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잔혹동화, 아직도 유효한 이 영화의 메시지

[프리뷰] 영화 '인랑' / 9월 04일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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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기사입력 2019-09-04 [14:30]

▲ <인랑> 포스터.     © 콘텐츠판다

 

1999년과 2000년 사이에는 지금 들으면 웃음이 날 법한 괴담이 돌곤 했다. 바로 '종말론'이다.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컴퓨터가 한 세기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해 핵 시설 등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소문은 많은 이의 불안을 유발해냈다. 이처럼 전 세계적인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등장한 작품들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으로 불안과 공포를 담아냈다. <인랑>은 이런 세계관을 다룬 작품들 중 손에 꼽히는 애니메이션이라 할 수 있다. 

  

<공각기동대>와 <기동경찰 패트레이버>로 유명한 작가주의 감독 오시이 마모루는 1951년생으로 전후 일본을 경험했던 세대이다. 당시 일본에는 패전 후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기 전까지 혼돈이 존재했다. 애니메이션 <인랑>은 이와 같은 시대의 그림자를 담아낸 작품이다.

2차 대전 패전 이후를 배경으로 한 이 애니메이션은 무장 반정부세력 '섹트'와 이를 진압하기 위해 등장한 치안 경찰기구 수도경 특기대의 이야기를 다뤘다. 전쟁 후 초고속 경제성장 속에 극심한 빈부격차가 발생하고 이에 등장한 반정부 세력과 진압부대를 소재로 했다. 

   

반정부 세력과 진압부대, 2차대전 후 일본 배경의 <인랑> 

▲ '인랑' 스틸컷.     © 콘텐츠판다



작품의 이야기는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된다. 첫 번째는 특기대 최정예요원 후세 카즈키와 케이의 로맨스 라인이다. 후세 카즈키는 섹트 진압 작전 중 폭발물을 운반하는 '빨간 두건단' 소녀를 만나게 된다. 소녀가 자폭을 하고 후세는 그 장면 때문에 정신적인 충격을 받게 된다. 그는 소녀의 무덤에서 소녀와 닮은 여성을 보게 된다. 소녀의 언니라는 케이라는 여성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는 후세는 점점 그녀와 가까워진다. 

  

두 번째는 경찰 기관 내의 권력 다툼이다. 수도경과 자치경으로 분리된 경찰 기관은 경제 성장에 따라 사회혼란이 줄어들자 오히려 강한 진압을 택하는 수도경을 비난, 자치경과 합병하려 든다. 이에 수도경 내에서는 공안부와 특기대가 대립을 시작하고, 공안부는 무력 진압 부대인 특기대를 희생양으로 삼아서 자신들이 살아남아 자치경에 합병될 계획을 세운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희생양으로 삼은 대상이 특기대 소속인 인물이 후세다. 

  

두 이야기는 케이가 소녀의 언니가 아닌 섹트 조직원이고 공안부에 의해 후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연결된다. 그리고 작품은 케이의 입을 빌려 이야기했던 '빨간 두건'(한국의 <빨간 모자> 이야기에서는 늑대가 빨간 모자를 쓴 소녀를 유인해 소녀와 할머니를 잡아먹지만 사냥꾼에 의해 늑대는 사살되고 할머니와 빨간 모자는 구조되는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인용되는 이야기에서는 늑대가 빨간 모자를 잡아먹는 것으로 끝이 난다) 동화를 통해 후세의 정체성을 말한다. 

▲ '인랑' 스틸컷.     © 콘텐츠판다

 

제목 '인랑'은 '늑대인간'을 의미한다. 동시에 작품 안에서는 특기대 내의 실체를 알 수 없는 비밀조직의 명칭이기도 하다. 이 인랑의 정체가 후세이고 후세가 특기대의 상징인 프로젝트 기어를 장착한 순간 후세는 목적에 따라 살육을 자행하는 한 마리의 '늑대'가 되어버린다. 이 작품이 잔혹동화이자 오늘날까지 그 주제의식이 화자 되는 이유는 이 '늑대'가 지닌 상징적인 의미 때문이다. 

  

늑대의 탈을 쓴 인간과 인간의 탈을 쓴 늑대

한 사회가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대승적 차원에서의 통합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따르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 희생의 대상은 주로 사회적인 약자들이었으며, 이들의 저항과 생존을 위한 투쟁은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방해하는 요소로 여겨지곤 했다. 

 

극 중 국가와 국가기관은 이런 이들을 제압하기 위한 폭력을 자행한다. 그 존재는 인간이지만 마치 잔혹한 늑대 같은 탈을 쓴 것처럼 여겨진다. 같은 인간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은 '이 순간만 지나면 된다'고 자신들을 위로한다. 그러면 이후에는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 '인랑' 스틸컷.     © 콘텐츠판다



<인랑>이 잔혹동화가 되는 지점은 바로 이 순간이다. 과연 이들은 늑대의 탈을 쓴 인간일까. 같은 인간을 살육하는 이들에게 과연 인간의 마음이 남아있을까. 작품은 후세와 같은 이들을 '늑대의 탈을 쓴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쓴 늑대'로 치환시키며 한 편의 잔혹한 동화를 완성시킨다. 이는 김지운 감독이 전후 세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을 실사화로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여전히 사회에는 인간의 탈을 쓴 늑대들이 존재하며, 사회의 발전과 통합을 명분으로 폭력을 자행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인간이라 여기고 인간으로 남기 위해 노력하지만 현실의 벽과 자신이 처한 상황이 짐승이 되기를 강요한다. 이 잔혹동화는 시대의 흐름과 상관없이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라는 공간에서는 통용될 이야기이며 각본을 쓴 오시이 마모루는 전후 일본의 디스토피아적인 시대상에 이런 사상을 담아냈다. 

  

<인랑>의 재개봉은 어찌 생각하면 생뚱맞을 수 있다. 실사화 작품이 흥행에 실패했으며 최근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고 이 작품이 보여주는 여성관은 너무나 올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에는 잔혹한 행태가 변함없이 벌어질 때가 있고 그 안에서 희생당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 작품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마음 한 구석을 불편하게 만드는 잔혹한 동화는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짙은 사유를 보여준다.

 
[씨네리와인드 김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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