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 없는 비극, '빈부격차'의 피해자가 된 두 명

현대사회 구조의 문제점 조명한 '기생충'과 '행복한 라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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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기사입력 2019-07-05 [08:33]

 

▲ <기생충>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 <기생충>과 <행복한 라짜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72회 칸영화제에서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계는 100년사를 자축했다. 또한 <기생충>은 기존 한국영화가 지닌 시선과 다른 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베테랑>을 필두로 <내부자들>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성난 변호사> 등의 작품들은 한국사회 빈부격차와 이로 인한 권력구조를 중점으로 '갑질 문화'에 주목하며 '갑질하는 권력자'에 반기를 드는 통쾌함으로 시선을 끌었다. 이외에도 <카트> <또 하나의 약속> <도가니> 등의 영화가 권력층의 행태에 대항하나 결국 현실의 한계에 부딪힌다는 내용으로 관객을 찾았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의 특징은, 영화에 권력층이 '악'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돈과 권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발현하거나 잘못을 덮기 위해 법과 질서를 어기고 권력을 휘두른다. 하지만 사회의 빈부격차 문제를 다룬 <기생충>에는 권력층이 등장하지만 악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가족이 학력을 속여 과외를 시작한 기우(최우식 분)를 따라 박사장네 집에 전원 취업하는 내용을 다룬다. 이 작품 속 권력층인 박사장(이선균 분)에게서는 한국영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갑질'과 '횡포'는 보이지 않는다. 

  

기택은 박사장에 대해 '착한 사람'이라 표현한다. 부자라서 구김살이 없다는 것이다. 박사장은 순진하게 기택네 가족의 작전에 속아 원래 있던 사람들을 다 해고하고 기택네 가족을 한 명 한 명 가정교사, 운전기사, 가정부 등으로 고용한다. 오히려 주인공인 기택네 가족의 입장에서 영화를 본다면, 그들에게 '악'은 자신들의 작전에 속아 넘어간 박사장이 아니라 자신들에 의해 쫓겨났지만 다시 집에 들어오려는 문광(이정은 분)과 근세(박명훈 분) 부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출발점은 비슷했을 세 사람, 기택-박사장-근세 

▲ <기생충>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박사장 집의 비밀과 근세의 존재가 드러나는 지점에서 <기생충>은 기존 영화들이 다뤄왔던 권력의 성질을 본질적으로 파고든다. 한 가족의 사기극처럼 진행되던 영화가 무서운 권력의 구조를 비추게 되는 것이다. 극 중 기택과 근세는 마치 '기생충' 같은 존재로 비친다. 그들은 둘 다 박사장이라는 숙주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사회적으로 밑바닥에 위치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서로 숙주를 차지하려는 상대방은 이들에게 적이 되고, 이 때문에 사투를 벌이는 듯한 장면도 연출된다. 

  

두 가족이 싸우는 이유이자 '숙주' 같은 존재인 박사장네는 자신의 집에서 벌어지는 이 두 가족들의 싸움을 전혀 모르고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이유는 사회의 구조와 관련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이 되는 돈에는 중요한 성질이 하나 있다. 바로 '돈이 돈을 번다'는 점이다. 가진 사람은 재산을 더욱 빠르게 불릴 수 있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노력해도 재산을 늘리기 힘들다. 상위층이 많은 재산을 가져갈 동안 중하위층은 상위층이 차지하고 남은 나머지 부분을 가지기 위해 싸우는 모양새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곧 기택과 근세가 싸우는 구도와 비슷하고, 박사장이 그들의 다툼을 이야기상 눈치 채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기생충>은 자본주의 사회가 지닌 구조의 속성에 대해 더 본질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박사장의 캐릭터를 기존 영화들과 다르게 표현한다. 기존 작품들이 권력층의 횡포를 보여주며 그들이 지닌 막강한 권력을 부각시키는 반면, 이 작품에서 박사장은 과거에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는 말을 한다. 이 대사로 관객은 박사장이 자수성가한 인물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또 그가 IT 관련 사업을 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IMF 이후 고속 성장한 사업에 종사한 덕분에 상위층에 도달한 인물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 <기생충>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이와 같은 박사장의 설정은 기택과 근세의 캐릭터 합을 통해 더욱 부각된다. 극 중 기택은 안 해본 일 없이 살아온 것 같은 인물이다. 그는 박사장의 집에 운전기사로 취업한 후 '38선 아래의 길은 골목까지 꿰뚫고 있다'라는 말을 한다. 이 대사는 그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문광에 의해 박사장의 집 지하실에 숨어 살던 근세 역시 마찬가지다. 대사를 통해 부각된 근세는 과거에 사업을 하다 망한 신세다. 카메라는 근세의 책장에 진열된 책들을 클로즈업 하는데, 이때 보이는 책들은 법과 관련된 책들이다. 

  

이는 근세가 과거 사법고시를 준비했던 인물일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기택과 박사장, 근세는 출발점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던 인물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선택과 그 선택의 길에 놓인 운에 따라 다른 계층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계층을 만드는 구조는 그들 간의 격차를 점점 크게 벌려 놓았고, 누군가는 숙주가 필요한 기생충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비극적인 상황을 낳았다. 

  

이런 구조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 사회가 지닌 모순과 한계는 최근 여러 방면에서 지적되고 있다. 가장 완벽하다 여겼던 사회적, 경제적 구조가 더 많은 한숨과 시름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런 사회의 구조에서 더 이상 '부유층은 나쁘고 빈민층은 착하다'라는 이분법은 통하지 않는다. 나쁘기에 상류층이고 착하기에 하류층이 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운 좋게 상승기류를 탔기에 하늘 위로 높이 올라가고, 누군가는 운이 나빴기에 땅에 머무르거나 지하로 거처를 옮기게 되는 것뿐이다. 

   

신분제 마을 벗어나려 '납치 자작극' 동참하는 라짜로 

 

▲ <행복한 라짜로> 스틸컷.     © (주)슈아픽처스

 

<행복한 라짜로> 역시 마찬가지로 '악인 없는 비극'이 이뤄지는 사회구조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극 중 아름다운 시골 마을 인비올라타에서는 후작 부인의 지배 아래 농민들이 담배 농사를 짓고 공동체 생활을 이룬다.

 

이 마을의 청년 라짜로(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는 항상 가장 낮은 곳에서 농민들을 돕는다. 후작 부인의 아들 탄크레디(루카 치코바니)는 마을의 수직적인 권력구조에 불만을 품고 마을 농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라짜로와 함께 납치 자작극을 벌인다. 어머니에게서 자신의 몸값을 받아 농민들을 해방시키려는 탄크레디의 계획은 라짜로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서 실패하게 된다. 탄크레디의 실패한 납치 사건 때문에 경찰이 찾아오고, 마을의 비밀이 드러난다. 

  

절벽에서 떨어진 후 다시 눈을 뜬 라짜로는 마을을 벗어나 도시로 간다. 영화 속 인비올라타 마을은 중세 또는 근대와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다. 철저하게 신분제가 적용되며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의 노동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후작 부인은 선량한 주민들을 착취하는 '악'처럼 묘사된다. 이와 같은 신분제의 모순은 시장경제의 발달과 중산층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과연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는가에 대해 영화 <행복한 라짜로>는 질문을 던진다. 

  

인비올라타 마을에서 라짜로는 행복하게 지냈다. 그는 많은 노동량을 감당해야 했지만,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덕분에 함께 웃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워한다. 하지만 라짜로가 도시에서 다시 만난 마을 사람들은 돈 문제에 걱정하고 일자리를 얻지 못해 도둑질을 반복한다. 그들은 오랜만에 만난 라짜로에게 '돈을 벌어오지 않으면 넌 쓸모가 없다'며 자신들의 보금자리에서 나가라고 말한다. 

 

▲ <행복한 라짜로> 스틸컷.     © (주)슈아픽처스



인비올라타를 떠난 순간 마을사람들 앞에는 더 행복한 미래가 그려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도시에서 그들은 돈에 쪼들리고 사회의 빈민계층으로 전락한다. 또한 타고난 계급으로 인한 격차보다 자본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더 큰 아픔을 느낀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여겼지만, 양극화로 인한 빈부격차 때문에 사람들이 더 큰 행복을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이 영화는 생각하게 만든다. 

  

<행복한 라짜로>에도 악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작품 역시 <기생충>처럼 '비극'을 품고 있다. 이 비극의 원인은 사회적 구조에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지만, 지나친 경쟁과 격차가 갈등을 낳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기생충>과 <행복한 라짜로>는 상류층의 권력과 횡포에 의한 사회적 문제보다는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를 조명한다. 두 영화는 사회가 지닌 구조의 문제, 그리고 이 구조로 인한 행복의 상실을 조명하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씨네리와인드 김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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