잇는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화면은 노이즈로 가득 차있다. 이러한 아마추어적 이미지는 <올란도>의 주제의식을 강화한다. 감독은 기존의 관습들이 ‘볼거리’가 아니라고 판단해 배제한 것(아마추어적인 것)을 선택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동시에, 나무에 기대앉은 올란도의 위로 성의 구분이 없는 영적 존재 천사가 나타나 노래한다. “내가 가노라, 내가 가노라 경계를 뛰어넘어 그대에게로. 결합의 이 순간에 환희를 느끼며. 현재에 있기 위해서 마침내 나는 자유롭도다. 마침내 과거와, 나를 유혹하는 미래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내가 가노라, 내가 가노라. 여자도 남자도 아닌 내가 여기 있나니. 우린 하나로 합쳐졌네. 인간의 얼굴로 나는 지구 위에 있고 우주에도 있다네. 나는 태어나고 죽는다네.” 그리고 마침내 올란도는 말한다. “난 행복해.”

 

남자에서 여자로 횡단하며, 사회가 기획한 정체성을 요구받았던 올란도는 마지막에서야 자유로워진다. 이는 “올란도는 변했다. 이제 운명에 사로잡혀 살지 않는다. 과거의 끈을 놓은 이후로 인생의 시작을 알게 됐다.”라고 말하는 보이스 오버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죽음, 사랑, 시, 정치, 사회, 성, 탄생을 겪으며 올란도는 점점 변화한다. 영화 <올란도>는 인간사(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올란도의 섹스와 젠더 정체성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섹스와 젠더가 초역사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한다. 이 모든 시간을 거쳐 올란도는 성의 구분을 뛰어넘고, 자신이 자유로운 ‘인간’임을 선언한다. 그제서야 올란도는 새롭게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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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민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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